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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순 지키미 게시판/KBS PD협회보 특약

몽유병 걸린 방송을 원하십니까?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1. 16.


 

정부의 방송 장악 저지를 위해
<KBS PD협회보>와 <독설닷컴>이
기사 특약을 맺었습니다.



<KBS PD협회보> 내용 중
누리꾼들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독설닷컴>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지난11월3일, 대통령의 2차 라디오 연설이 강행된 데 이어 일부 라디오 진행자들이 명확한 사유도 없이 하나 두 씩 교체되고 있다.과연 ‘공영’방송 KBS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에 대한 한 중견 라디오PD의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주>




몽유병 걸린 방송을 원하십니까?


글 - 박천기 PD (KBS 3라디오팀)



1936년 3월14일, 뮌헨에서 가진 라디오 연설에서 히틀러는 “몽유병자의 확신을 가지고 내 길을 간다”고 말했다. 히틀러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강조하기 위함인지는 모르지만“, 몽유병자의 확신”이란 표현은 언뜻 들어도 섬뜩하다.


왜일까? 무엇보다“소통”이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인 “배설”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히틀러 개인의 확신이라는 것이 결국 타인에게는 엄청난 파멸을 부르는 환상과 도그마에 불과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소통의 단절, 그리고“코드 개편”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과 개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소통의 부재와 밀어붙이기식 일방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다.
입사 14년 동안 몇 번의 정권교체와 신임 사장 임명을 둘러싼 몇 차례의 논란을 지켜봤지만 이번과 같은 행태의 일방통행과 후안무치의 작태는 처음이다.
대통령 라디오 연설의 경우, 몇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밀실”에 서 일방적으로 제작 방식과 방송 일정을 정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나 제작의 자율성, 그 어떤 조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러한 자율성과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권력의 입맛에 스스로 길들여지길 바랐던 무소신의 결과는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진통 끝에 성사된 라디오 위원회에서 편성 책임자가 밝힌 제작의 기본원칙에 대한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고, 쌍방 신의성실의 원칙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후 피디 총회를 통해 결의된 라디오 임시위원회의 소집 요구도 사측의 일방적인 해태행위와 불성실로 결렬되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애초부터 대화의 의지나 있었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해당 부서의 피디들과 구체적인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된 일부 진행자의 교체문제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표면적으로는 제작비 절감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돼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원칙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졸속 개편에 불과하다.



진행자교체는 언제 논의했고 또 누가 동의했는가?
굳이 이번 개편의 가이드라인이나 원칙이라고 하면 이른바“코드”라고 명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코드”... 지난 노무현 정권시절 보수언론이 줄기차게 물고 뜯던 단어가 아닌가?
옛말에 배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고 했거늘 공교롭게도 이번 개편을 통해 들고나는 진행자들의 면면이 이 코드의 그물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은 또 어찌된 일인가?
특히 시사 프로그램도 아닌, 이른바 일부“딴따라”프로그램의 진행자 교체는 자체검열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방송쟁이가 정치인 뺨치는 권모술수에 물드는 모습, 그리고 스스로 몸담고 있는 내부의 목소리보다 정권의 의중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저 놀라운 순발력!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욱 참담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모습들이다..







“공영”과“관영”사이...


대통령 라디오 연설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다보니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민주주의가 성숙됐다고 하는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에서 행해지는 국가원수의 라디오 연설과 개발형 독재라고 불리는 일부 중남미 국가의 라디오 연설이 그것이다.
전자는 주로“공영방송”에서, 후자는 대부분“국영방송”에서 송출되고 제작방식도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 어느 지점에 서 있는 것일까?
비단 이번에 논란이 된 MB의 라디오 연설뿐만 아니라 최근 사측에 의해 자행된 보복성 인사, 정권의 코드에 맞춰 이뤄지는 졸속 개편까지, 이 모든 것이“공영의 가치”를 지향한다면서 스스로“국영”이기를 자처한 최근 우리 KBS의 부끄러운 자화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을 안타까워하거나“좌빨 PD”들의 선동행위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을지 몰라도 이번 사안은 이념이나 정권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공영방송 KBS의“양심”과“자존심”문제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아울러 좌우를 떠나 정권 바뀔 때마다 완장차고 설치는 인물들의 공통점을 하나 밝혀둔다.



그 끝이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는 점이다.


시사투나잇 폐지 조치에 대해서 대책 회의를 하고 있는 KBS 시사교양 PD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