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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언론노조 1차 파업 관련 포스팅

'앞으로 나란히'가 아니라 '옆으로 나란히'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2. 18.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을 막는 과정에서
파면 해임당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무기한 제작거부'를 벌였던
KBS 기자협회가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
http://kbsjournalist.tistory.com

블로그 이름을 '싸우는 기자들'이라고 했는데,
그만큼 상황이 절박한 것 같습니다.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글을 한 편 보냈는데,
'독설닷컴'에도 공개합니다.




살다 보면 때로 지는 싸움을 해야 하는 때가 있다. 지는 줄 알지만, 피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 있다. 지금 KBS 기자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싸움이 그렇다.


막막할 것이다. 답이 없는 문제의 답을 써야 하는 학생처럼, 길이 없는 길을 가야 하는 여행자처럼, 노조도 없이 회사와 맞선다는 것은.


분명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져봐서 안다. 6개월간의 파업을 끝내고 우리는 패배를 선언하고 집단 사표를 제출했다. 다행히 우리는 함께 <시사IN>을 창간했지만 KBS 기자들에게는 답이 없다. 나와서 방송사를 차릴 수는 없으니까.


그것을 알기에, 이 글을 쓰기 힘들었다. KBS 기자협회 블로그에 글을 한 편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은 지가 꽤 되었다. 중간에 독촉 문자도 몇 번 받았다. 그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겨 보았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지금 술기운을 빌려 어렵게 쓰고 있다). 싸우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것은 원죄의식 때문이었다. ‘시사저널 파업’ 당시, YTN과 KBS의 젊은 기자들이 지금 그렇듯이, 나는 전형적인 ‘주전파’였다. 끝장을 보자며 주저하는 선배들을 독려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간사한 용기였다는 것을. 나는 퇴로가 있었지만 선배들은 퇴로가 없었다.


파업이 한 달 한 달 연장되면서 선배의 보험과 적금통장은 하나씩 하나씩 해지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고(그런 것을 감추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였으니까), 나중에야 알았는데, 가슴이 아렸다. 그리고 미안했다.


YTN 기자들이 낙하산 사장 선임 저지 투쟁을 벌인, 두 번의 주총 현장에 모두 있었다. 사장에 선임된 낙하산 사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는 노조 총회도 참관했다. 내 시선을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자’는 시선으로 의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궁금해서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YTN 기자들은 YTN의 ‘정명’을 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6명의 기자가 해직되었다. 뒤늦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보다 수용할 수 있는 패배의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가 그랬듯이, 기자의 ‘몹쓸 자존심’이 사서 고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KBS 기자들이 ‘무기한 제작거부’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KBS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일까?’ 파업 막바지, 결별선언을 하고 집단 사표를 제출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땐 참 막막했다. 파업이라는 ‘일리아드’를 한편 끝내고 다시 ‘오딧세이아’를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투쟁은 늘 어렵다. 왜?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흑암의 터널의 어디만큼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YTN도 그랬다. 200일이 훌쩍 넘었는데, 이제 끝인지, 아니면 시작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KBS 기자들이 힘껏 싸워 주십사,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도 주저하게 만들었다. ‘시사저널 사태’ 당시 회사로부터 ‘무기정직’ 처분을 받았다. 회사와 협상할 때마다 나와 두 선배의 ‘무기정직’이 걸림돌이 되었다. 회사 앞잡이들과의 드잡이 때문에 법원에 들락거리던 것도 끔찍했다. ‘내가 왜 저 찌질이들 사이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나’하는 생각에 참담했다. 그래서 KBS 기자들도 한번 겪어보십사, 그렇게 편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싸움을 피하면 ‘양아치’가 되기 때문이다.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 KBS 뉴스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국민들의 국민에게 예를 표하는 것은 싸우는 방법뿐이다.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고 참을 수 없는 것들을 참으며 싸워야 한다.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겁테크’다. 내가 겁을 내면 주변 동료들도 겁을 내고 있는 것이 보이고 내가 용기를 내면 주변 동료들이 용기를 내는 것이 보인다. 이때는 앞줄을 보지 말고 옆줄을 봐야 한다. 누구 뒤에 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줄이 아니라 옆줄을 맞춰야 한다. 물론 내가 한 발짝 나간다고 해서 전체 줄이 한 발짝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한 발짝 물러서면 전체 줄이 한 발짝 물러서게 된다. 옆줄을 맞추고 버텨야 한다. 누구 뒤에 숨으면 안 된다.


일본 전국시대의 어느 큰 전투에서 승리한 쪽의 비결이 조총부대를 3열로 배치시켰기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저쪽에서 조총을 한번 쏘고 장전하는 동안 이쪽에서는 2열과 3열에서 준비된 사수가 교대로 쏴서 이겼다는 것이다. 2열과 3열이 리스크를 나눔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KBS 기자들도 3열만 만들 수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KBS 사원행동이라는 1열에 섰던 두 기자(김현석, 성재호)가 총을 맞자(파면 해임을 당하자), KBS 기자들은 즉각 ‘기자협회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2열을 세웠다. ‘무기한 제작거부’가 계속되었다면 아마 이 2열에서도 사상자가 나왔을 것이다. 여기에 대비해 3열도 구성해 놓아야 한다.


1열에서 동료들이 다치자 전 KBS 기자들이 나섰다. 2열에서 사상자가 나왔다면 전 대한민국 기자들이 일어섰을 것이다. 그리고 3열까지 사상자가 나왔다면 국제기자연맹이나 국경 없는 기자회 같은 전 세계 기자단체들이 들고 일어설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듯, 용기는 나누면 배가 되고 두려움은 나누면 반이 된다. 이겨야 한다면 이길 수 있다. 비가 올 때까지 제사를 지내는 인디언 기우제처럼 이길 때까지 싸우면 된다. KBS 기자들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