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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언론노조 3차 총파업 중계 게시판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필요한 때입니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7. 24.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필요한 때입니다


처음 거리로 나섰던 것이 3년 전 일이다. <시사저널>에서 '삼성기사 삭제 사건'에 항의해 선후배 기자들과 처음 피켓시위를 벌였던 것이 2006년 6월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줄곧 거리에 있었다(절반은 우리의 억울함을 알리러, 절반은 다른 기자와 PD들의 억울함을 들어주기 위해서). 항의 시위는 파업으로 커졌고, 파업으로 직장폐쇄를 당했고, 각종 징계와 소송에 시달리다 끝내 집단 사표를 내고 백수가 되었다.

<시사IN> 창간으로 '인생재역전'을 이룰 수 있었지만, 되새기기 싫은 소화불량과 불면의 날들이었다. 그 악몽같은 현실이 데자뷰가 되어 취재현장에서 계속 재현되었다. 낙하산 사장 선임에 반대하는 YTN 기자들이, 정부의 KBS 장악에 반대하는 KBS사원행동 사원들이, 검찰의 강압수사에 반대하는 <PD수첩> PD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서 데자뷰를 느꼈다. 잘못된 역사가 매번 반복되었다.

우리는, 늘 졌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았다

정말 소스라칠 정도로 비슷했다. 편집권 독립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켰던 우리들의 뒤통수를 쳤던 배신자들, 삼성의 대리인이었던 그들처럼 정권의 대리인들이 혹은 조중동의 대리인들이 그들의 뒤통수를 쳤다. YTN의 날치기 주주총회, KBS의 정연주 사장 해임 이사회, 그 치열한 몸싸움의 와중에 지나간 악몽은 데자뷰되었다. 그리고 7월22일. 미디어악법 통과 과정은 그 모든 악몽을 합친 만큼의 충격을 주었다.

싸움의 끝은 허무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늘 졌다. 무도한 공권력은 염치를 차리지 않았다. '시사저널 파업'을 거치며 패배에 패배를 거쳐 결국 집단사표까지 썼던 우리들처럼 YTN 기자들도, KBS 사원행동 회원들도, MBC PD들도 씁쓸한 패배를 연거푸 맛보았다. 매번 싸움이 끝날 때마다 징계와 소송이 악다구니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싸움을 그칠 수는 없었다. 도발은 쉼 없이 진행되었다. 지난해 연말부터는 '미디어악법 개정' 문제를 놓고 국회 회기마다 파업을 벌이며 싸워야 했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이 싸움의 초입인지 중간인지 말미인지 아무도 모른 체 모두들 거리로 나서야 했다. 1차 총파업과 2차 총파업을 힘겹게 버티고 3차 총파업을 맞이했다.

마치 황산벌에 선 계백같았다. 이쪽의 승리는 한 번의 승리일 뿐이지만 이쪽의 패배는 곧바로 멸망이 되는 싸움, 그 절체절명의 승부가 펼쳐졌다. 매번 아슬아슬하게 막아냈지만 세 번째 침입은 막지 못했다.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국회 본청까지 밀고 들어가 항의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예측가능한 패배였지만 충격은 컸다.

상식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낙담한 가운데, 다시 '시사저널 파업'을 떠올렸다. 그 절망의 한 가운데서 우리는 <시사IN> 창간을 결정했고, 기적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발휘되었기 때문이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소액 성금으로 창간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연이은 패배가 가장 극적인 성공의 씨앗을 잉태해 준 셈이었다.

우리를 지탱해준 힘은 상식이었다. 상식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이 빚어낸 총의였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약속, 그리고 함께 그리는 미래의 전제조건이었다. 사람들은 상식을 무너뜨리는 것에 분노했다. 무너진 상식을 되돌리는 데에 그들은 기꺼이 행동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무리하게 미디어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재투표를 실시하고 대리투표까지 감행했다. 내용은 물론 그 형식까지 불법적인 미디어악법에 국민의 상식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법률 제정에 대한 상식을 기망한 한나라당의 행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시사IN>을 창간하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감동의 날들이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조그만 감동과 큰 감동 덕분에 우리는 창간의 험로를 완주할 수 있었다. '좌절하면 변절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그때 만났던 감동은 우리를 좌절로부터 지켜주는 일종의 백신이었다. 지금 낙심한 언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희망 백신'일 것이다.

지금 안팎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MBC와 YTN 구성원들에게, 혹은 KBS사원행동 회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나에 대한 믿음, 내 옆의 동료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시민에 대한 믿음이 끝내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갖게 할 것이다. 그들에게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그 믿음을 확신으로 바꿔 줄 것이다.

주>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