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 앵커가 마지막 뉴스 진행을 하던 날, 00매체에서 전화가 왔다.
마지막 방송을 보고 다음날 새벽까지 글을 한편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신경민 앵커의 마지막 방송에 대해서 글을 쓸 생각이었기에, 흔쾌히 응했다.
'이 매체에서 이 글을 실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에디터의 의욕이 워낙 강해서, 믿고 글을 보냈다.
그러나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1주일이 가고 2주일이 가도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어렵게 에디터에게 물어보았다.
역시 실리지 못했다.
시의성을 상실한 글이지만, '독설닷컴'에 올린다.
신경민 앵커의 마지막 클로징멘트는 재방송이었다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가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나올 무렵, 택시를 타고 MBC에 막 도착했다. 급히 온 이유는 신 앵커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사실 이 약속은 내가 그에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한 것이었다. 교체 여부를 놓고 경영진과 기자들이 마지막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는 “마지막 방송을 마치면 나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었다. 왠지 그의 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아서 급히 MBC로 달려간 터였다.
이미 출입기자들이 로비에서 신 앵커를 기다리고 있었다. ‘YTN사태’를 함께 취재하며 낯을 익힌 기자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신앵커를 기다리며 ‘뻗치기’를 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록 신 앵커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기자들과 함께 보도국에 올라가 찾아보았지만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런 우리 모습이 채무자를 찾는 사채업자 같아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신 앵커는 이미 <뉴스데스크> 편집부 직원들과 근처 주점으로 옮긴 상태였다. 몇몇 기자들이 그를 찾아보자고 했지만, 동참하지 않았다. 후배들과 마지막 회포를 푸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의 슬픔 속으로 함께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YTN과 KBS에서 비슷한 상황의 술자리에 가서 느꼈던 ‘시사저널 파업’의 트라우마를 또 느끼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신 앵커가 남긴 마지막 클로징 멘트만 품고 왔다. 그는 마지막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 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1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징하겠습니다."
사실 이 클로징 멘트는 12월31일 클로징멘트의 재방송이었다. 앵커멘트에 대한 견해를 묻자 신 앵커는 이 클로징멘트가 자신의 (철학이라고까지 하기는 거창하지만) 원칙이라고 밝혔다. 그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올 한 해 이 클로징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원칙이 숨쉬면서 곳곳에 합리가 흐르는 사회였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책임 신뢰 안전이었고 힘에 대한 감시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뜻합니다. 내용을 두고 논란과 찬반이 있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불편해하는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이 꿈과 소망은 바꾸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민주,힘에 대한 견제,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 이런 것들을 그가 강조한 것은 ‘이런 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내 앵커멘트가 왜 문제가 되느냐’라고 항변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들리는 시대를 탓해야지, 상식을 이야기하는 앵커에게 불평을 하느냐’로 읽혔지만, 메아리가 없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뉴스데스크> 앵커멘트를 통해 그의 ‘소신 멘트’가 알려졌지만 신 앵커의 앵커멘트는 사실 역사가 깊다. <뉴스데스크> 앵커에 발탁되기 전, MBC 라디오 <뉴스광장>을 통해서 이미 그는 정곡을 찌르는 MC 멘트로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었다. 거기서 쌓인 내공이 <뉴스데스크>에서 빛을 발한 것이었다.
그의 교체 여부를 놓고 경영진과 기자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지난 금요일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자신의 착잡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 때문에 비롯된 문제로 인해서 기자들이 뉴스 제작을 거부하고 있는데, 나는 그 뉴스를 진행해야 하는 입장이다. 기분이 묘하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앵커석에 앉은 그에게 심정을 묻자 신 앵커는 “'할 말이 없다'고 말할 수박에 없을 것 같다. 나에 대한 일이지만 나는 할 말도 없고 할 일도 없다. 사측에서 공식으로 통보한 것이 없고, 기자들은 자기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양쪽 다 나와 교감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자신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회사는 그동안 그에게 여러 차례 여러 채널로 여러 자리에 대한 제안했었다. 그러나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자신이 물러나는 것이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진보적인 언론인으로 알려졌지만 후배들이 평가하는 신 앵커는 ‘원칙을 중시하는 보수성향의 언론인’이다. MBC 출신으로 노조위원장과 사장을 거친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신 앵커에 대해 “"신경민 선배는 노조 활동을 며칠 밖에 하지 않았다. 진보성향 언론인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 언론인까지 설 자리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신 앵커의 교체가 안타까운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그는 진보와 보수, 모두가 용인할 수 있는 ‘국민MC'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중견 언론인이면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결기를 간직한 것은 젊은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이었다. 그런 신 앵커가 피자마자 떨어지는 벚꽃처럼 저버린 사실이 못내 안타깝다. 그의 클로징멘트가 뉴스에서 사라지고, MBC뉴스의 영혼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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