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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봉하마을에서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보았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7. 16.


노무현 대통령 비석 받침에 적힌 문구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된 봉하마을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었습니다.
49재 전후에 보고 들은 것을 올립니다.



무척 더운 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와 유골 안장식이 열린 7월10일은 유난히 더웠다. 전날 저녁까지 폭우가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폭염이 내리쬐었다. 검은색 옷을 입고 온 추도객에게 무더위는 피하고 싶은 시련이었다. 

폭우에 대비해 가져온 우산은 그대로 양산이 되었다. 그것도 없는 사람은 신문지로 고깔을 만들어 썼다. 신문지도 구하지 못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며 더위를 달랬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 문화제 <잘가오 그대> 사회를 맡은 권해효씨는 재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무대에 오를 때는 입었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바로 벗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역시 힘들게 더위를 이겨내는 관객들에게 권씨는 “함께 ‘노공이산’의 기적을 만들어내자”라고 제안했다. 

<잘가오 그대>는 시극으로 꾸며졌다. 권씨가 시를 읊을 때 배우 오지혜씨는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오월나비 훠얼’이라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작곡한 가수 정태춘씨는 이번 공연의 총연출을 맡았다. 그 옆에서 작곡가 윤민석씨는 공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들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노사모의 주축이었던 배우 문성근씨와 배우 명계남씨는 번갈아가며 행사 사회를 보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줄곧 술에 절어 있던 명계남씨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분향소 해체식 사회를 보며 그는 “슬픔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행동으로 승화되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라며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출판사 대표를 그만두고 봉하마을에 내려와 자원봉사를 하던 정구철씨는 안장식 질서 유지를 맡았다. 참여정부 때 그는 국내언론담당 비서관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하던 김상철씨는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잘나가는 홍보회사 간부였던 그도 역시 얼마 전 사표를 냈다. 

국정홍보비서관이었던 김종민씨 역시 생업을 제쳐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백서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유고집> <진보의 미래> <노무현의 삶과 생각> <서거 관련 백서> 총 네 가지 백서가 편찬될 예정이다. 김씨는 이 중 뒤의 두 가지를 맡았다.

다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했다. 대학생나눔문화 활동가인 이상훈씨는 봉하마을에서 농활을 하며 2주를 보냈다.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하기 위한 것이었다. 2주간의 기록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다음 카페에서 ‘개념 있는 여성 3국’으로 꼽히는 촛불 커뮤니티 ‘소울드레서’ ‘화장발’ ‘쌍코카페’의 회원들도 보였다. 옷 잘 입는 고민(소울드레서), 화장 잘 하는 고민(화장발), 성형수술 잘 하는 고민(쌍코카페)만 하던 그녀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의식의 각성제’였다. 이들은 안장식이 끝난 뒤 노사모 사무실에 아이스크림을 한 아름 안고 와서 자원봉사자들을 응원했다.

많은 사람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사람들은 안장식 행사장과 행사장 너머의 공터와 그 공터 뒤의 산기슭과 봉화산 봉우리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안장식을 지켜보았다. 서울 대한문 시민 분향소 주역인 ‘다인아빠’와 ‘젠틀맨’의 모습도 보였고, 시민 분향소에서 보수 단체 회원들과 드잡이를 벌였던 중년 여성도 찾았다.

방방곡곡에서 왔다. 경주의 자영업자 김병배씨는 딸을 데리고 왔다. 봉하마을을 함께 찾으며 딸과 아빠는 서로 마음을 열었다. 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 입학을 앞둔 이의헌씨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 교포들이 쓴 추모집을 전달하러 봉하마을을 찾았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왔다. 조·중·동 기자 중에서도 휴가를 내고 추모하기 위해 찾은 이들이 있었다. 한 중앙일보 기자는 노 전 대통령의 진영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왔다. 서거 당일 밤을 달려 봉하마을을 찾았던, 노사모 출신 한 동아일보 기자는 방송사들이 안장식 중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오지 않아야 할 것 같은 사람의 얼굴도 보였다. 안장식에 참여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내려온 참여정부 출신 이명박 정부 고위 관료의 얼굴도 보였다. 그는 혹시나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봐 검정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봉하마을을 돌아다녔다.

가까이 혹은 멀리서 온 시민과 함께 49재와 안장식을 치른 참여정부 참모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직 세상이 두렵다. 침묵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며 인터뷰를 거부하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마을 주차장에서 팬클럽 시민광장 회원들과 만나며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조그만 실천을 하도록 하자”라며 사람들을 다독였다. 

그들은 뭔가를 발언하고 싶어했다. 천호선 전 홍보수석은 “49재까지 말을 많이 참았다. 이제 할 말은 하겠다. 연락달라”고 말했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켜봐달라. 현명하게 판단하고 현명하게 처신하겠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희망이 샘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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