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촌을
'골드오션'으로 일구고 있는
개념있는 88만원 세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도시인들이 ‘귀농로망’을 가지고 있다. 그 로망은 간단하다. ‘언젠가 농촌에 귀농 혹은 귀촌하고 싶다’ ‘그러나 농사는 힘들어서 못 짓겠다’ ‘하지만 벌어놓은 돈이 많지 않아 조그만 돈벌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그런 로망에 대한 답을 찾아 한가위 합병호에 ‘달콤한 귀농’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경남 하동, 전남 함평, 전북 남원 진안, 충남 서천, 충북 충주 등 전국 곳곳의 귀농인들을 만나고 그 답을 찾아보았다. 마을 사무장 등 일종의 사회적 일자리에 취업하는 방식, 농촌체험마을 등 도시인의 활용해 비즈니스 모형을 만드는 방식, 다양한 농가공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 등 다양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귀농을 빨리 하면 빨리 할수록 경쟁력이 높다는 것이었다. 대체로 은퇴형 귀농은 전원생활형 귀촌에 가까웠고 청년 귀농이 정통 귀농에 가까웠다. 청년 귀농인들에게 농촌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를 따로 전하기로 했다.
농림수산식품부 벤처농업대학 천안연암대학 귀농지원센터 전국농민회 등으로부터 청년 귀농인 사례를 추천 받았다. 그들 중 몇은 벌써 억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농촌 총각은 장가를 못간다는 말도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서른 전에 대부분 결혼을 했고 미혼 총각들도 어여쁜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심지어 재혼을 앞둔 ‘돌싱(돌아온 싱글)’도 있었다. 그들은 농업 ‘골드오션’을 일구고 있었다.
오늘은 88만원 세대, 내일은 880만원 세대!
'고유나 플라워'
충남 서천군에는 ‘관엽식물’을 기르고 있는 세 명의 농촌 총각이 있다. 고형록(32) 유준영(32) 나석운(30), 이들은 세 명의 성을 따 ‘고유나 플라워’라는 농장을 설립했다. 외딴 산골에서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하며 꽃을 가꾸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꽃 키우는 산적’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서로를 다독이며 외로움과 불안함을 극복하고 있지만 아직 벌이가 시원찮다. 지난해 올린 순이익은 3천만원 정도였다. 셋이 나누면 1인당 천만원 정도고 월급으로 환산하면 83만원 남짓이다. 벌이만으로 본다면 이들도 영락없는 88만원 세대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의 출발점일 뿐이다.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지난 추석 전에는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이들을 방문해 격려하고 갔다.
일등 고구마 키우는 일등 청년, 박종화
‘고구마 총각’으로 불리는 충남 예산의 박종화(28)씨 역시 짧은 기간에 대농으로 성장한 청년 귀농인이다. 연간 3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비결은 역시 기계화 영농이었다. 한 대 한 대 마련한 농기계가 벌써 일곱 대에 이른다. 카니발승용차와 인부를 실어나르는 봉고차, 그리고 고구마를 실어나는 트럭이 각 한 대, 대형과 소형 트랙터 한 대, 그리고 지게차와 대형 고구마 세척기가 있다. 냉장 창고까지 총 5억여원 정도를 시설과 기계에 투자했다.
이런 기계들을 바탕으로 어머니가 짓던 3천평 농사를 6만평으로 키웠다. 16년 동안 고구마를 길러온 어머니의 노하우를 계승해 철저한 품질관리 체계를 만들었다. 고구마를 12등급으로 선별해서 판매하면서 신뢰감을 얻은 것이 주효했다. 박씨는 “고구마 농사는 수익이 50% 이상이다. 수익이 눈에 보이는데 그것이 농사라서 포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고구마 농사를 지어 대학에 다니는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까지 대는 아들이 대견스럽지만 박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농사를 싫어하게 될까봐 늘 근심이다. 그러나 혼자서 음악 들으며 트랙터 몰며 농사짓는 것을 즐기는 박씨에게 농사는 ‘취미’에 가깝다. 그렇게 일하다가 비가 오는 날이면 서울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곤 한다.
가업을 이어 농업을 기업으로! 김재훈
이성희씨와 박대희씨가 귀농한 아버지를 따라 귀농한 사례라면 김재훈씨(29)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귀농한 사례다. 김씨의 아버지 김용봉씨는 양평 개군한우를 전국적인 브랜드로 일군 한우전문가다. 각종 특허를 보유하고 표창을 두루 수상한 아버지의 노하우를 계승하기 위해 과감히 귀농을 결심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컴퓨터 게임 개발자로 4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건축학 전공을 살려 집 옆에 정육식당을 설계하고 시공한 그는 유통과 가공 분야에 역점을 두고 있다.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키운 소에 부가가치를 더하기 위해서다. 정육식당에서는 쇠고기를 1등급과 1+등급 1++등급으로 나눠서 따로 가격을 책정해 받고 있다. 고급 부위만 선호하는 소비자들 때문에 외면당하는 부위의 쇠고기로 육포를 개발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충남 연기군의 김민호(26)씨 역시 가업을 창조적으로 잇고 있다. ‘오색미’ 재배에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기계화된 영농으로 돕고 있다. 충남 연기군과 충북 청원군 전북 부안군 등 3개 도에 20만평 가까운 논이 있지만 이양기나 콤바인 트랙터 등 농기계를 이용해 가족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서울에서 바텐더 생활을 7년 동안 했던 충남 공주시의 최숙종씨(32)는 아버지의 과수농업 노하우를 자신의 축산에 접목시킬 궁리를 하고 있다. 배와 사과를 먹인 한우를 길러 상품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최씨는 “3천평 축사에서 3년 안에 3억의 수익을 올려보겠다. 그래서 내 꿈인 열기구를 마음껏 즐기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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