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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닷컴 Inernational/박태인의 미주리 통신

플로리다대 유학생들, "우리가 촛불을 들고 시국선언을 한 까닭은..."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8. 3.


'독설닷컴' 미주리대 특파원으로 활약중인 박태인님이 흥미로운 인터뷰를 보내왔습니다.
유학생 시국선언을 주도한 '플로리다촛불' 유학생들을 사이버인터뷰를 통해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정리가 늦어져 인터뷰 시점으로부터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왜 공부하기도 바쁜 유학생들이 
해외에서 촛불을 들고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를 차리고 시국선언을 하는지 궁금하시다면, 
한번 진지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실 것입니다.
 



인터뷰 시간 : 미국 현지시간 7월12일 저녁 9시에서 11시 28분까지 2시간 28분 동안 진행

인터뷰 진행 : 박태인 (University of Missouri-Columbia Pre-Journalism 전공)

인터뷰 대상 : 
장용석(University of Florida 도시계획과 박사과정)
김하련(University of Florida 토양학과 박사과정)
권지운(University of Florida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박일(University of Florida 의공학과 박사과정)  


“미국 유학생 촛불, 플로리다 캔들을 인터뷰 하다”

지난 6월 28일, 해외 유학생 621명은 시국 선언문을 발표 하였다.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비싼 커피를 마시며 대한민국의 문제라곤 ‘환율’ 이외에는 관심도 없을 줄 알았던 그런 유학생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며 자신의 이름을 시국 성명서에 담았다. 지난 6월 항쟁 이후 22년 동안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가 2년 만에 파괴될 수 없다는 그들의 시국선언문은 대한민국의 그 어떤 시국선언문 보다 더 진지했고 따끔했다. 필자는 해외 유학생 시국선언을 주도하고, 시국선언문을 작성하였던 해외 유학생 모임 ‘플로리다 캔들’의 운영자 4인, 장용석, 김하련. 박일. 권지운 씨를 인터뷰 하였다. 인터뷰는 2시간 28분 동안 인터넷 메신저 시스템 구글톡(Google Talk)을 통해 진행 되었다.




박: 우선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 플로리다 캔들은 어떤 단체인가? 간단한 소개를 부탁 드린다.

플로리다 캔들: 플로리다 캔들은 플로리다대(University of Florida) 의 한국 유학생 내에 사회 문제를 토론하는 모임이다. 시작은 한국에서 2008년 촛불집회에 영향을 받아,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지지하기 위해 촛불집회를 같이 할 사람들을 모집하였다. 학교 한인학생회 게시판에 올리는 식으로 사람을 모았는데, 한 1명 정도 올 줄 알았다. 하지만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었고, 이것을 계기로 1년 전부터 꾸준히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박: 플로리다대(University of Florida) 에 한국 학생은 몇 명이나 되는가?

플로리다 캔들: 한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해서 1차에서 4차까지 촛불집회 모임을 가졌었다. 1차부터 4차까지 20~30명 정도가 나왔었다. 이 후 계속해서 학생들과 돌아가며 서로의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토론도 하는 모임을 가졌었는데, 20명에서 10명 그리고 점점 인원이 줄어 현재 매번 참석하는 인원은 한 5~10명 정도 된다


박: 플로리다 캔들은 유학생 시국선언을 포함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였나? 또 한 단체의 구성원들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플로리다 캔들: 우선 플로리다 캔들을 단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우리가 상하 관계를 가지는 조직도 아니고, 개개인의 직함도 없다. 또한 우리 모임 내에서의 이념 스펙트럼도 다양하기에 단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플로리다 캔들에서 해왔던 외부적인 행사들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이다. 우선, 작년 한국에서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대학교 내에서 학생들과 함께 했던 1차~4차 촛불 문화제가 있었고, 두 번째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학교 내에 분향소를 차리고 사람들이 조문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 유럽 및 북미 유학생들 621명을 대상으로 시국 선언을 발표하고 시국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플로리다 캔들의 구성원 비율은 대학원생 위주이다. 사실 학부생은 1명도 없다. 오히려 우리 모임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 학생 4~5명 정도 가 참여하였고, 학교 내 신문사에서 취재를 하러 온 적이 있었다. 현재 모임에 매번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박사과정의 학생들이다.

박: 가족들이 있는 분들도 있고, 대학원 생활이 만만치 않을 텐데 이런 사회 참여 운동을 하기 여건상 어려움이 있지 않은가?

플로리다 캔들: 우선 간단히 이야기를 하자면, “먹물을 먹은 사람은 먹물 값을 해야 된다고 본다”. 이 부분은 플로리다 캔들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바이다. 1987년 민주 항쟁 이후 22년 동안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권 이후 2년 만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사회에 빚진 부분이 있고 갚을게 있다고 본다. 우리는 나름대로 여가 시간도 갖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여가 시간을 이용한 이러한 활동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소중하다. 플로리다 캔들 내의 모든 인원들은 이러한 시간 투자가 희생이라고 보진 않는다. 진중권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이명박 정권은 메스게임의 정치학을 원하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마음대로 굴러가기를 바라는, 하지만 이번 촛불시위에서의 모습은 철새의 정치학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이끌어서가 아니라 알아서 자신의 길을 가다 보니 다 같이 모여진……

박: 플로리다 한인 사회와 다른 유학생들이 플로리다 캔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

플로리다 캔들: 절대 다수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드물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박: 욕을 한다? 혹시 모임을 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 그런 것인가?

플로리다 캔들: 욕 이라고 하니 표현이 조금 과격한 듯 하다. 욕이라고 해서 육두문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 자체를 많이 폄하하여 캔들 구성원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뜻이었다. 가장 흔한 예로 ‘공부나 해라, 너 졸업 걱정이나 해라.’ 등이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 알바들의 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박: 거기도 한인 교회가 한인 사회의 중심일 텐데 그쪽 한인교회에서는 플로리다 캔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플로리다 캔들: 이 지역에는 한인 장로교회와, 침례교회 이렇게 두 교회가 있다. 플로리다 캔들 구성원 중 장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그 교회에서 기기를 빌려온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캔들에 대한 지원인지 그 신자 분에 대한 지원인지에 대한 것이지는 알 수 없다. 여기 지역에서는 한인 침례 교회가 중심 교회인데 그 교회 목사님께서 촛불에 부정적인 설교를 했다는 얘기가 들리고 그로 인해 소수지만 교인 이탈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캔들 회원 누구도 그 설교를 직접 듣진 않았으므로 판단을 섵불리 할 수 없다. 다만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우리의 활동에 지원 혹은 격려 같은 것은 전무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 계열로써 한인 성당의 신부님께서는 촛불 집회를 강론 중에 소개해주시며 우리의 활동에 공식적으로 기여를 하였다.


박: 촛불집회나,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차리는데 있어서 사람들에게 색깔 공세라든지 오해를 받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플로리다 캔들: 그런 것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모았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시판에 모임의 정보를 올린 후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었기 때문에 그런 공세를 당한 적은 없다. 또한 촛불 모임이 한국에서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던 것처럼 자유롭고 평등적이었다. 행동 강령 같은 것 또한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차렸을 때도 우리가 분향소를 차리고 정보를 알렸을 뿐 사람들에게 강요한 것은 없었다. 분향소를 차렸을 때는 백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분향소에 들렸었다. 차로 다섯 시간이 넘는 거리에서 오신 분도 있었고, 아틀란타 총영사관으로 가실뻔하다가 우리 쪽으로 오셨다는 분도 계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분향을 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정말 뿌듯했었다. 아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일화가 있긴 했다. 시국 선언을 한다고 한 미국 학교 한인학생회 게시판에 공지 문 식의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때 어떤 학생이 “너희 이쪽에서 왔지” 라며 답글과 함께 링크를 건 적이 있었다. 그 링크를 따라가보니 북한산 정보가 나왔다. 기분이 나빴다기 보다는 재미 있었던 일화로 기억한다.

박: 최근 한국 사회의 움직임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플로리다 캔들: 누군가가 시민들을 이끌어 간 것이 아니다. 모두들 올바른 방향, 자신이 가야 하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촛불처럼 모이고 집회도 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바라는 정치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하지만 요즘 정권에서 자신의 뜻대로 날아다니는 철새들을 흩어지게 하려는 의도로 총을 쓰는 듯 겁을 주는 것 같다. 

박: 한국에 계신 부모님 및 본인들의 경제력은 어떤 층에 속하는가?

플로리다 캔들: 플로리다 캔들의 구성원들은 대학원생이다. 부모님에게 의존한다기 보다는 우리 월급을 받으며 학교를 다닌다. 물론 초기 정착을 하기 위해 부모님에게 일부 의존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대학교에서 받는 월급으로 생활을 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플로리다 캔들 참석자의 부모님은 중산층이라고 알고 있다. 유학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조금 다르다. 학부생 들 중에 벤츠를 끌고 다니는 사람, 통장 없이 카드만 들고 다니는 사람들 정말 돈 많은 사람 많다. 유학생들은 돈이 많다는 말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대학원생들 중에도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있다. . 이 부분은 이 정도로 마무리 하자.

*인터뷰어 주 (이 부분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부모님께 전혀 도움을 안받으신 분도, 현재 생활의 일부를 카드 빚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 한국에서는 최근 돈 많은 ‘강남’ 사람들의 ‘좌파’적 경향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었다. ‘강남좌파’라는 논의가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플로리다 캔들: 강남 좌파 문제에 대해서는 돈 많은 사람들의 진보적 성향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상황적의 요인으로 장기적으로 가기는 힘들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플로리다 캔들의 구성원 개인 의견을 담았다.

김하련: 사회에 비판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좌파라 불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진정 좌파란, 삶 자체에서의 진보성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가령, 교육에 있어 3불 정책을 지지하지만, 자신의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에 동참하거나, 용산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무계획적 투기성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강남 아파트 구입을 통해 투기 재산의 양을 늘린다면, 그런 사람들을 좌파라 칭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진정 좌파는 언어뿐만 아니라, 행동 양식 자체도 좌파적이야 한다.

장용석: 벤츠를 몰면서 진보운동을 할 수는 없다는 뜻인지?

권지운: 벤츠를 몰면서 진보운동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부의 축적과정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서민층을 대변해야 할 좌파 세력이 서민의 피를 빠는 행위를 통해 부를 축적 했다면 그게 어떻게 좌파일 수 있겠나. 하련 씨의 예와 같은 이는 전형적인 한나라당의 젊은 피 수혈 대상에 속한다.

장용석: 유학생은 기득권 세력이라고 본다. 현재 경제적 수준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점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게 겸손한 자세라고 본다.  유학생을 특권층으로 보는 것은 편견이 아니라는 거다. 다만 유학생이기에 촛불을 드는 행위를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교수님들도 촛불들 들지 않는가? 오히려 유학생이나 교수님, 부자들 같이 뭔가를 '가진자'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촛불을 들 의무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박: 유학생 시국선언으로 넘어가보자. 시국 선언 과정은 어떠하였는가?

플로리다 캔들: 촛불집회를 하고 있을 때 마이애미에 있는 대학에서 한 분이 찾아 오셨었다. 그 분은 북미 및 유럽 해외 교수 시국선언문을 작성하는데, 우리학교의 한국인 교수님과의 만남을 부탁했었다. 이 부분을 도와드리며 유학생 시국선언을 해보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실행에 옮겼다. 22년 전부터 이루어 놓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2년 만에 무너지는 것들을 보며 시국선언의 필요성 또한 모두가 공감했던 일이었다.  미국 내에 있는 대학교의 한인 학생회 게시판에 글도 남겼고 유럽 대학생들과의 접촉은 유로진보넷 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로부터도 도움을 받았다. 시국 선언의 초안은 플로리다 캔들에서 맡았고, 이후 많은 분들의 참여를 통해 첨삭되었다.


박: 유학생 시국선언 참여 인원은 많을 것이라 예상했나?

플로리다 캔들: 어떤 분은 1000명 이상을 어떤 분은 200명 정도를 예상했었다. 말 그대로 생각보다 적기도 많기도 하였다. 총 600명이 넘는 인원을 모았으니 적은 인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사람들을 모여 이메일등을 저장해 놓지 못했다는 것, 지속적인 연락이 쉽지 않다는 점등이 아쉽다. 물론 이 부분은 계속해서 노력할 사항이다.

박: 유학생 시국선언 이후 플로리다 캔들의 발전방향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이후 활동 계획은?

플로리다 캔들: 최근 플로리다 캔들 내에서 발전 방향에 대한 치열한 고민 중이다. 우선 플로리다 캔들 내에서의 사람들의 이념적으로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해서 다양한 이슈를 한꺼번에 제기하며 모임을 가질지, 몇 가지 이슈에 선택과 집중을 해서 토론을 할지 고민에 있다. 또한 오프라인 모임에 중점을 두고 여기서 내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과 온라인 모임을 통해 다양한 이슈들을 토론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해서 이 부분도 치열히 토론 중이다. 현재 온라인 플로리다 캔들 홈페이지(http://groups.google.com/group/florida-candle) 내에서 다양한 이슈와 토론들이 이루어 지고 있고 많은 분들이 읽어주고 있는 것 같다.   


박: 미국 그리고 다른 해외에 있는 분들과의 연락을 위해서는 온라인 중심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플로리다 캔들: 물론 그런 부분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지켜봐 달라” 라는 한마디 이다.

박: 미국 및 해외 한인 모임 중 플로리다 캔들 외에 다른 모임은 있는가?

플로리다 캔들: 우선 우리와 시국선언을 같이 준비했던 유럽 진보넷 (http://www.eurojinbo.net/) 이 있다. 이 커뮤니티는 우리 모임보다는 역사도 길고 체계적이다. 하지만 우리 중 이들이 지나치게 독선적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다. 또한 미주 한인 시국선언을 주도했던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시국선언 이후 만들어진 온라인 모임이지만 활동력이 상당히 큰 것 같다.

박: 대학원 이후에 어떤 진로를 생각하고 계신가? 이후 사회 참여를 지속적으로 할 예정인지?

하련: 한국에 들어올 것이다. 남편이 한국에 있기에, 한국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기 때문에, 당에서 진행하는 환경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고, 가사, 육아, 교육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 부부가 바꿔야 할 작은 실천들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싶다.

지운: 물론 지속적인 사회참여를 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장용석씨의 말대로 먹물을 묻혀서 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당연한 소명이라 생각한다. 정의로운 사회의 수혜자는 그 구성원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박일: 한국에 들어갈 생각은 별로 없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에 전혀 관심 없었는데, 촛불 이슈를 통해 한 번 관심을 가지고 생각이 깨워진 이상 자연스럽게 지속적인 사회 참여를 하게 될 것 같다.

박: 플로리다 캔들이 어떤 의미이신지? 각각 개인에게는?

하련: 자칫 개인주의로 빠져들 수 있는 유학생활에 있어, 플로리다 캔들은 시국 문제에 대한 토론을 통해, 스스로에게 공동체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혼자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촛불 집회, 온라인 서명, 조문 등등 당연히 한국민으로써 해야 할 일들을 플로리다 캔들은 우리에게 가능하게 해주었다. 또한, 졸업 후 나의 공부가 어떻게 한국 사회에 환원되어 진보적 가치로 활용될 수는 지에 대한 아이디어와 자극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운: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사실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며 그 이상의 실현에 대해 많이 회의적이다. 많이 지치고 힘이 빠진다. 그런 나에게 있어 이 모임은 그 나마 나에게 답답함을 토로할 수 있는 장이 되었고 작지만 희망을 준 단체이다. 시국선언 참여율에 대해서도 상당히 회의적이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이런 계기를 통해 좀 더 시각이 낙관적으로 바뀌고 그로 인해 사회 참여에 더욱 힘을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모임은 나에게 희망이며 답답함의 배설장소이다.

박일: 책임감이 느껴지는 자식 같은 모임이다. 흩어져서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해외 각지의 유학생들을 이어줄 온라인 집단 지성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장용석: 친구이다. 유학생활 길어지니 친구가 없다. 외롭다. ^^. 원래 없었나? 하하. 촛불 하면서 없던 친구가 더 없어졌다. 과격해 보이거나, 부담스러워 보이나 보다.  위로다. 물 대포 맞는 시민들 보며, 나는 맞지 않았지만, 가슴 아팠다.  그런 시민들이 폭도로 몰리는 것 보니, 억울했다. 이곳에서는 그분들을 시민으로 본다. 위로가 된다.  속죄다.  한국에 계신 한 유명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신은 민주화 운동을 한 친구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그분뿐인가? 22년 전 민주화를 주도했던 386 세대들에 대해 우리 모두는 '빚진자'이다.  그래서 '빚진자'라는 문구를 선언문에 꼭 넣고 싶었고, 넣었다.  그런데 한편 386선배들을 이해 못한 부분도 있다.  그들을 쉽게 말한 부분이 있다는 거다.  플로리다 캔들은 진 빚을 갚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고, 그런 가벼웠던 생각들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다.  이번 시국선언도 개인적으로는 빚 갚는 마음, 속죄하는 마음의 작은 표현이다.  구원이다. 혼자서 억울해 죽을 것 같을 때, 이곳 분들과 이야길 하다 보면 위로를 넘어 세상이 용서가 된다.  촛불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천주교 사제단이 시국미사를 올렸다.  그날 밤 아고라에서는 사제단에게 감사 한다는 글이 넘쳤다.  그 동안 폭도로 몰렸던 억울함 뭐 그런 것들이 해소되었다는 거였다.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치유를 체험한 간증이 넘쳤던 거다.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