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헌재 판결의 개요
헌재 판결의 문제점
헌재 판결 이후의 대응법
그리고 헌재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헌법학자들 의견을 통해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도둑이 도둑질한 장물은 도둑의 것이다?
미디어법 권한쟁의 심판과 관련해 헌법재판소(헌재)가 법안 제정 과정의 불법성(권리 침해)을 인정하면서도 결과를 합법(무효 기각)으로 인정해준 것에 대해 다양한 패러디 문구가 등장했다. 헌법재판소 게시판 등 인터넷 공간에 다양한 문구가 등장했는데 압권은 ‘도둑이 도둑질한 장물은 도둑의 것이다?’라는 표현이다.
헌재는 ‘도둑이 도둑질을 했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법리적 판단을 해주었다. 법안 제정 과정에 대리투표 등 부정행위가 있었고 질의와 토론 등 심의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으며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배했다며 권한 침해를 인정했다. 헌재는 동영상 자료 등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헌재는 ‘도둑질한 장물은 도둑의 것이다’라는 황당한 결론을 도출했다. 비록 과정상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법안을 무효로 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혹은 헌재가 판단할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무효 선언을 하지 않고 기각했다. 위법을 짚어내고도 법안을 무효화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비난을 듣고 있다. 과연 헌재는 합당한 결정을 내린 것일까?
먼저 결정 요지를 살펴보자. 헌재는 신문법 표결 과정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 7대2로 권한 침해라고 보았다. 재판관 5명이 대리투표 등 부정행위가 발생했다고 보았고 6명은 심의 중 질의·토론 신청 기회가 봉쇄당했다고 판단했다. 방송법 표결 과정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서도 6대3으로 권한 침해가 있었다고 보았다. 또 5명이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심의 절차에 대해서는 4명이 위법 판단).
그러나 헌재는 표결 무효 선언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신문법은 6대3으로 기각했고 방송법은 7대2로 기각했다. 신문법의 경우 재판관 3명이 권한 침해 사안이 크지 않고 의사공개 원칙과 다수결 원칙을 위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했고, 다른 3명은 헌재에서 판단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 의견을 내고 기각했다. 방송법의 경우 6명이 권한 침해가 크지 않다며 기각했고, 1명이 헌재에서 판단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기각했다.
헌재의 직무유기, '과정은 불법, 결과는 유효'
헌재 측은 미디어법의 유효 혹은 무효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판단해달라는 청구를 기각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기각은 유효를 인정하는 것으로 읽혔다. 이런 결론이 난 것에 대해 조두현·송두환 헌법재판관은 “가결 선포 행위의 심의·표결 권한 침해를 확인하면서 그 위헌성·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를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 질서에 맞추어 행사되도록 통제해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다수의 헌법학자들도 헌재의 이번 결정을 비난한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의결 권한을 침해한 것은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 입법권을 침해한 것이다. 헌법을 위반하면 모든 법과 공권력은 효력의 근거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는 무효를 선언했어야 맞다”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법 66조2항에 위헌일 경우 피청구인에 취소나 무효 확인을 할 수 있는데 이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했다.
한국헌법학회 회장인 김승환 전북대 법학과 교수는 “헌재가 하는 심판 중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정당해산·탄핵 등은 위헌 여부만 심판하는 것이지만 권한쟁의 심판은 위헌 여부뿐만 아니라 벌률 위반 여부도 따지는 심판이다. 결정 정족수도 5명으로 다른 심판과 다르다. 국회법 92조 일사부재의 원칙 등 구체적인 법률 위반이 발생했는데 무효 심판을 내리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헌재가 절차상 권한 침해를 지적해서 국회에 대한 견제 기능을 수행했다는 주장에 대해 김 교수는 “헌재의 이번 판결은 국회에서 대리투표 등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어기고 질의 토론을 생략하더라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국회라는 공간이 대한민국 법질서가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헌재가 헌법 파괴행위를 했다”라고 맹비난했다.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통해 무효 기각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옹호하는 헌법학자도 없지는 않다. 전 한국헌법학회 회장인 권형준 한양대 교수는 “이번 판결은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한 판단이다. 무효 혹은 유효 판단을 내릴 경우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상위 기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헌법학자들, “헌재는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
권 교수는 헌재가 합헌이라거나 유효라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무효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공이 국회로 다시 넘어갔다고 본 것이다. 신문법의 경우 6명 중 3명은 결정적인 하자가 아니라는 취지로 기각 결정을 내렸고 3명은 국회에서 판단할 문제라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기각의 이유가 달랐다. 무효라고 판단한 재판관은 3명이었다. 6대3으로 형식적으로는 기각 결정이 내려졌지만 내용적으로는 국회에 공을 넘긴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재논의를 거부했다. 헌재 결정 직후 안상수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은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고 앞으로 미디어산업발전법에 대해 민주당이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일체 재논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재논의를 주장함과 동시에 김형오 국회의장 사퇴론을 들고 나섰다. 국회법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 증명된 만큼 사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헌재가 국회의 자율권을 과도하게 인정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 교수는 “헌재가 국회 자율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법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법의 한도 내에서 인정하는 것이지 만능의 면책수단이 아니다. 헌재는 1997년 명백한 법 위반은 국회 자율권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법리에도 어긋나고 과거 판결도 뒤집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와 마찬가지로 임 교수 역시 이번 판결이 잘못된 선례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재의 이번 판결은 국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국회법 절차를 위반하더라도 표결까지만 가면 된다. 절차상 위법성이 드러나더라도 헌재가 무효 선언을 하지 않는다는 ‘학습효과’가 생길 수 있다”라고 염려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박경신 교수는 헌재가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권한 침해가 있었는데도 무효가 아니라면 어떤 다른 이유로 무효가 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것은 헌법상 대의민주주의를 위배한 것으로 곧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다. 헌재의 이번 판단은 권한 쟁의가 국민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망각한 처사로 사실상 헌재는 권한 쟁의 기능을 상실했다”라고 말했다.
헌재의 이번 판결에 문제가 많다고 보는 헌법학자들은 이번 기회에 헌법재판소 개혁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판단을 일삼아 판결이 나올 때마다 헌법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권한 침해 등 위법이 확인된 만큼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린 것을 두고 국민이 직접 헌법소원을 내서 국민의 기본권 침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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