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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앵커가 종이비행기를 접는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6. 25.

YTN 노종면 앵커는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7월14일 YTN이 바뀝니다. 프로그램 개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장이 바뀝니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점지한 구본홍 사장이 주주총회에서 사장으로 선임됩니다. 사장이 바뀌면, 시사저널 때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YTN도 바뀝니다. 이 대통령이 몽매에도 바라는 ‘꿈의 땡박뉴스’가 YTN에서 실현될 수 있게 됩니다.


YTN 노조는 7월14일 주주총회에 대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사옥 앞에서 ‘공정방송 사수와 구본홍 저지’ 집회를 열고 있고, 청와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런 YTN 노조의 싸움에 언론노조와 촛불을 든 시민들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시사저널 삼성기사 삭제사건’ 이후 파업과 창간의 고된 시간을 겪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YTN 노조가 심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실 YTN에는 친한 기자분이 한 명도 없습니다(시사저널 파업 때 여러 번 참석해 주었던 현덕수 위원장 정도가 안면이 있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됐습니다. 걱정도 되고 취재도 할 겸, YTN 노조를 찾았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시사IN> 42호에서 기사로 풀어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조 사무실에서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는 한 남성을 보았습니다. YTN 노종면 기자였습니다. 노 기자는 YTN 메인 뉴스, <뉴스창>의 앵커입니다. 그는 YTN의 최대 히트상품인 ‘돌발영상’을 기획 제작했던 YTN의 보배입니다. 그런 그가 뉴스 준비에 여념이 없을 시간에 비좁은 노조 사무실에 쪼그려 앉아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습니다.


종이비행기에는 매직으로 ‘사수 공정방송, 쟁취 방송독립’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촛불 요격기’로 불리는 종이비행기를 저녁 집회 때 시민과 함께 날리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 모습을 보니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기자들의 언론자유 투쟁, 그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바로 기자들의 ‘삽질’입니다. 일일호프를 열어 맥주잔을 나르고, 거리콘서트를 하고 후원 전시회를 하고, 다른 기자들이 열심히 기사를 취재할 때 온갖 삽질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퀴즈 프로그램에까지 나가는 ‘삽질’까지 했습니다.


시사저널 파업 때 우리는 삼성 이건희 회장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는 삽질도 했습니다(이건희 탈은 언론노조에서 제작한 것인데, 인기가 좋아 빌려가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인쇄소에서 기사를 몰래 빼서 원인을 제공했던 금창태 사장이 “왜 아까운 청춘을 낭비하면서 ‘지랄’을 하고 있냐”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신호철 기자는 바로 맞받아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아마 평생) 후회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있던 신기자는 저를 보더니 “고 선배라면 멋지게 받아쳤을텐데, 정말 화가납니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방송인 최광기씨는 신 기자에게 ‘욕 과외’를 해주겠다고 하기도 했습니다(실제 과외를 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YTN 노조를 직접 찾아가서 보니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현덕수 위원장은 각 기수별로 총의를 모아 성명을 내줬고 노조원들이 이사회장 점거 등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한 번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걱정 되었습니다. 보통 노동조합의 힘은 노동조합이 사무실과 게시판을 어디에 얼마나 넓게 쓰느냐에 따라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YTN 사옥 1층에서는 노조 게시판을 볼 수 없었습니다. 노조 사무실도 비좁았습니다.


그래도 믿습니다. 원래 얌전한 사람이 화가 나면 진짜 무서워지는 법입니다. ‘잔말 말고 낙하산 사장을 인정하라’는 정부의 후안무치한 입장은 기자들의 자존심을 아주 심하게 건드렸습니다. 그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녁 집회에 다시 가보니 시민들도 촛불을 들고 와서 호응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은 몇 명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빈자리를 아프리카 사이트를 통해 생중계하는 BJ 산타니온과 진보신당 칼라TV 등이 메웠습니다.


기자가 시민을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기자를 취재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또 전개된 것입니다. YTN이 촛불집회를 생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YTN 집회를 생중계하는 아이러니가 또 발생한 것입니다.


집회에는 YTN 시청자위원인 동국대 이철기 교수, 박영미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와 민주당 최문순 의원, 민주시민언론연대 김유진 사무처장 등이 와서 지지 발언을 해주었습니다.


이철기 교수의 독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은 군대도 안다녀왔는데, 공수부대 근처도 안
갔다왔는데, 왜 이렇게 낙하산을 좋아하냐. 구본홍 사장이 임명되면 YTN 마크가 낙하산 모양으로 바뀔 것 같다. YTN에 ‘쥐새끼’ 한 마리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막아달라. 옥상도 잘 막아라. 낙하산타고 내려올지 모르니까”라고 말했습니다.


YTN 촛불집회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열립니다. 이번 주 금요일(6월27일)에는 민중가수 손병휘씨가 ‘거리콘서트’도 열 예정입니다. 손씨는 시사저널 파업 때 심상기 회장 집앞에서 기자들이 단식 농성을 할 때 ‘골목 콘서트’를 열어주기도 했습니다(개인적으로 손씨의 노래 중에 ‘나란히’를 좋아한다. 가사가 참 좋다.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함께 있는 거죠...). 고마운 일입니다.


‘KBS 독립’을 이루는 일, ‘MBC 민영화’를 막는 일도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 YTN 낙하산 사장을 막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YTN에서 낙하산 사장을 막는 것입니다. 이 최전선을 막아야 ‘KBS 독립’이나 ‘MBC 민영화 저지’의 낙동강 전선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YTN에 힘을 보태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