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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깊숙히 들여다보기/'작가저널리즘'을 찾아서

한 KBS 라디오 진행자의 고백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0. 15.



지난주 토요일(10월10일) 오후 홍대의 한 클럽에서 KBS 라디오작가들이 모였습니다.
모여서 낮술을 진탕 마셨습니다.
이병순 사장의 KBS 흑자 신화를 만들어 주기 위해
전속 작가 축소와 원고료 삭감 등을 감당해야 했던 울분을 풀었습니다.  


그 자리에 한 KBS 진행자가 작가들에게 연대사를 보내왔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감정을 꾸욱 눌러쓴 글입니다.
지금 KBS 내부 상황을 적나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글이기에 올립니다.


주> 오늘 오후에 KBS에 갔다가 언론노조 KBS비정규직지회 소속 노조원들을 만났습니다.
역시 이병순 사장의 흑자신화를 위해 400여명이 넘게 해고되었다고 하더군요.
지난번 KBS 국감 때 이병순 사장을 덮친 이들이 바로 이 비정규직 지회 회원들입니다.
조만간 이들이 이병순을 덮친 사연과 그 과정을 담은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라디오의 안주인, 작가
드러나지 않는 그 노고와 열정에 대해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는 운명을 안고 사는 라디오 진행자입니다.
분야가 분야다 보니,
작가의 원고에 가타부타 토를 달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방송이 시작되면 쓸 데 없는 애드립까지 섞고 보니,
작가의 당초 원고는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아예 오프닝을 포함해 일부 대목에는 제가 작가역까지 맡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방송을 하면서
작가분들의 원망을 사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로, 저 자신은 방송사의 누구보다도 더
작가분들에 대해 공감한다고 자부합니다.
작가역까지 해본 만큼 더,
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노고와 열정을 이해한다는 말씀입니다.

프리랜서 작가와 진행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매개로 한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둘은 각각 방송의 안과 밖을 맡아,
PD가 연출하는 방송을 주도해나갑니다.
물론 방송사의 철밥통인 PD와 달리,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이건 우스갯소리입니다만,
그래도 작가가 진행자보다 더 낫습니다.
적어도 작가들은 청취자나 네티즌들로부터 욕을 먹지는 않습니다.
가끔씩은 나가 죽으라는 저주의 대상의 되지는 않습니다.

특히 오늘 KBS 작가협회 라디오지회의 모임에서
저는 여러분과 각별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 KBS 내부 상황이 급격히 악화돼 가고 있는 가운데서,
작가 여러분들이나 저는 전례 없는 모멸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여러분도 전속 작가 축소나 원고료 삭감 과정에서
울분을 삼키셨겠습니다만,
저 역시 외부 진행자 추방 과정에서,
모두 발설하기 어려운 압박과 터무니 없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방송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껏 수시로 엄습하지만
여러분을 포함한 젊은 방송인들과 청취자분들의 격려로
간신히 이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요즘은 차라리 KBS가 내게 인내심을 가르쳐주려고 그러는구나,
이렇게 마음 편히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마음을 한 번 달래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라디오 방송에서 작가의 역할을 안주인에 비교하고 싶습니다.
외형적으로 빛이 나지는 않지만,
이 분들이 없으면 가정이 제대로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생색을 내는 PD나 진행자가 바뀌어도
좋은 작가가 중심을 잡은
라디오 방송이 장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방송사가
작가의 역할과 기능을 재평가 하는 시기가 곧 오길 바랍니다.
그 어느 곳보다도 먼저 KBS에 그런 때가 오기를 고대합니다.
그런 기회가 오면 저는 누구보다도 먼저,
작가의 역할과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모든 방송사 인력들에게 증언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음지에서도 묵묵히,
오로지 방송을 위해 몸을 던지는 여러분의 열정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비록 직접 참석은 못하지만,
멀리서나마 여러분의 행사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자리는 평소 방송국에서 하기 힘들었던 진지한 말도 하겠지만,
가볍게 와인도 한 잔씩 하는 기회라고 들었습니다.
부디 흉금을 터놓는 즐거운 음주가무가 되길 빌겠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를 끝내고 안전하게 귀가하는 그 순간까지,
저도 마음만은 여러분 곁에 함께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KBS 이병순 사장에 맞섰던 라디오작가들이 간만에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유쾌한 잔치마당 분위기를 사진으로 전합니다.



KBS 라디오작가회장님. 사실 이날 행사는 진지한 세미나 자리로 예정되었으나 그동안 지친 작가들을 달래기 위해 파티로 변경되었다.


초대가수...이름이 뭐였더라?...여하튼 이날 진행한 남자 작가분과 친구 먹었다.


발언과 공연 그리고 강연이 교대로 진행되었다.


축하방문을 한 SG워너비 멤버, '우결'에도 나온다고 하던데 이름이 뭐더라?


라디오작가계에 드문, 남자 작가분들. 오른쪽 작가분이 사회를 보셨다.


축하공연을 온 크라잉넛. 이후 사진은 그들의 공연에 환호하는 라디오작가들 모습이다.






이 사진부터는 행사의 하이라이트, 막춤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