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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위기인 한국의 대학/청년실업 뽀개기

한 번 빠진 비정규직의 늪,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1. 26.


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취업난이 IMF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합니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 빈칸을 채우기 위해 
일부러 헌혈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 험난한 취업의 소용돌이속에서 
이러저러한 사정에 의해 상처를 입고 
'비정규의 늪'에 빠져 낙담하고 계신 분이
자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적어 보내오셨습니다. 

 
취업을 앞둔 분들은 참고하시고
부디 사회생활 첫단추를 잘 끼우시기 바랍니다.






(글 - 무명씨, 본인 부탁으로 글쓴이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독설닷컴의 청년실업 관련 글-어느 88만원 세대의 구직 생활 백서-를 보고 저 또한 제 이야기를 적어도 누구에겐가는 하고 싶어서 이렇게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27살의 백수입니다.  그것도 아직 대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백수입니다. 그런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01학번. 수능에서 만점자가 몇십명이나 쏟아졌던 수능을 치르고 저는 운 좋게도 국립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집안 사정은 제 등록금과 집 생활비,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1학년이던 동생들의 교육비까지 댈 것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뇌경색 판정을 받으셨고 어머니는 작은 식당에서 몇십만원을 받으며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르바이트, 정확하게는 과외 뿐이었습니다. 다행이 지방 명문 국립대라는 허울좋은 간판덕에 과외는 끊이지 않았고 모든 여가시간을 과외에 투자한 탓에 간신히 등록금과 생활비는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마저 건강이 나빠지셨고 동생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자 도저히 저는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과외라는 것이 당장 다음달에는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저는 조금 더 안정적인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직장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비정규직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받은 본봉은 140. 세금을 떼고 나면 120이 남았습니다. 비정규직이라 해도 꽤나 월급이 있는 편이었죠. 거기서 방값으로 20, 집에 80을 보내고 20으로 차비와 밥값을 충당했습니다. 그렇게 일년만 일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 쪽방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세상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한 번 비정규직의 덫에 들어서자 그것을 쉽게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복학을 기다리는 동안, 돈이 필요해졌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 학교에 돌아가는 시간이 더 늦춰졌습니다. 변변한 학력이 없었기에. 아니 정확히는 휴학상태였기 때문에 어디서든 계약직, 비정규직으로밖에 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학교를 자퇴해야만 했습니다.
 

지금 저는 아예 정규직은 커녕 비정규직으로서의 취업도 포기한 상태입니다. 일자리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남들이 말하는 스펙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력서를 낼 자격조차 안 되는 것이지요. 돈을 벌어서 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지만 그 흔한 알바자리조차 지금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어도 나이때문에 안쓰려고 하더군요. 우리들보다 더 싼 단가로 고등학생 중학생들이 쏟아져오니 말입니다. 
 

다행이 글을 쓰는 재주가 있기에 지금은 어떻게든 그것으로 입에 간신히 풀칠은 하고 있습니다. 리뷰를 작성해서 돈을 벌거나 소설을 써서 출판하거나 하는 일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정식 직업이 될 수는 없겠지요. 그저 인생이 암담하고 막막할 뿐입니다. 
 

저 같이, 저 같은 케이스처럼 대학을 다니다 모종의 이유에 의해 학업을 포기한 사람은 이력서를 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합니다.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니 돈이 없고, 결국 대학을 마칠수도 없게 됩니다. 악순환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