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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이 만난 사람/한심한 육아일기

어버이날, ‘나쁜아빠 육아법’을 반성하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5. 7.

짜장면과 초코렛, 그것은 나쁜아빠의 구급약이다. 백발백중 통한다. 초코케익도 물론이고.



“승욱아 초코초코 주까?” 이것이 내가 개발한 ‘나쁜아빠 육아법’의 핵심이다. 호환 마마를 두려워하던 옛날 어린이들에게는 곶감이 먹혔지만, 불법 불량 비디오에 노출된 요즘 아이들에게는 단연 초콜릿이다. 초콜릿은 우는 아들을 멈추게 하는 나만의 ‘필살기’ 기술이다. ‘아내의 눈총’이라는 부작용이 있지만.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없어졌다는(출근했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접한 아이에게, 어린이집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밀려나 가지 않겠다고 땡깡을 놓는 아이에게, 아빠의 서류철에서 종이를 꺼내 정신없이 찢어던지기 놀이를 하는 아이에게, 초콜릿은 특효약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특허를 신청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아이에게 초콜릿을 주면서 때로 거드름을 피우기도 한다. 아들에게 세레모니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들은 흔쾌히 소녀시대 ‘GGG춤보다’ 백만배 더 귀여운 ‘초코초코춤’을 보여준다. 그 ‘초코초코춤’이 귀여워서, 때로는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춤을 보기 위해서 초콜릿을 주기도 한다. 초콜릿이 없으면 사탕으로라도.

아빠와 단 둘이 있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른지 밥 먹기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요즘 라면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라면 또한 초콜릿처럼 서서히 맛이 들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매운 음식을 못 먹어서 신라면을 같이 끓여먹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추세로 볼 때 신라면도 멀지 않았다.

모르겠다. 아들이 나중에 ‘나는 세상에서 배워야 할 모은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고, 배우지 말아야 할 모든 것은 아빠에게서 배웠다’라고 말할지도. 그때 나를 원망하는 아들에게 나는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질 것이다. 그중 하나는 아마 폭탄주가 아닐까 싶다. 특히 쿠션이 제대로 들어가서 돌돌 말리는 회오리주, 외국기자들을 감동시킨 그 비장의 개인기로 아들을 달래고 있을 것 같다.

초콜릿이 아이에게 얼마나 안 좋은지, 사탕이 아이의 이를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라면 같은 밀가루 음식이 아이의 건강을 얼마나 해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엄마가 없을 때 아이를 대신 봐주는 것도, 아이를 달래서 어린이집에 보내주는 것도, 아이의 땡깡을 말려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박스로 '급조인간'을 만들어주고 점수 좀 땄다.



자기 생활에 바쁜 ‘나쁜아빠’들은 틈틈이 아이들에게 아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아빠로서 인정받을 수가 없다. 엄마에게 엉겨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때 싸늘한 반응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아이는 화가 나는 정도에 따라 ‘저리가(조금 화났다)’ ‘아빠 방에 가(제법 화났다)’ ‘다른 집에 가(완전 화났다)’ 라고 말을 하곤 한다. 이때 이 집의 실소유자가 아빠라는 사실을 알려줘 봤자 소용이 없다. 답은 ‘초코초코’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그래서 다가가는데 아이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은 거의 ‘유괴범’ 수준이다. 초콜릿이라는 뇌물이 아니고서는 나와 유괴범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친구 같은 아빠’를 넘어서는 ‘존경하는 아빠’가 되고자 하는 꿈은 정말 난망하다. 어쩌다 욱하는 성미에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되로 주고 톤으로 돌려 받는다. 한 번 혼내고 백 번 혼나는 비율이다.

‘초코초코’와 함께 아이를 달래는 또 다른 필살기는 ‘토마스와 친구들’과 ‘뽀롱뽀롱 뽀로로’라는 만화영화다. 비유하자면 ‘초코초코’가 순간의 고통을 모면하는 ‘몰핀’이라면 ‘토마스와 친구들’과 ‘뽀롱뽀롱 뽀로로’는 일정 시간 아이를 대신 봐주는 ‘보모’라 할 수 있다. 만화지만 나름대로 교육적이라며 자위하며, 아이를 TV에 붙들어 맨다.

아이가 보는 만화를 본의 아니게 같이 보게 되는데, 내용에서 문제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토마스와 친구들’은 경제개발5개년 개획이 실행되고 ‘근면 자조 협동’을 외치던 새마을운동 시절에나 적합한 만화다(실제 그때 만들어진 만화다). 세상은 디젤 기관차를 넘어 전기기관차까지 왔는데, 토마스와 친구 기차들은 증기기관차가 대부분이다.

사실 ‘토마스와 친구들’은 내용으로 봤을 때, 회사에서 사원 교육 워크숍을 할 때 방영해야 할 만화다. 놀줄도 모르고 맨날 일만 하는 토마스와 친구 기차들은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해서 ‘뚱보사장님’께 인정받을까만 고민한다. 이 만화를 보면서 ‘뭐야, 왜 노조를 안 만드는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아이에게 노동 3권을 강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토마스와 친구들'은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친구들을 다 사주려면 허리가 휜다.



‘뽀롱뽀롱 뽀로로’도 문제가 많다. 이 만화는 뽀로로와 친구들의 ‘의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이 만화에는 가족이 없다. 이 만화를 보면서 “다들 고아야 뭐야, 왜 부모가 없어, 얘네들 가출 청소년아냐?‘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에게 결손 가정에 대해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뽀롱뽀롱 뽀로로’가 국내 제작물이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고,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 만화가 ‘토마스와 친구들’ 보다 부모에게 훨씬 ‘유리한’ 만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제는 친구 숫자다. 토마스는 오지랖이 너무 넓다. 퍼시 제임스 고든 에드워드 에밀리 디젤...친구가 너무 많다. 그 친구들을 다 사주려들면 허리가 휜다.

친구들이 제법 구색이 맞아지면 철길을 사줘야 한다. 요즘 아들은 철길 확장과 ‘빨간 버티’ 영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뽀롱 뽀롱 뽀로로’가 훨씬 낫다. 5명의 친구들만 챙기면 된다. 고맙게도 대부분의 상품에서 이 다섯 명은 한 그림에 다 들어가 있다. 토마스와 친구 기차들이 한 기차가 ‘나무기차’ ‘플라스틱기차’ ‘불빛 나오고 소리나는 기차’ 등 다른 버전으로 나오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이가 만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하면서 배고픈 것도 잊은 아이의 놀라운 집중력에 감동하곤 한다. ‘보고 또 보고’해서 대사까지 외우면서도 아이는 눈을 떼지 못한다. 대사를 달달 외는 아이를 보면서 ‘새 DVD를 하나 사줘야겠구나’ 생각을 하지만, 집만 나서면 까먹곤 한다.

‘나쁜아빠 육아법’의 핵심은 아이의 기억력이다.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아이는 아주 어렸을 적 경험은 대부분 기억해내지 못하고 대부분 어른들의 구술에 의존한다. 그때 나는 내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해 낼 자신이 있다. 어쩌다 기억해내더라도 초콜릿 먹여주는 아빠를 좋은 기억으로 간직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들이 ‘나쁜아빠 육아법’을 대물림하고 제발 ‘나쁜아들 효도법’으로 응용하지 않기를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초코초코춤’을 감상한다.

'초코초코'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간지러움을 잘 참아내고 있다.


주) <바자>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