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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저리뉴스/정동영 출마 논쟁

정동영이 무친 도토리묵이 부실했던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9. 8.


일단 이 글이 ‘정빠’글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얘기해둔다.
‘독설닷컴’은 정동영 의원이 출마할 때, 어느 블로거보다 혹은 어느 언론보다 모질게 비판했었다.
‘정동영 출마논쟁’ 카테고리의 글을 보면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팬클럽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듣기도 했다.

정동영 의원을 비난할 때, 맺힌 것 있냐는 말을 많이 하던데, 없었다.
오히려 큰 도움을 받았었다.
정 의원은 ‘시사저널 사태’와 ‘시사IN 창간’ 때 어떤 정치인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도왔었다.
수박을 사들고 와서 응원하기도 하고 고가에 자신의 ‘캐리돌’을 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설닷컴’은 모질게 씹었다.

그것은 그가 대선후보였기 때문이었다. 
대선후보였던 그에게는 일반 정치인에게 적용되는 잣대보다 좀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했다(그 엄격한 잣대를 이명박에게 들이댔지만 국민들은 외면했었다).

협박도 받고 주변에서도 말렸지만 ‘정동영 때리기’는 6개월을 채우려고 했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정동영 의원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정 의원 주변에는 ‘배고픈 이해관계자’들만 득실거린다.
그들의 허기진 판단에 의존한다면 정 의원의 정치적 미래는 없다. 

목표했던 6개월을 채우지 않고 ‘정동영 때리기’를 멈추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정치적 약자’라는 점이다.
연예부 기자가 꺾인 연예인 루머 건드리지 않듯이
정치부 기자도 비주류 정치인 쫓아다니며 스토킹하지 않는다.
그것이 ‘상도’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사실 이것이 본질적인 이유인데,
이제 그가 판에 들어오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입당이든 아니든 범야권의 주자로서 그를 리그에 포함시켜야 한다.
유시민도 그렇고, 한명숙도 그렇고, 이해찬도 그렇고,
다들 ‘각개약진’ 하면서
MB의 ‘중도서민 프레임’에 대적할 프레임을 만드는 경쟁을 해야 한다.    
  
엊그제 ‘정동영 때리기’를 멈춰야겠다고 맘을 먹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정 의원은 언론노조와 언론연대가 주최한 ‘탐탐한 바자회’에서 기금 마련을 위해 파전(4천원)과 도토리묵(5천원)을 팔았다.
물론 거기서 자원봉사를 했기 때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사연은 이렇다.

그가 만들어준 '도토리묵'은 너무나 부실했다.
도토리가 열조각도 안 되었다. 내가 먹어본 가장 부실한 도토리묵이었다.
그가 정치인 마인드로 도토리묵을 만들었다면 푸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후원금 마련을 위한 도토리묵이었으니 인심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도토리묵을 받으러 온 사람은 소문난 스토커였다.
그런데도 그는 냉정을 유지했다.
도토리묵을 무치다 한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는 딱 한 조각 더 넣어 주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나중에 사먹은 사람은 도토리묵을 거의 찾기 힘들었을 정도라고.

그날 먹은 파전도 정말 얇았다.
사실 파전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부추전이었다(사기 영업? ㅋㅋ).
나는 그렇게 얇은 파전은 이태껏 본적이 없었다.
그것 역시 수익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경매 때 정동영 의원 본인도 도토리묵에 관한 얘기를 했다.
그동안 술안주로 나온 도토리묵에 묵은 안보이고 왜 야채만 범벅이냐, 불만 많았는데,
오늘 도토리묵 무쳐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고, 양껏 넣어주면 남는 게 없다고...

음식을 야박하게 주는 것은 정 의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전주 출신이다. 
음식 맛나기로 소문난 전주 출신이 음식에 그렇게 야박하게 구는 것은 거의 범죄에 가깝다.
그런데 전주 출신이, 정치인이, 기꺼이 악역을 맡았다는데, 박수를 보낸다.

그날 ‘투명 파전’과 ‘숨은 묵 찾기 묵무침’을 먹고 난 뒤,
‘정동영 때리기’를 멈추기로 결심했다.
파전과 도토리묵 얻어먹고 그러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분명히 9천원 계산했다(흠...서비스로 주는 덤도 없었다).

정운찬은 총리가 되고
정몽준은 한나라당 대표가 되고
정동영은 의원이 되고
정세균은 당 대표고...

‘3김시대’가 지나고 ‘4정시대’가 열린 것인가?
‘4정시대’라? 좋네. 누가 안 썼으면 ‘독설닷컴’이 맨 먼저 쓴 걸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