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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언론노조 3차 총파업 중계 게시판

정권과 맞선 당당한 언론인들, 이들에게 박수를!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7. 30.




7월22일,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은 아홉 겹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의장석 주변은 한나라당 의원과 국회 경위들이 둘러싸고 민주당 의원의 진입을 막았다. 그 본회의장 안은 야당 의원들이, 밖은 야당 보좌진이 둘러싸고 한나라당 의원의 출입을 막았다. 국회 경위들은 본회의장이 있는 국회 본청 출입을 통제했고 그 밖에서는 경찰이 본청을 둘러싸고 출입을 봉쇄했다.

경찰 앞에서는 언론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본청 출입을 시도하며 한편으로는 한나라당 의원의 출입을 막았다. 국회 정문에서는 경찰이 시민의 국회 출입을 통제했다. 국회도서관에 가는 시민도 막았다. 경찰 앞에는 촘촘하게 차벽이 쳐져 있었다. 국회는 거대한 요새와 같았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경찰은 민주노총과 KBS 노조 시위대를 막기 위해 국회 앞 대로에 인의 장막을 쳤다. 아홉 겹 장벽을 치고 한나라당 의원과 야당 의원이, 한나라당 보좌진과 야당 보좌진이, 국회 경위와 경찰 그리고 언론노조 조합원이 피아의 구분 없이 뒤엉켜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벌였다.

    
국민이 경찰 허가받고 국회 들어가야 하나?

국회 본청 안에서 정규군(국회의원)이 법안 상정을 놓고 드잡이를 하는 동안 본청 바깥에서는 의병(언론노조 조합원)이 경찰의 소화분말을 맞으며 본청 진입을 시도했다. 최상재 위원장 등 지도부는 본청에 들어가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막고 있었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을 막은 최 위원장은 “지역구 의원이 어떻게 지역 언론을 말살하는 법에 찬성할 수 있는가. 차라리 나를 밟고 넘어가라”고 말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을 예고한 오후 2시가 가까워오자 언론노조 집행부는 결단을 내렸다. 국회 본청에 진입하기로 한 것이다. 구속까지 각오한 일이었다. 최상재 위원장은 언론노조 집행부 간부들에게 뒷일을 수습해달라고 부탁하며 몸을 던졌다. 그러나 경찰벽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몸싸움 과정에서 MBC 본부 노조원 등 19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날 경찰에 연행돼 관악경찰서에 구금되었다 풀려나온 춘천 MBC 김창식 지부장은 “국회에 들어가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국회의원이 부당하게 날치기 하는 걸 막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국민이 국회에 왜 경찰의 허가를 받고 들어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최상재 위원장은 국회 본청을 에돌아 먼저 들어간 YTN 노종면 지부장이 열어준 창문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MBC 본부 이근행 본부장이 들어가려 했지만 경찰들이 그의 다리를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이 본부장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최 위원장은 “이근행 위원장의 애처로운 눈빛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사람 같았다”라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들의 도움으로 이근행 본부장도 본청에 진입할 수 있었다. 심석태 SBS 본부장 등 다른 지본부장도 뒤따라 들어갔다. 마이크를 잡은 노종면 지부장은 “방송 뉴스 앵커였던 내가 창문을 넘어 국회 본청에 들어왔다. 그러나 국회의장이 민의의 전당을 유린한 것에 비하면 창문을 넘어온 것이 부끄럽지 않다”라고 말했다.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 체포 장면

 

그러나 전세는 이미 기울었다. 국회 경위와 한나라당 당직자들에 의해 본회의장 오른쪽 출입문이 뚫리면서 경위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갔다. 이윤성 국회 부의장도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토론과 법안 심의 절차 없이 상정된 미디어 법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었다. 방청석에 자리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국회 밖에서는 KBS 노조 조합원 500여 명이 총파업 출정식을 마치고 민주노총 시위대와 함께 국회 앞 대로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KBS노조까지 포함된 지상파 4사(KBS·MBC·SBS· EBS)의 연대 파업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CBS와 YTN까지 100시간 파업에 가세해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미디어법이 전격적으로 직권 상정되어 표결  처리된 것에 대해 언론노조는 ‘허를 찔렸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여론 독과점에 대한 우려를 제시한 후 민주당과 한나라당 간의 법안 절충이 속도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노조 채수현 정책실장은 “쟁점이 되는 부분에서 이견이 좁혀지고 있었다. 갑자기 한나라당이 협상 중단 선언을 하고 의장석을 점거하는 것을 보고 기만책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표결 처리된 안이 협상안보다 훨씬 후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하게 표결이 진행되면서 미디어법은 몇 가지 오류를 남겼다. ‘일사부재의 원칙’을 어긴 것, 몇몇 한나라당 의원이 ‘부정 대리투표’를 한 것, 그리고 방송법 수정안의 ‘지각 접수’까지 오류투성이였다. 언론노조는 자유당 시절의 ‘사사오입 헌법’에 빗대어 이번 미디어법 입법을 ‘낙장 입법’이라고 비꼬았다. 화투판의 ‘낙장불입’ 원칙을 어긴 입법이라는 것이다.

표결 처리 후 국민 반발 확산

시민도 분노했다.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진행된 ‘언론악법 원천무효 촛불문화제’에 시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첫날 촛불집회는 언론노조 조합원 위주로 참여했으나 다음 날부터 일반 시민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시민사회단체도 역량을 촛불문화제에 집중했다. 언론노조와 함께 미디어법 개정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미디어행동의 박영선 대외협력국장은 “법안 상정 이후 대학생과 일반 시민 참여가 부쩍 늘었다. 비상식적인 입법에 시민이 분노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언론악법 원천무효 촛불문화제’는 7월24일 금요일부터 여의도를 벗어나 서울시청으로 장소를 옮기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범국민대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장외 투쟁을 선언한 민주당 등 야당이 이에 결합했다. 여의도에서 마지막 집회를 열며 최상재 위원장은 “미디어법은 통과되지 못했다. 우리가 승리했다”라고 선언했다. 언론노조는 미디어법 개정의 불법성을 시민 이슈로 끌어올린 것에 만족하고 3차 총파업을 갈무리했다.

파업은 갈무리되었지만 아직 곳곳에 화약고가 남아 있다. 일단 MBC는 7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선임을 남겨두고 있다. 119명이 방문진 이사에 지원했는데 김우룡 한양대 석좌교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황근 선문대 교수 등 한나라당 추천을 받고 ‘미디어발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인물이 대거 등록했다. 방문진 이사진이 여당 인사 일색으로 꾸려질 경우 언론노조 MBC 본부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MBC 본부는 방문진 이사 선임을 비롯해 MBC 장악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하고 있다. 7월24일 정리 집회에서 이근행 본부장은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 북두의 별이 일곱에서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의 시대가 끝난다. 여기 계신 분들이 다 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MB의 시대를 끝내자”라고 말했다.

YTN 역시 이번 법 개정에 매우 민감한 곳이다. 신문사나 재벌이 보도채널 지분을 30%까지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주주 대다수가 공기업인 YTN의 앞날은 지금 바람 앞의 촛불이다. 노종면 노조위원장은 “조·중·동이 보도채널에 진출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YTN을 인수하는 것이다. 그런 도발이 있으리라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정권 내내 언론과 싸우게 될 것”

이번 미디어법 직권 상정에 방송사 노조만큼 분노한 곳은 지역신문 노조였다. 신문법 개정으로 신문사나 방송사가 다른 일간신문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서 조·중·동이 지역신문을 장악할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이호진 부산일보 지부장은 “조·중·동은 이번 파업을 MBC 파업으로 왜소화한다. 그러나 전국의 지역신문이 다 들고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방송사 노조와 지역신문 노조의 분노가 폭발한 가운데,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은 미디어법 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추가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기존 방송사의 1인 소유지분 한도를 40%까지 인상한 법 개정으로 SBS 소유주가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며 트로피를 SBS 윤세영 회장에게 넘기기도 했다.

언론노조 관계자들은 조·중·동이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채널 진출을 넘어 지상파 방송 인수까지 나설 가능성이 여전한 것으로 본다. 현상윤 전 KBS 노조위원장은 “KBS 2TV의 분리 민영화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슈다. 조·중·동의 방송 장악을 위한 첫 단추를 꿰었을 뿐이다. 더 큰 먹이를 얻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강택 전 PD연합회 회장은 공영방송법 개정을 통해 조·중·동에 또 다른 특혜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방송 광고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정부는 KBS에서 광고를 없애고 시청료를 올려  손실을 보전한 뒤 그 광고가 조·중·동 종합편성채널에 갈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민 주머니를 털어서 조·중·동 방송을 안착시킨다는 것이었다.  

방송 광고와 관련된 미디어렙법 개정도 관건이다. 조·중·동 방송에 특혜를 줄 수 있도록 개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언론노조 채수현 정책실장은 “미디어렙법 개정은 물론이고 정권이 끝날 때까지 싸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기와 디지털방송 전환기가 맞물려 있는데, 조·중·동과 함께 정권을 재창출하고 그 대가로 디지털 방송 전환시 지상파 채널을 선물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파업 마무리 집회에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는 각오로 시작한 파업이다. 우리가 눈으로 본 사실을 국민에게 생생하게 알리자.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이 ‘보도투쟁’이다. 그래서 우리 후배들이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외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자”라고 말했다.

주> <시사IN> 98호에도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