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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춘 지키미 게시판/검찰의 <PD수첩> 막장 수사

프랑스 기자에게 우리 언론의 치부를 보여주었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4. 6.



한국 언론, 저널리스트의 <킬링필드>가 되다


캄보디아 내전을 다룬 영화 <킬링필드>는 나를 기자로 만든, ‘내 인생의 영화’였다. 내전의 참상을 전하기 위해 위험한 현장에 뛰어드는 기자의 열정, 그리고 그 기자를 헌신적으로 돕는 캄보디아 통역사와 기자의 국경을 넘어선 뜨거운 우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역사의 현장에 있고 싶은 무한 호기심과 벼락같이 찾아올 초월적 우정에 대한 로망이 나를 기자의 길로 이끌었다. 

최근 <킬링필드>의 데자뷰를 경험했다. 지난주 국경없는기자회(RSF) 대변인겸 아시아-태평양 데스크를 맡고 있는 뱅상 브로셀 기자에게 한국의 언론탄압을 보여주는 현장을 안내하면서, 데자뷰를 느꼈다. 브로셀은 뉴욕타임즈의 시드니 기자였고 나는 캄보디아 통역사 디스프란이었고, 한국은 ‘저널리스트의 킬링필드’였다. 

YTN의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과 파업 상황을 들려주며, MBC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강압수사를 설명하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을 비난하며, 양가적 감정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하나도 빠짐없이 제대로 알려서 우리의 위급한 언론상황을 알리자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까지 말해야 하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국경없는기자회 뱅상 브로셀 대변인이 YTN 해직 정직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브로셀 기자는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갔다. 그는 이 정도 일정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 기자들이 억류되는, 긴급한 상황일 때 소화하는 일정이라고 했다. 그 말에 또 한 번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의 언론자유가 사선에 서 있다는 것을 이방인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바빴다. 그 전날 파업을 하루 앞둔 YTN 기자 4명이 경찰에 긴급 체포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브로셀 기자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YTN 본사로 달려와 상황을 파악했다. 기자들이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유치장으로 달려갔다. 유치장에서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은 “유치장에 갇혀있는 지금 내 모습이 바로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라고 탄식했다. 브로셀 기자는 노 위원장에게 연대를 다짐하고 오후에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재판을 참관했다.

다음날 브로셀 기자는 대북 라디오방송을 하는 대북방송 전문 언론사 세 곳을 방문했다. 유럽연합(EU)과 국경없는기자회가 4억원을 지원하기로 해서 이에 대한 약정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것이 바로 브로셀 기자의 방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스케줄을 남한의 언론탄압 현실을 파악하는데 소모했다. 그 이유를 그는 “북한의 언론 상황만큼 남한의 언론 상황도 위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 다음날, 브로셀 기자는 가장 긴 하루를 보냈다. 오전에는 한국기자협회를 찾아 김경호 기자협회장으로부터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점심때는 MBC <PD수첩> ‘광우병편’ 제작자인 이춘근PD와 김보슬PD로부터 검찰의 강압수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오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해 남북관계 악화와 한국의 언론상황에 대한 견해를 들었고 저녁에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성균관대 김태동 교수를 찾아가 미네르바 재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국경없는기자회 뱅상 브로셀 대변인이 PD수첩 이춘근 PD와 김보슬 PD를 면담하고 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와 쉬려던 그에게 나는 긴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PD수첩> 이춘근 PD가 검찰에 강제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여의도의 호텔에 묵고 있던 그는 곧바로 MBC로 달려갔다. 덕분에 어떤 국내 기자들보다도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그는 국경없는기자회 대변인 자격으로 MBC뉴스 카메라에 긴급체포에 대한 논평도 해주었다.

이후 일정도 대부분 한국의 언론 탄압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일정이었다. 브로셀 기자는 YTN 사측과 방송통신위원회의 반론도 꼼꼼히 챙겼다. 취재 중간에 그는 프랑스 파리의 본부와 교신하며 한국 언론탄압 상황에 대한 국경없는기자회의 성명 발표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의 언론 현실이 위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브로셀 기자에게 한국의 언론 상황이 위급하다는 것을 내가 참여했던 ‘시사저널 파업’과 비교해서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경영진의 삼성기사 무단삭제에 항의해 편집권독립을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사IN>을 창간했다. 나는 그에게 “당시 우리는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며 한국사회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어느 정도 이룬 사회로 전제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다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과제가 된 사회로 후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브로셀 기자는 방한 기간에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국경없는기자회에 ‘스페셜리포트’를 작성하겠다고 했다. 그는 ‘스페셜리포트’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런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가 작성되는 것 자체가 한국의 언론 상황이 후퇴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선진국 중에서 최근 ‘스페셜리포트’가 작성된 나라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언론 장악 문제가 심각한 이탈리아뿐이라고 설명했다.   

브로셀 기자를 보내며, 한국의 언론탄압 상황을 꼼꼼히 취재해준데 대한 감사를 표하며,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언젠가 프랑스의 언론자유가 심각한 상황이 되면 그때 내가 달려가서 당신들을 취재해 알리겠다”라고.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우리의 참혹한 현실을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해 고심해야 하는 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주> 이 글은 <고대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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