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일 야구계가 뒤집힌다. 이날 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가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노조설립 찬반투표를 벌이기 때문이다. 2001년 결성된 선수협이 노조설립이라는 결실을 맺는 날일 수도 있고 반대로 와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KBO와 각 구단의 견제가 만만치 않은 가운데 투표 준비를 하고 있는 손민한 회장을 선수협 사무실에서 만나보았다.
- 찬반 투표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
과반수 이상이 노조설립에 찬성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어야 하고. 사전조사 결과는 그렇게 나왔다.
- 구단마다 좀 사정이 다르지 않나.
그렇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노조를 막는 곳이다. 삼성 선수들이 받는 압박이 상당하다. LG도 비슷하다. 삼성 선수들이 불참하면 LG 선수들도 불참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만약 이번에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함께 할 것이라고 본다.
- 앞장 선 선수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을텐데.
분명 불이익을 감당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 선수들에게 올 불이익 중에는 구단이 계약을 하지 않거나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해 선수생명을 끝내는 것이 가장 큰 것이다. 여기에 선수들이 겁을 먹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선수들이 한 마음이 되도록 뭉친다면 구단도 결코 선수 개개인에게 피해를 주지는 못할 것이다.
- 선수협 회장으로서 특히 불이익이 클 수 있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서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이익을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고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일이다. 불이익이 주어진다면 차라리 내가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
- 팬들의 판단도 중요하다. 어떻게 설명해낼 것인가?
솔직히 야구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팬 이전에 같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야구판을 없애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 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팬들의 지지가 많은 선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스타플레이어들이 결정의 순간에 앞장서 줬으면 하는 것이 솔직함 바램이다. 그런 선수라야 구단으로부터 피해가 적고 전체 선수가 움직이게 만들 수 있고 팬들도 설득할 수 있다. 코칭스태프를 생각하고 있는 고참은 고참대로 눈치를 봐야하고 이제 갓 자리를 잡은 신참은 신참대로 눈치를 봐야 한다. 주전들이 움직여 줘야 한다.
- 노조 설립과 관련해 그런 선수들에게 따로 부탁해 보았나?
선수 누구를 붙들고 부탁한 적은 없다. 무리한 부탁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도 있으니까. 각자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 노조 설립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있다.
10년 전에도 시기상조라고 했고 지금도 시기상조라고 한다. 시즌 중에는 시즌 중이니까 안 된다고 하고 시즌이 끝나면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하니까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제 어떤 조건에서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역으로 묻고 싶다. 10년을 준비했다고 하면 시기가 오히려 너무 늦은 것 아닌가?
- 왜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는가?
법에 근거해서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억울한 일과 불이익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것이 선수들의 상황이다. 프로스포츠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야구가 노조를 설립해 전범을 만들면 다른 스포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 권익을 보호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말하는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각 구단은 선수들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팬들에게 판매한다. 팬들은 그 점퍼를 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에게 조금이라고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없다. 선수들 얼굴이 새겨진 야구카드를 가지고 와서 팬들이 사인을 받아가는데 선수들은 그 야구카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기 얼굴이 왜 들어가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 선수들은 노조 설립에 공감하고 있나?
선수들은 대부분 노조 필요성에 공감한다. 특히 해외 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공감을 많이 한다. 외국 상황과 우리 상황이 너무나 비교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공감은 많이 하지만 단지 개인적인 불이익을 두려워할 뿐이다. 각 구단의 공갈 협박에 흔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 구단이 어느 정도로 막나?
구단은 노골적으로 방해한다. 10년 전 선수협이 결성될 당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선수들을 막기도 했다. 한명 한명을 불러서 선수생명을 끝내겠다고 협박하기도 하고 심지어 모 구단에서는 아예 노조를 만들면 야구단을 없애버리겠다라고까지 말한다. 야구인으로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 법적으로는 노조 설립에 별 문제가 없나?
프로야구선수들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다. 선수들을 노동자로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여기저기서 자문을 받아보았다. 결론은 ‘선수들은 노동자로 봐야 한다’라는 것이 법조인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사업자로 등록만 되어있지 받는 대우는 완벽하게 노동자라는 것이었다.
- 팬들은 선수들이 그렇게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노조까지 만들 필요가 있나, 라고 물을 수 있다.
그 부분에서는 오해가 있다. 일단 노조가 설립된다고 해서 고액연봉 선수들에게는 돌아오는 이익이 거의 없다. 대신 저액연봉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가 있다. 돌아오는 것도 없는 고액연봉자들이 나서서 노조가 절실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저액연봉자들을 위해 나서는 것이다.
- 선수협의 형태로도 선수들을 대변할 수 있지 않나?
선수들이 당하는 불이익과 선수들이 바라는 개선사항이 선수협에 보고되면 정리해서 KBO에 시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우리는 ‘안된다’는 대답조차도 들을 수 없다. 우리를 파트너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우리의 주장을 전달할 통로는 반드시 필요하다.
- 노조를 만드는 것은 프로선수 답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구단은 선수들에게 야구장 안이나 밖이나 프로답게 행동하라며 프로정신을 요구한다. 그런데 정작 구단이 선수를 대하는 방식이나 대우는 프로답지 못하다. 완전 아마추어다. 노조가 설립된다고 해도 선수들이 안될 것을 되게 해달라고 할 것도 아니고 연봉을 올려달라고 할 것도 아니고 파업을 할 것도 아니다. 왜 겁을 먹는지 모르겠다.
- 노조가 결성되면 역점을 둘 사업은?
선수들의 최저임금 문제다. 최근 2000만원에서 2400만원으로 올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각 팀 선수 중 50% 정도는 이 수준이다. 이들은 고가의 야구 장비도 직접 구입해야 한다. 이들의 처우부터 개선하려고 한다. 2군 선수들은 더 열악하다. 야간 조명을 안 켜줘서 한 여름에도 대낮에 경기를 해야 한다. 완전 쪄 죽는다. 이들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도 눈치가 보여서 공기밥 한 그릇도 마음껏 추가하지 못한다. 이런 선수들의 상황부터 개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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