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 어른의 여행 큐레이션, 월간고재열
  • 어른의 허비학교, 재미로재미연구소
독설닷컴 이슈 백서/아파트에 대해 말걸기

아파트단지에서 벌어진 국회 뺨치는 권력투쟁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8. 7.


제가 전세로 살고 있는 송파구의 한 아파트단지는 시가 총액이 전국 1위인 곳입니다. 
이전까지는 올림픽선수촌아파트가 1위였는데, 이 아파트가 얼마전에 제쳤습니다. 
총 6864세대로 규모로는 아마 전국에서 두 번째일 겁니다.  

이사올 때는 제가 살던 광진구보다 전세가가 낮아서 '잠실에서 한번 살아볼까' 하고 왔는데,
6개월만에 전세가가 1억이 오르더군요. 허걱~
그래서 정말 '한번 살아본다'는 심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규모가 규모이다보니 이 아파트단지와 연관된 이권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재건축조합 당시부터 시비가 많았습니다.
(근처에 재건축 아파트가 많은데, 사정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비리에 의한 조합장 구속과 새로운 조합장 선출이 있었고,
새로 선출된 조합장이 백주에 야구방망이 테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합장도 문제가 많아 입주 뒤에는 외면당했습니다.
(동대표 선거에서 떨어져 입주자 대표에 출마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3기 정부 정도 되는 셈인데,  
10일 전쯤 이 3기 정부에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부회장 등 동대표들이 회장과 다른 간부진을 탄핵한 것입니다.
부회장은 원래 회장과 연정을 구성해 재건축조합 세력을 물리친 주역이었습니다.

쿠데타세력은 그저께 임시 입주자대표회의를 열어 새로운 회장과 간부진을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사단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한번 가보았습니다.
회장 탄핵 이유가 주저리주저리 많았는데,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이 없었습니다.
분란이 생기겠다 싶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기 위해 가보았습니다.
(아내가 저녁을 차려놓은 상태에서 간 크게 두 시간이나 보고 왔다가 무쟈게 혼났습니다. ㅋㅋ)

회의장에 가보니 밖에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회장이 나타나 회의를 주관하고 있더군요.
그는 법적으로는 자신이 아직 회장이라며 서류를 내보이며 회의를 주관했습니다.
쿠데타세력이 이에 항의하고 회장석을 점거하려고 했지만, 회장파가 이를 완강히 막았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죠? 정말 국회와 똑같았습니다.)

지켜보니 동대표들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쿠데타세력, 회장세력, 그리고 관망파(이게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이야 하고 보고 있는...)
양측 동대표 몇 분은 정말 장난 아니시더군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책상을 탕탕 치고 욕하고 몸싸움하고... 

회장도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 동안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탄핵 사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크고작은 다툼이 십여차례 일어났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동네 정치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장은 탄핵 사유에 대해 반박하면서 효과적으로 구도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이 재건축조합세력과 맞선 개혁세력의 대표주자였다는 점,
자신이 시공사에게 하자보수금을 더 받으려 애쓰는 등 입주자 이익을 대변했다는 점,
이런 구도를 그려줘서 방청하는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 냈습니다.

보통 아파트 재건축조합의 조합장 구속과 집행부 교체가 일어나는 이유는
시공사 선정과 시공사와의 계약 문제 때문인데(보통 권력투쟁의 배후에 시공사가 있습니다),
이번 입주자대표회의의 권력 투쟁을 보니 아파트관리업체가 뒤에 있더군요.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된 후 관리업체를 바꾸기로 했는데,
전 관리업체가 몇몇 동대표를 부추겨서 이런 분란을 일으킨 것 같았습니다.
주민들은 센터장을 불러와서 추궁하자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날수록 쿠데타세력이 초조해지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보니까 이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수적으로는 다수였는데, 전투력이 떨어져 보였습니다(마치 한나라당처럼. ㅋㅋ) 
인적 구성으로도 쿠데타세력은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 몸싸움에서도 밀렸습니다.
(쿠데타세력에 노년층이 많은데 비해 회장파는 상대적으로 중장년 층이 많았습니다.)

두 시간 정도 지나자 쿠데타세력이 하나둘 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슬쩍 그분들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적전 분열 양상이 나타나더군요. 서로가 서로를 탓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회장에 붙어먹은 것 같다. 누구냐? 하면서 배신자를 찾고 있더군요.
이들은 삼삼오오 근처 테니스장 관리실로 가서 향후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대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일단은 현 회장이 극적 반전을 이룬 셈인데, 
법정 소송을 통해서 후반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커보였습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시끄러울 것 같습니다.


독설닷컴 트위터를 개설했습니다.
twitter.com/dogsul 입니다. 
following 부탁드립니다.



회장석을 차지하기 위해 양측 동대표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이를 근심어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몸싸움이 계속 벌어지자 경찰까지 출동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두 시간 동안 자신의 입장을 해명했다.

쿠데타를 일으켰던 동대표들이 상황이 불리해지자 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쿠데타를 일으켰던 동대표들은 테니스장 관리실에 모여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