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독설닷컴'에서 포스팅한
'보신각 타종 행사 연출한 KBS PD를 위한 변명'
이라는 제목의 글에
이성규(독립PD)님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댓글로 묻힐 글은 아닌 것 같아, 포스팅합니다.
제 글이 '현장 PD의 한계를 이해하자'는 것이었다면 이성규님의 글은 '그 한계를 이해하지만 이런 아쉬움이 있다'는 글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난할 때 비난하더라도,
냉정하게 따져보고 비난했으면 합니다.
이성규(독립PD)님은 올 여름 'KBS 사태' 때부터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에 맞서 독립PD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해왔다.
글 - 이성규(독립PD)
여의도에서 자영업자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방송프로그램을 제작 연출하고 있는 PD입니다.
현장 중계에 대한 독점권이 주어줬다는 것은, 독점 안에서 최소한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보신각 타종 생방송 중계는 말 그대로 그 자체가 중계입니다. 그것은 중간에서 연결자란 의미입니다.
PD의 '롤'로만 본다면 그건 잘못된 디렉팅이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점에서 KBS PD협회의 목소리는 분명 일리 있습니다. 그러나 생중계에서 현장음을 완벽하게 지워 다른 소리를 넣은 것은 중국의 올림픽 중계에서 CG를 넣은 것보다 더 극심한 왜곡입니다.
현장에서 중계차를 타고 연출하는 PD입장에서 본래 기획되지 않았던 소음과 장면은 말 그대로 방송사고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PD의 언론의식 부족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촛불 시위를 생중계하라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세영국장의 지적에 의하면 촛불 시위는 방송 방해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생방송을 연출해야 하는 PD의 곤욕을 이해못할 것도 아닙니다.
기획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방어 연출은 PD의 본분이 맞습니다. 담당PD는 분명히 촛불시민들의 상황을 중계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돌발상황, 사실상, 돌발상황이 아니라 예견된 상황 속에서 보신각 타종식에서의 다른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디렉팅이 있어야 했습니다. 보신각 타종은 연말에 의례적으로 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오락 쑈라고 보기엔 상당히 많은 정치적인 의미가 그동안 있었기 때문입니다.
촛불 시민들 입장에서 '자신의 편이 되어 주지 못한' KBS에 대한 반발은, 미디어로 부터의 소외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KBS는 분명 공영방송 맞습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하겠습니다. 이번 생방송을 연출한 PD를 변명하는 KBS PD협회와 현 KBS 체제는 한마디로, 5공화국 시절의 방송으로 부터 단 5cm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을 보여줄 뿐입니다.
덧글로 반론을 제기하기엔 소모전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이정도로 끝내겠습니다. 이번 목요일 오전 중에, KBS PD협회의 변명에 대한 반론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을 받는 것은, PD로선 분명 가혹합니다. 자기반성 없는 변명은 성찰 부족입니다. 오락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에게 언론인의 사명만을 강요할 순 없을 겁니다. 연예인에게 현 시국에 대한 발언을 기대하는 것 만큼 말이죠.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소신있게 그래서 조심스럽게 발언하는 몇몇 연예인에게 환호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언론인이기에 읽어야 하는 겁니다.
이미 의견을 올렸습니다만, 다시 몇 마디 씁니다.
이렇게 중언부언하는 것은 고재열 기자에 대한 신뢰, 그리고 KBS 사원행동에 대한 동지애적 지지가 바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고기자의 글에 따르면, 이번 보신각 타종은 현장 생중계로서가 아니라 사전에 준비된 방송 프로그램, 즉 공개방송으로 이해해야 된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 해석도 가능하단 생각을 없잖아 하긴 했습니다. 공개방송을 주도한 KBS가 모든 큐시트의 주도권을 잡고, 오세훈 시장과 그 밖의 타종식 관계자를 직접 섭외 한 것이라면 KBS의 공개방송이 맞습니다.
하지만 고기자도 아시겠지만, 그건 아니었지 않습니까. 보신각 타종식의 주체는 서울시입니다. 그러한 타종식에 구색을 갖추기 위해 KBS가 일종의 협력언론사로 나선 것이고요. 어떻게 보면 서울시 협찬에 의한 공개방송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틀리진 않을 겁니다.
'열린 음악회'의 지방 공개방송이 대체로 그렇게 진행됩니다. 특히 지역 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음악회'에 대한 유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것은 '전국노래자랑'도 마찬가집니다.
이들 공개방송은 사전에 철저한 큐시트와 대본에 의해 진행됩니다. 대부분은 사전녹화입니다만, 가끔은 현장 생방송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현장 생방송도 철저한 리허설 속에 이루어집니다. 생방송 도중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또 보다 효과적인 방송 진행을 위해서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보신각 타종식 생방송은, 이미 예견된 방송사고를 막기 위해 방송 제작진의 피를 말렸을 겁니다.
MBC 김태호 PD의 '무한도전'에서 정치적 의식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파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김태호 PD에게서 나오는 정치적인 발언이나 글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KBS 사원행동에게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의 프로그램 안에서 정치적 의식이 당연히 나와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프리랜스 PD인 저 역시, 제작 연출하는 프로그램 안에서 정치적인 의식을 직접적으로 담진 않습니다. 제가 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전혀 시사적인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런 프로그램을 한다 하더라도 제 가치관과 정치관을 프로그램 속에 직접적으로 담는 것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의식 부족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제작 연출한다면 저는 선전 선동꾼에 불과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에 제 세계관과 가치관은 전체 흐름과 주제 안에서 적절하게 물밑 작업을 하듯 담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는 그 의식을 눈치 채고 대부분은 그 의식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것은 객관성속에 녹아 든 제 주관성입니다. 완전한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제 PD관입니다.
보신각 타종식 생방송대로라면, 오세훈 서울 시장은 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받는 정치인으로 포장됐습니다. 지방에서 중계되는 '열린음악회' 생방송 현장에서도 해당 자치단체장이 인사를 하곤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제 기억엔 없습니다만, 자치단체장은 관객석 속에 있는 시민들로 부터 야유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게 녹화 방송이었다면 자치단체장 부분은 편집에서 아예 삭제 당할 겁니다. 그냥 음악회만 방송에 나올 겁니다. 자치단체장의 인사는 당연히 편집된 채 말입니다. 그러나 생방송이라면 경우가 다르죠.
예를 들어 봅시다. 정말 그런 일이 '열린 음악회' 생방송 중에 벌어진다면 연출자인 담당PD와 사회자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그것도 미리 준비된 박수소리와 환호 소리로 살짝 대치할까요? 아닐 겁니다. 우선은 당황하겠죠. 사회자가 뭐라 거들 겁니다. 수습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담당 PD는 사회자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향해 몇 마디 던질 겁니다.
"000MC! 이번 시장은 문제가 좀 있어서 그리 인기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시민들의 야유가 대단하네.. 그러니까.. 적당하게 멘트를 날려... 이를테면 '시장님께서 더 분발하셔야 겠습니다. 지금의 야유는 시장님이 더 잘하라는 소리로 들리거든요. 시장님도 겸허하게 받아들이시죠..' 이런식으로 말야..."
비록 비정규직인 프리랜스 PD지만,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입장이기에 이번 사태(?)에 대해서 많은 부분 연출자의 심정을 이해하고 또 안타까와 하기도 합니다. 보신각 앞에서 현장을 직접 지켜봤고, DMB를 통해 동시에 생방송도 지켜봤습니다. 중계차를 타고 디렉팅을 하는 Pd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무척 궁금했거든요.
방송이 끝나고 여의도로 돌아오면서 담당 연출자인 PD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제작진이 그리 슬기롭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톡 까놓고 이야기 하죠. 프리랜스인 제가 만약 그런 디렉팅을 했다면 '장사꾼의 속성상 제네들은 저 모양이야."란 비난을 KBS PD협회로 부터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정말 노파심에 의한 제 가정입니다. 하지만 제가 디렉팅을 했다면 촛불 시민들의 입장을 완전히 드러내놓고 영상 속에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장치를 통해, 현장 상황을 일정 정도는 보여줬을 겁니다. 그게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PD입니다. 오세훈 시장의 등장에 환호와 박수를 넣어, '서울시장이 시민들에게 저렇게 각광을 받고 인기가 있구나'란 왜곡된 호의적인 이미지를 시청자에게 결코 드러내진 않았을 겁니다.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에 쏟아지는 비난을 그래서 모든 십자가를 담당 PD에겐 씌우진 않습니다. 그건 너무 가혹하기도 하고, 그래서도 안될 겁니다. 그러나 여의도란 동네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찌됐든 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책임은 PD가 지는 것이다." 저 역시 그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장에서 피를 말리는 듯한 커트를 넘기는 PD의 입장을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PD로서 십분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래서 현장의 한계로 인해 그런 생방송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말못할 사정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건 아닙니다. 이런 식의 변명은 같은 직종 종사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심지어 모든 시민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현 시국에 분노를 느끼는 수 많은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시기 부탁드립니다.
고기자의 의도는 분명히 그게 아니었겠습니다만, 또한 KBS PD협회의 의도도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굳게 믿는 입장에서, 이러한 발언과 글은 자칫 '당신들만의 리그'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오해와 오독을 불러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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