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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그 후/촛불 2008

양심선언한 김이태 박사는 촛불집회에 나왔었을까?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6. 12.

진실의 등불 밝힌 ‘대운하 양심선언’의 주인공 김이태 박사는 양심선언을 하며 ‘기회가 되면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다’라고 말했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서 ‘영혼이 없는 연구원’이기를 거부한 김 박사는 촛불집회에 왔었을까? 


‘국책 사업’으로 진행될 예정이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심각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국가적 미스터리’로 바뀌었다. 청와대와 국토해양부 등 관련 부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운하를 한다는 것인지 만다는 것인지, 4대 강 하천 정비사업으로 전환한 것인지, 하천 정비사업의 탈을 쓴 대운하 사업을 한다는 것인지, 민간 주도로 한다는 것인지 민간 주도로 보이게 사업을 한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대운하 사업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독선적인 대통령’ 이미지를, 정부에게는 ‘겉으로는 보류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사업을 진행하는 기만적인 정부’의 이미지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사업의 적합성 여부를 떠나 실행 과정에서 ‘소통 부재’와 ‘국민 기만’의 우를 범하고 있는 대표 사업이 바로 대운하이다.


국토해양부에 마련된 비밀 태스크포스가 언론에 적발된 데 이어 최근 환경부도 ‘물환경비전 TF’를 두고 비밀리에 대운하 사업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 언론에 적발되었다. 이 덕분에 이만의 환경부장관은 6월5일 ‘환경의 날’에 환경단체로부터 ‘사퇴하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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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냐, 마느냐’ 대운하를 둘러싼 풀리지 않는 고르기아스의 매듭을 끊은 사람은 바로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사진)였다. 그는 지난 5월24일 인터넷에 “한반도 물길잇기 및 4대 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운하계획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이른바 ‘보안 각서’를 썼다. 국토해양부 태스크포스로부터 매일 반대 논리에 대한 정답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지만 반대 논리를 뒤집을 만한 대안이 없다”라고 밝혔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국토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 대운하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하 건설에 따른 대재앙이 분명하게 예측된다는 것이다. 그는 보안 각서를 위반한 것 때문에 초래될 모든 불이익과 법적 조처, 국가연구개발사업 자격 박탈 등을 감수하겠다며 아버지로서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양심고백을 한다고 밝혔다.


다행히 김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국민이 그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네티즌은 ‘양심선언한 김이태 박사를 지켜달라’는 사이버 청원을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해 5만8000명(6월7일 현재)의 서명을 이끌어냈다. 여론의 비난을 의식한 건설기술연구원 측은 징계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나라당 운하정책환경자문교수단 단장을 맡은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는 “국책연구원의 이름도 없는 이상한 연구원 하나가 양심고백이니 하고 나오는데, 분명히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건 양심 고백이 아니고 자신의 무능 고백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매도했다. 그리고 김 박사는 하수처리 전문가로 하천 수질 예측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운하백지화국민행동’ 집행위원을 맡은 환경정의 오성규 사무처장은 박 교수의 이런 주장을 재반박했다. 그는 “우리는 김이태 연구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학자적 양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전공과 연구 범위 안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문제제기를 했다. 오히려 자신의 전공 범위를 벗어나 대운하 전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박석순 교수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연구원은 휴가를 마치고 6월3일 건설기술연구원에 복귀했다. 단, 대운하 관련 연구용역에서는 빠지기로 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심선언과 관련해 건설기술연구원으로부터 어떤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은 것이 없다. 용역팀에서 빠지는 것은 내 의견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서다”라고 밝혔다.


며칠 동안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의 휴대전화는 계속 꺼져 있었다. ‘기회가 되면 촛불시위에 나가고 싶다’고 했던 그는 자신의 자리인 연구실로 돌아가 묵묵히 연구자의 길을 가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소신과 맞지 않는 연구를 거부함으로써 그는 연구자로서 영혼을 되찾았다. 그가 투사로 나서기를 기대했던 그의 ‘팬’들은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그의 ‘용기’는 제2, 제3의 김이태가 나올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