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경없는기자회(RSF) 대변인 겸 아시아·태평양 데스크인 뱅상 브로셀 기자가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5박6일의 방한 기간 동안 그는 한국의 언론상황을 취재하고 갔습니다.
정부의 언론통제 움직임과 이에 맞서는 현장 언론인들이 겪는 고통을 낱낱이 취재했습니다.
브로셀 기자와 동행하면서 한국의 언론 상황을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떠나는 그에게 폭탄주를 권하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안내하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괴로운 일이었다.
영화 <킬링필드>에서 뉴욕타임즈 기자를 안내하는 캄보디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지금 한국은 '저널리스트의 킬링필드'다.
한국의 언론통제 상황을 잘 알려주기 바란다.
프랑스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내가 가서 취재해 주겠다"라고.
그의 취재기를 함께 들여다보시죠.
3월23일, 국경없는기자회(RSF) 대변인 겸 아시아·태평양 데스크인 뱅상 브로셀 기자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친 그는 곧바로 YTN 본사로 향했다.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노조 집행부 기자 4명이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YTN에 도착한 그는 노조 언론대응팀장인 왕선택 기자에게 8개월 동안 이명박 정부 언론 특보 출신 사장을 거부한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 경과와 기자들이 긴급 체포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체포된 기자들이 지근거리인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있다고 말하자, 그는 기자들을 면회하고 싶다고 했다. 면담 후 그는 곧장 남대문경찰서로 향했다.
브로셀 기자의 방문을 받은 남대문경찰서 측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멀리서 찾아온 불청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한 시간을 기다린 뒤, 어렵게 면회가 성사되었다. 브로셀 기자는 유치장에 수감된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10분 동안 만났다.
노종면 위원장은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안타깝다. 지금 내 모습이 바로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나는 이미 회사에서 해고되었고 수차례 고소당했으며 권력으로부터 여러 차례 압력을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긴급 체포까지 당했다. 그러나 이런 부당한 조처로 인해 YTN 기자들이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감옥에 갇힌 지금 내 모습이 바로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브로셀 기자는 체포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으며 체포가 왜 부당한지 설명을 부탁했다. 노 위원장은 “우리는 이미 3월26일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기로 약속했다. 파업을 앞두고 긴급 체포한 것은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한 조처로밖에 볼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브로셀 기자가 석방 가능성을 묻자 노 위원장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내가 금방 풀려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구속할 목적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리하게 체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상적인 법적 판단이 이뤄진다면 구속될 리가 없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법적 판단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이후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노종면 위원장에 대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브로셀 기자는 노 위원장에게 ‘기자로서 구속된 것인지 노조위원장으로서 구속된 것인지’를 물었다. 노 위원장은 “내가 단순한 기자라면 구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조위원장을 하고 있는 기자고, YTN의 정치적 독립을 지키기 위해 낙하산 사장 임명을 반대하는 노조위원장이라 구속되었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브로셀 기자는 “YTN의 문제가 단순한 노사문제라면 국경없는기자회가 관여할 이유가 없지만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에 관계된 중대한 문제다. 노 위원장의 구속은 정치적 보복 행위다. 국경없는기자회가 YTN 투쟁에 연대할 것이며 국제기자연맹 등 다른 국제 단체의 연대도 조직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브로셀 “미네르바는 무죄다”
노 위원장과 면담한 뒤 취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브로셀 기자는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언론의 언론 자유뿐만 아니라 지지하지 않는 언론의 언론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 YTN 사태는 한국의 언론 자유가 후퇴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한국의 언론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언론 자유 문제가 ‘경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문제에서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문제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겪고 있고 많은 서구 국가에서도 정치 권력과 결탁한 경제 권력, 그리고 이들과 궤를 같이하는 언론 권력 사이에서 언론인들이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치 권력에 의한 직접 개입이 이뤄진다는 면에서 한국의 언론 자유는 후퇴했다”라고 말했다.
브로셀 기자는 오후에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관련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법정에도 참관했다. 이튿날 미네르바의 무죄를 주장하는 김태동 교수(성균관대 경제학, 전 청와대 경제수석)를 면담한 그는 “미네르바는 무죄다. 자료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사소한 실수를 했다. 그러나 언론인도 사소한 실수를 한다. 일반인에게 언론인보다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언론인들이 미네르바의 무죄를 밝혀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그는 김태동 교수에게 받은 미네르바 관련 서류를 기자에게 복사해 주었다).
이날 저녁 국경없는기자회 대변인을 겸하고 있는 브로셀 기자는 한국의 급박한 언론 상황을 국경없는기자회 본부에 타전하고 긴급 성명을 이끌어냈다. ‘노조 활동가 4명이 서울의 경찰서에 잡혀 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국경없는기자회는 ‘YTN 기자이자 노조 활동가인 4명을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브로셀 "남한의 언론상황, 북한보다 나을 게 없다"
다음 날인 3월24일, 브로셀 기자는 원래 방한 목적이었던 대북 민간방송 지원 업무를 수행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유럽연합(EU)과 함께 대북 민간방송 제작사에 3년 동안 4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올해의 언론 매체상’ 후보에 올랐던 탈북자 대북 라디오방송, ‘자유북한방송’을 비롯해 ‘열린북한방송’과 ‘자유조선방송’이 수혜자로 결정되었다.
이번 방한 기간 대북 민간방송 현황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려 했던 브로셀 기자는 방한 스케줄을 한국 정부의 언론 탄압 상황을 파악하는 일정으로 바꿨다. 그 이유를 그는 “북한의 언론 자유만큼 남한의 언론 자유도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답했다.
국경없는기자회의 한국 특파원 자격으로 브로셀 기자를 수행하는 김비태 기자는 “국경없는기자회는 한국 사회와 영욕을 함께했다. 보수 정권 치하에서는 진보 언론을 지지했으며 진보 정권 하에서는 보수 언론의 언론 자유 활동을 지지하기도 했다. 다시 진보 언론을 지지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렇게 직접 나서기는 10년 만이다.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3월25일, 브로셀 기자는 MBC 본사 노조사무실을 찾았다. 검찰 수사가 재개된 <PD수첩> ‘광우병 편’의 연출자인 이춘근 PD와 김보슬 PD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두 시간여 동안 PD들을 면담한 그는 <PD수첩> 수사를 맡았다가 무죄 의견을 내고 사임한 임수빈 전 서울지검 형사2부장에 관한 이야기에 주목했다. 담당 검사가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법복을 벗으면서까지 항변했는데 다시 수사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면담을 마치고 브로셀 기자는 두 PD와 함께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두 PD가 밖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의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아서 체포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브로셀 기자가, 국경없는기자회와 함께 있다가 체포된다면 국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안심시켰으나 두 PD는 괜한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유튜브에 올릴 이춘근 PD 동영상 직접 촬영
브로셀 기자는 MBC 노조가 유튜브에 올린, 한국의 언론 현실을 고발하는 동영상을 보았다며 <PD수첩>의 상황을 알리는 동영상을 찍고 싶다고 제안했다. 영어로 <PD수첩>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지지를 부탁한 이춘근 PD는 그에게 “조심해라. 한국 정부는 국제 기구의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도 고소하겠다고 했다. 당신도 고소하려 들지 모른다”라고 충고했다.
YTN 기자 구속과 미네르바 재판, 그리고 검찰의 <PD수첩> 수사 상황까지 파악하느라 브로셀 기자의 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빽빽해졌다. 그는 “이 정도 일정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 언론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와 비슷하다. 이것이 한국의 언론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힘든 일정을 다 마치고 밤늦게 서울 여의도의 호텔에 들어간 그에게 갑자기 긴급 연락이 왔다. <PD수첩> 이춘근 PD가 긴급 체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연락을 받고 그는 바로 택시를 타고 MBC 노조 사무실로 달려갔다. 아직 한국 기자들도 오지 않은 때였다. 그는 이춘근 PD 체포 사건을 가장 먼저 취재한 기자가 되었다.
취재를 마친 그는 국경없는기자회 대변인 자격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논평을 MBC 취재진에 해주었다. 그는 “언론 자유와 관련해 한국은 아시아의 모델이 될 만한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은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단순한 번역 잘못을 이유로 프로그램 제작자를 구속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3월26일, 그는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YTN 현덕수·조승호·임장혁 기자를 만나기 위해 다시 YTN 노조를 찾았다. 이들을 면담한 브로셀 기자는 “방송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국의 언론 자유가 심각한 정도로 침해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입 의도를 가졌다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브로셀 기자는 YTN 사측에도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YTN 사측은 브로셀 기자에게 서면으로 방침을 전했다. 3월25일, 방송통신위원회 담당자 면담을 마지막으로 브로셀 기자는 한국 취재 일정을 마쳤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방문한 그는 정부 견해를 들었다. 그는 귀국 후 한국의 언론 현실을 고발하는 스페셜 리포트를 작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15년 동안 한국의 언론 현실과 관련해서 이런 스페셜 리포트가 없었다.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독재 국가에 대해서는 흔한 일이지만 민주화된 나라에 대해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라고 말했다. 선진국 중에서 국경없는기자회가 이와 같은 리포트를 작성한 나라는 언론 재벌 출신인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언론 탄압 문제가 심각한 이탈리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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