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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에도 '산성'과 '프락치'가 있었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7. 15.
만감이 교차했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악을 쓰고
기자가 마이크를 잡지 않고
멱살을 잡는 참혹한 현장,

기자가 시민을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기자를 취재하는
기자가 시민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기자를 촬영하는
그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면서
지나간 '시사저널 사태'의 악몽이 아른거렸다. 


“뭡니까 그 사람들은? ‘용역산성입니까?” YTN 정치부 국회팀 막내 기자인 박소정 기자가 크게 따져 물었다. YTN 주주총회장 연단을 막고 있는 외부 용역업체 사람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40여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이 연단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서 노조원들을 막고 있었다. 도저히 코스닥 상장사의, 대한민국 대표 언론사 중 한 회사의 주주총회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낙하산 사장 저지’를 주장하며 6일 동안 단식했던 현덕수 전 노조위원장이 우리사주조합장 자격으로 조합원들에게 부탁했다. 최악의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서 집행부의 지시에 따라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서 박경석 현 노조위원장 등 5명만이 (우리사주 조합원 참석을 막았던) 불법 주주총회를 몸으로 막겠다고 밝혔다. 다른 노조원들은 절대로 달려들지 말라고 거듭 경고했다.


몸싸움은 고육지책이었다. 원래 노조는 주주총회를 원천봉쇄 하려 했었다. 이를 위해 2중3중으로 주주총회장을 봉쇄했다. 사옥 정문과 후문에는 시민 2백여 명이 지키고 있었다(전날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이들은 밤을 새고 주주총회를 기다렸다). 주주확인 1층 로비는 YTN 노조원과 언론노조 산하 지부 지회 간부들이 있었고 엘리베이터와 계단 곳곳에 노조원들이 배치되어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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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노조 집행부가 긴급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새벽에 갑자기 밀고 들어온 용역업체 사람들에게 허를 찔렸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밀고 들어와 주주총회가 열리는 5층 강당과 주주들을 실어 나를 3번 엘리베이터를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YTN 이상은 노조원이 부상을 입고 탈진해 적십자병원에 실려갔다. 드잡이 과정을 뒤에서 목격했지만 190cm에 이르는 장신의 용역업체 직원에 가려 그를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주주총회를 봉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조 집행부는 급히 전략을 수정했다. 특히 주주총회 의장의 진입을 막지 못한 이상 원천봉쇄는 불가능했다. 집행부는 노조원들을 우리사주 주주자격으로 주주총회에 참석시켜 총회를 무산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노조원들도 주주총회장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치열한 몸싸움이 전개되었다. 용역업체 직원들과 노조원들이 주주총회장에 서로 먼저 들어가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에서부터 주주총회장 안까지 곳곳에서 자리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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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은 구본홍 사장 내정자 임명 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해 주주총회장에 '용역산성'을 쌓았다.


 

“우리는 이런 불법 주주총회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행동에 돌입하겠습니다. 가자!” 5명의 결사대가 연단을 향해 갑자기 뛰어들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6일 동안 밥을 굶은 기자를 밀어내는 것은 그들에게 일도 아니었다. 결사대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집행부가 밀려나가는 모습을 본 다른 노조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연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주주총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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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집행부 5명이 주주총회 저지를 위해 몸을 던졌다.


용역업체 직원들의 엄호를 받으며 의장은 필사적으로 주주총회를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주주총회는 계속되지 못했다. 의장 코앞까지 노조원들이 들이닥쳤다. 기자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몰려드는 노조원들을 용역업체 직원들은 막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일당 밖에 지킬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역업체 직원들은 옆으로 밀려났고 노조원들이 의장을 둘러쌌다.

그때 임장혁 돌발영상 팀장이 김재윤 의장에게 다가와 호소했다. 워낙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고개를 숙이고 얘기한 것인지, 무릎을 꿇고 얘기한 것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사장님 양심을 지켜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주주총회를 중단해 줄것을 간절히 호소했다.

YTN 메인뉴스 ‘뉴스창’ 앵커인 노종면 기자는 앞으로 나와 주주자격으로 참석한 선배들을 향해 물었다. “참담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선배님들 중에서 대주주 의결권을 위임받고 오신 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인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낙하산 사장 내정자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임명되는데 거수기 노릇을 할 프락치가 선배들 중에 있다는 말이었다(그가 말한 선배가 '현직'들인지 '전직'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노조 집행부가 회사 측과 긴급 협상을 벌였다. 주주총회장을 점령당한 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정식으로 주주총회를 연기하기로 한 것이다. 노조의 완승이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퇴장했다. 노조원과 현장을 취재하던 타사 기자들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 주주총회가 시작된 지 51분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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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총회를 무산시킨 노조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용역산성’과 몸싸움 ‘프락치’와 박수...... 주주 총회 동안 나도 정신이 없었다. 메모도 해야했고 사진도 찍어야 했고, 노조원들에게 끌려나온 용역업체 직원에게 “일당은 한 거니까 다시 덤비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쉬어라”라고 어르기도 해야했고, 덩달아 바빴다.


만감이 교차했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악을 쓰고
기자가 마이크를 잡지 않고 멱살을 잡는 참혹한 현장,
기자가 시민을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기자를 취재하는
기자가 시민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기자를 촬영하는
그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면서 지나간 '시사저널 사태'의 악몽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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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했던 주주총회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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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총회 연기를 선언한 김재윤 의장


노조원들은 정리집회를 열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잠시 바깥바람을 쐬기 위해 나오는 노조원들을 행해 출입문 앞에 도열한 시민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정리집회를 마친 노조원들은 시민들 머리 위로 종이비행기를 날려주었다. 낙하산과 종이비행기의 싸움은, 일단 종이비행기의 완승이었다. 그러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본홍 낙하산 사장 내정자는 사퇴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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