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실린 ‘찌라시’는 정보지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찌라시’라는 말이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요즘은 CNN을 패러디해 ‘찌앤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스로를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정보를 다루는 ‘기자들이 보는 신문’이라고 주장하는 정보지, 이 정보지는 ‘카더라 통신’의 진수다.
흔히 소문은 ‘너만 알고 있어’라는 전제를 달고, 은밀하게 전파된다. 정보지도 마찬가지다. ‘너만 봐’ 하면서 이메일과 메신저를 타고 전해진다. 기자와 정보기관 종사자와 대기업 비서실에서 두루본다고 알려졌지만, 누가 어떻게 만드는 지, 어떤 경로로 내 손에 들어오게 되는 지 알 수 없다. 일정한 통로로 일정한 날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바람결에 전해진다.
정보지는 보통 연예계 이야기로 시작해서 정치계 이야기를 거쳐 경제계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니셜이 아니라 실명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박진감이 있다. 음모와 배신, 욕망과 질투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앞에 내세운 명분과 다른 실제 속셈을 꼬집는다. 그런 면에서 ‘뉴스 해설서’라고도 할 수 있다.
찌라시에 따르면 연예계와 정치계와 경제계는 음모와 배신, 욕망과 질투가 어우러진 곳이기 때문에 미움이 만개한 곳이다. 연예인은 연예인을 미워하고 기업인은 기업인을 미워하고 정치인은 정치인을 미워한다. 그 만개한 미움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공식 석상에서 만나서 서로 웃고 어울리는 것이 기적처럼 보인다.
정보지의 연예면은 주로 남자 연예인의 성 도착증과 여자 연예인의 바람 행각으로 구성된다. 이들에 따르면 남자 연예인 중 상당수는 성적 취향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변태 성욕자고 여자 연예인 중 상당수는 어젯밤에 누구와 잤는지도 잊어버리고 다닐 정도의 ‘바람순이’다. 침대 위의 정사를 마치 옆에서 지켜본 듯이 묘사한다.
이런 식이다. 남자 탤런트 A는 같이 잔 여자 연예인에게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그 점수를 꼭 알려준다. 남자 탤런트 B는 같이 잔 여자 연예인의 음모를 요구한다. 남자 탤런트 C는 집안 곳곳에 성 용품이나 피임 도구를 완비해 두고 있다. 여자 연예인 이야기도 있다. 여자 가수 A는 그룹의 모든 남자 멤버들과 관계했다. 이런 것들이다.
남자 연예인의 변태 행각과 여자 연예인의 바람 행각이 파국을 맞는 곳은 압구정동 미용실이다. 보통 이 이야기의 종말은 ‘남자 연예인 누구를 놓고 여자 연예인 누구와 누구가 난타전을 벌였다’라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계속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압구정동 미용실에는 여자 연예인들의 육탄전을 위한 링이 만들어져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이 연예면이 스포츠면과 섞인다. 여자연예인의 상대로 스포츠스타가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축구선수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스포츠스타와 얽히는 여자연예인은 계속 스포츠스타와만 얽힌다는 것이다. 이팀 저팀 축구선수들에게 들러붙어서 축구팀 감독들에게 찍힌 여자연예인까지 있다고 나온다.
한류스타와 관련해서는 해외 연예인까지 얽히는 국제면 정보가 등장하기도 한다. 일본에 진출한 한류 스타가 누가 여자친구가 있는 일본 연예인과 ‘원 나잇 스탠드’를 했는데, 이후 비참하게 버려졌다는 이야기나, 몇몇 여자 연예인이 일본에서 스폰서를 구해서 그 돈을 바탕으로 돌아와서 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보지 연예면에서 경제면으로 넘어가는 중간에는 재벌 2세가 등장한다. 여자 연예인과 사귄다는 이야기인데, 대체로 여자 연예인이 해당 기업 CF에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등장해서 CF를 끝낼 무렵 누구에게 밀렸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재벌 2세가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몇몇 여자 연예인이 원흉이라며 책임을 덤태기 쓰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간혹 그들의 아버지인 재벌 1세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이름도 잊혀진 원로 배우들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들의 ‘축첩술’이 또 놀랍다. 이야기를 모아보면 배다른 형제들을 모아서 축구팀을 만들 정도로, 여러 딴살림을 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 확장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 많은 자녀들에게 하나씩이라도 떼어 주려면 회사가 많아야 하지 않겠나.
경제면은 그래서 기업 인수 합병전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정보지의 경제면을 보면 재벌의 일이라는 것은 군량미(현금)를 확보해서 기업 인수 합병 전쟁을 벌이는 것이 거의 전부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기업이 위태로운데, 어느어느 기업이 인수합병전에 나섰고, 어디어디는 접었고...대충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연예 정보와 경제 정보와 함께 정보지에서 꼭 나오는 것이 정치인 관련 이야기다. 정치인들의 속셈과 뒷공작에 대해서 현란한 해설이 곁들여진다. 해당 정치인이 그런 행위를 하면서 정말 그런 잔머리를 다 굴렸을까 싶을 정도의 굵은 계산과 잔 계산이 복잡하게 설명되어 있다. 읽다보면 그들의 잔머리가 경탄스러울 지경이다.
연예인과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음모와 배신, 욕망과 질투, 가식과 허위, 미움과 혐오, 이런 것들을 읽다보면 현기증이 난다. 인간은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욕망하고, 그래서 더 많이 조급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면서도 그들에 비해 현저히 가진 것이 적은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정보지는 음지에서 만들어져 음지를 돌다, 조용히 사라진다. 간혹 확인을 거쳐 양지에 나오는 이야기도 있고 무책임하게 이니셜로 보도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비록 가식과 허위로 가득 찼다 하더라도 양지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음지의 언론, 찌라시' 니들이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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