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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지못미' 프로젝트/'소셜 엔터테이너'를 보호하라

배우 윤계상을 위한 변명 (변영주 감독)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1. 3.


주> 다음은 최근 문제가 된 배우 윤계상씨의 '좌파발언'과 관련해
변영주 감독이 보내온 글입니다.
변 감독은 윤씨와 <발레교습소>를 찍었습니다.
이 영화로 윤씨는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윤씨가 직접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변 감독이 대신해준 글이니, 편견 없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글 - 변영주 (영화감독)


개인적으로 절친하기도 하고, 배우의 출발점을 함께 했던 윤계상이 소위 영화계 좌파 운운하는 인터뷰 내용과 함께 드디어 네이버를 점령해 버렸다.

무엇보다 먼저 그 녀석의 잘못이다. 정말 바보 같은 말을 해버린 거다.

일요일 저녁때 계상이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 때 모 인터넷 매체에 잡지 GQ에서 했던 인터뷰가 기사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좌파운운이 도대체 무슨 뜻이었냐고 물어보았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의 핵심은 이런 것이었다.

 [영화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지식인의 집단이었고, 연예계에 대해 냉소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 네편 째의 영화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수출신의 신인이라는 명찰을 붙여 놓고 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서운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는 [지식인의 집단, 소위 아이돌 문화에 대해 냉소적인 곳]을 좌파라는 말로 사용한 것이다. 멍청한 녀석... 막혀있다라는 의미도 역시 그런 뜻이었다.

자 여기서 잠깐 좌파란 개념을 포괄적으로 말해 보면 무엇일까?

좌파란 포괄적 의미에서 국가경제의 성장보다는 부의 평등적인 분배를 우위에 놓는 사람, 또는 국가가 기업이나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경제정의라는 의미에서 적극 개입하여야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에는 절대로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전체주의적 활동,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적 활동에 대해서 경계를 하는 사람등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MB정부 들어오면서 좌파라는 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친밀했던 사람들 전체, 현 정부에 반대적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 모두, 그리고 변희재가 질투하는 사람 등으로 쓰여지고 있다.

(여기서 부터 잠시 농담)

그런 면에서 계상이가 좌파라는 말을 지식인이라는 말과 혼동한 것은 어쩌면 현재 좌파척결을 운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2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예전에 좌파라는 말은 금기시 되거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현정부와 현정부의 세계관을 담당하고 있는 뉴라이트계열로 인해 좌파는 이제 무척이나 긍정적 의미로 변화되고 있다.

야...이거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에서 이게 왠 망발이란 말입니까? 나라의 근간을 지키고자 하는 국정원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좌파척결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뒷조사 해봐야 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좌파척결을 주장하며 속으로는 국민들이 좌파에 대해 온정적이며 친화적인 마음이 들게 하려는 북의 조정을 받는 고도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시민단체의 행사에 부지런하게 출근하시며 행사를 방해하는 어르신들...연세에 비해 너무 과격할 정도로 건강하십니다. 무슨 약을 드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정원은 그분들이 드시는 약이 어디로 부터 나온것이고 누구를 통해 입수하게 되었는지 명명백백하게 조사하여야 함다~!

 (여기서 부터는 진심으로 우려되는 점)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솔직히 이번 껀의 경우 계상이가 바보스러웠다. 그런데 그 녀석이 바보스러웠던 것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상관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상관은 다음의 내용에 있다.

시작은 GQ라는 잡지와의 인터뷰였고, 그 다음 날 그 잡지의 내용을 기사화하는 인터넷 매체가 있었다.

첫번째 문제는 이것이다. 도대체 인터넷 언론 혹은 기자들은 개인 블로거와 어떤 차이가 있는거지? 남의 글을 그대로 퍼온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어떻게 언론매체의 글이 될 수 있는거지? (무릎팍 도사의 다음주 예고편을 기사랍시고 쓰는 것도 별다를 바는 없다.)

보다 잔혹스럽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최진실씨의 자살과 2pm의 재범군 그리고 이번까지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루머나 악성댓글(솔직히 악성댓글이라는 말도 별루 재미없는 말이다. 그냥 댓글이지)은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문제는 그것이 한 사회안에서 공적인 영역에서 인정을 받게 되는 순간 권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최진실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댓글이 아니다. 그냥 모두들 무시했으면 끝날 일이다. 문제는 인터넷 매체와 언론이 그런 루머가 있다는 것을 기사랍시며 싣는 것에서 권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재범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언론이란 혹은 기사란, 스스로 만나고 느끼고 냄새를 맡으며 어떤 현실의 행간과 내면을 읽으려 애쓰며 쓰는 글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요즘의 인터넷 언론이란 퍼담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기자로서의 임무가 아니라 포탈의 메인이 될 수 있는자극적 제목이고 그 자극적인 무엇인가를 찾아 끊임없이 인터넷의 각종루머를 향해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이 가장 큰 정보의 수단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그 매체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번 계상이의 껀이 오마이뉴스에까지 실린것을 보며 기함을 했다.

진보언론마저도 퍼담아 내고 있다면 혹시 대한민국 인터넷 상의 언론은 중증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판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몇개의 인터넷 언론매체가 있다. 그들은 영화 개봉시기에 배우가 인터뷰를 해주지 않으면 그 다음날 악성의 글을 올리기로 유명하다. (영화 중천의 경우 많은 영화감독 및 관계자들이 한동안 그 매체에 대해 취재 거부를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무리 개봉시기에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의무조항이라 할지라도 몇 주일 안에 백여개의 매체와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 인터넷 언론매체의 사주는 누군가에게 연예인을 살리고 죽이고 띠우고 묻어 버리고 모든 것을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했다고 한다.

 자, 시작은 연예인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날까? 인터넷 포탈과 언론매체의 이런 원칙도 없고 기자 혹은 언론으로서의 자각도 없는 권력남용의 길로틴의 횡포는 연예인으로 시작될 뿐이다. 다음은 개인 블로그에 스스로의 정당한 의견이나 개인의 사생활을 싣는 블러거들이 될 것이고, 그 다음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두에게 진행되지는 않을까?

진심으로 친구들에게 역시 인터넷의 시작은 구글이 최고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추신 :  계상이의 바보스러웠던 인터뷰를 제발...누구누구씨! 이용하지 마세요... 혹시나 그럴까봐 걱정입니다만... 그 순간 정말 당신은 바보가 될거에요.

추신 2 : 오늘 나름 위로와 질책의 전화를 계상이에게 걸었는데 박모감독님께서도 위로의 전화를 하셨던 모양이다. ㅋㅋㅋ 소위 좌파(!?)감독들의 위로를 받고 있는 그에게 심심한 종아리 맴매를 보낸다.

(이제부터는 지금부터 새로 쓰는 것입니다.)

월요일 오전, 인터넷을 하다 식겁을 하고 윤계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에 고민하다가 팬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썼다고 말을 하며 나에게도 죄송하다는 소리를 하였다.

그리고, 내가 걱정했던 것 럼, 그의 뻘소리 (혹은 무지한 소리) 이후, 그의 사과를 그냥 진심의 사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한 생겨났다.

그중에 제일 웃기는 건, 역시나 내가 우려했던 그!였다. 그는 흡사 윤계상군이 좌파 꼴통인 영화판이 무서워, 혹은 댓글을 다는 마녀사냥하는 네티즌들이 무서워 숨어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가 아는 어떤 심리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때때로 세상 사람들의 개별적인 어떤 행동들이 모두 자신을 위해 생겨난 행동이라고 생각하거나,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임의적으로 자의적으로 자신에게 맞추어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은 아픈 것이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라고...

그리고 그에게 혹은 윤계상의 사과글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께 진심으로 한마디만 하자면, 스스로 자신의 무지함을 금새 깨닫고 반성하고 고민하는 청년에게 우리가 해줄수 있는 것은 여전히 그의 경솔함에 대해 꾸짓은 후, 그리곤 잊어 주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스스로를 위해 그의 어떤 진정성을 곡해하고 이용해서는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