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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닷컴 이슈 백서/블로거가 본 평양

'웃음국장'과 '알아맞히기영웅'이 평양에 간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0. 30.




10월18일~22일, 5일동안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측 언론본부
대표단(17명 단장 : 김경호)의 일원으로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남측 대표단에는
기자협회 PD연합회 언론노조 등 
여러 언론 유관단체가 속해 있습니다.
저는 언론노조 소속으로 다녀왔습니다.

이번 언론인 방북단의 가장 큰 목적은
남북 언론 기사 교류에 대한 합의였습니다.  


김일성 광장의 평양시민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언론 분야에서 이행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협력, 교류를 통한 통일에 기여하고 있는
6.15남측위원회 언론본부는
지난 10월 18일부터 22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북측 언론분과위원회와 제4차 남북언론인대표자회의를 개최하고,
기사교류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였습니다. 
(앞으로 북한관련 보도에 오류가 있을 경우
북측은 남측 언론본부를 통해 반론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8/10/23 - [이준희닷컴] - 남북 언론, 기사 교류 가능해진다


남북 기사 교류에 합의한 최칠남 북측언론분과 위원장(왼쪽)과 김경호 남측본부 상임대표(오른쪽).




공식적으로는 방북 대표단의 일원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 저는 '블로거의 눈'으로 북을 보고 와서 누리꾼에게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평양으로 출발하면서 언론계 선배들에게
'나는 블로거 자격으로 갑니다'라고 말씀 드렸고 
북측 언론본부와 만나서도 시사IN 기자라고 소개하고 덧붙여
'인터넷 블로그 <고재열의 독설닷컴> 운영자입니다' 라고 소개했습니다. 


블로거의 눈으로 본 관찰기, '블로거가 본 평양'을 연재합니다.
'블로거가 본 평양'의 다섯 번째 이야기는 '북에서 건진 말말말' 입니다.


북측에서는 카지노를 오락장이라고 부른다.



 

‘웃음국장’이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지만, ‘참 적절한 표현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PD연합회 김영희 회장(시청자들에게 ‘쌀집아저씨’로 알려져 있는 분이다)은 북측에서는 예능국장을  ‘웃음국장’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재밌는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드라마국장은 ‘눈물국장’이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남북 어린이 알아맞히기 경연'을 제작했던 김영희 회장의 자문을 구해, 북측 언론인들에게 나를 ‘알아맞추기영웅’이라고 소개했다(시사저널 파업 당시 KBS <퀴즈대한민국>에 나가서 ‘퀴즈영웅’에 올랐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이하 남측언론본부, 단장 김경호 기자협회장) 일원으로 10월18일부터 22일까지 5일 동안 평양을 방문한 나는 “북측에서는 영웅이 귀한데, 남측에서는 영웅이 흔하다. 나는 그 중에 ‘알아맞추기영웅’이다”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랬더니 잘 기억해 주었다.



방북기간 동안 남측언론본부는 북측의 언어 표현에 관심이 많았다. MBC 논설위원인 최용익 새언론포럼 회장은 “북측은 김일성 김정일 두 사람에게 꼭 경어를 사용해야 해서 ‘김일성 수령께서와 김정일위원장께서와’라고 쓰고 있었다”라고 자신이 관찰한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북측에서 ‘희한하게’라는 말을 ‘희한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지정리한 논 사진 설명이 ‘벌판을 희한하게 바꿨다’라고 달려 있어서 물어 보았더니 ‘멋지고 화려하게’라는 뜻이라고 안내원이 설명해 주었다.  
 

만수대 혁명전시관에서 촬영했다.



이 사진의 설명에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만경대일가분들과 함께 계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라고 되어 있다. 표현의 주체가 어린 김정일이라는 것이 이채롭다.



북측의 말 중에서 남측언론본부 사람들을 가장 매료시킨 말은 ‘찌읍시다’와 ‘쭉냅시다’라는 말이었다. ‘남북이 찌읍시다’ ‘통일을 쭉냅시다’, 이 말이 남북 언론인들이 술자리에서 가장 자주 함께 외쳤던 말이다. 방북 기간 동안 건배할 때마다 북측 언론인뿐만 아니라 남측 언론인들도 이 말을 외치곤 했다.



‘찌읍시다’라는 말은 북한말 ‘찧다’가 변형된 것으로 ‘찧다’는 ‘축배를 들 때에 잔과 잔을 서로 마주 가져다 가볍게 부딪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쭉냅시다’라는 말은 ‘무슨 일의 끝을 보다’는 말로 잔을 부딪칠 때 이 말은 쓴다는 것은 ‘술잔을 비우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영어와 우리말을 섞은 괴상한 합성어에 이골이 나있던 남측 언론인들은 ‘찌읍시다’와 ‘쭉냅시다’에 열광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건배’나 ‘원샷’ 대신 쓰며 즐거워했다. 술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이 말을 응용해서 사용했다. 



남측 언론인들은 수차례 북측 언론인과 ‘찌었던’ 덕분에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10월20일, 남측언론본부는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언론분과위원회(이하 북측언론분과)와 기사교류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고 서명했다. 그리고 함께 통일을 ‘쭉내자’고 결의했다.



남북 기사 교류 합의서를 남북 언론인이 함께 읽고 있다. 오른쪽은 MBC 노경진 기자.




기사 교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만큼 남측 언론인들을 긴장하게 했던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관련 ‘중병설’이었다. 방북 당시 ‘중병설’을 넘어선 ‘사망설’까지 등장하는 상황이어서 언론인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만약 김정일 위원장에게 ‘중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역사의 현장에 있게 되지만 현실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기사를 송고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자칫 ‘역사의 현장에선 바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남측 언론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측언론분과 대표단에게 평양시 안팎의 취재를 허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묵묵부답이었다. 북측에서 자랑하려고 하는 내용이라도 취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역시 거절했다. 사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북측은 남측언론본부에 화가 나 있었다.



남측언론본부는 국내 여론을 의식해 대부분의 방북자들이 평양에 가면 맨 처음 가는 김일성 동상이 있는 만수대 언덕을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남측언론본부의 결의가 마땅치 않았는지 북측언론분과는 일정을 가지고 매일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나 서로 ‘찌으며’ 결국에는 합의서를 ‘쭉낼’ 수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 ‘중병설’과 관련해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남측 언론이 제대로 북과 ‘찌으려고’ 하지 않고 건너들은 이야기로만 이런 보도를 계속 한다면 통일을 ‘쭉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평양 양각도 호텔 객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