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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하자보수팀

용산참사가 예술가들에게 남긴 것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 10.





“비정한 나라에 무정한 세월이 흐른다. 이 세월을 끝내야 한다. 사람의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문인들이 만든 헌정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헌정문집은 지난해 6월9일 용산참사 관련 시국 작가선언을 한 소설가·시인·평론가 192명이 이후 연재하거나 발표한 글을 모은 것이다. 용산참사가 ‘용산문학’을 부른 것이다.

문인들이 용산참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즈음이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었기 때문일까, 사건이 벌어진 당시보다, 혹은 수사과정에 논란이 일 때보다, 용산이 잊혀지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펜을 들었다. 문인들에게 용산은 잊혀저서는 안될 우리시대의 ‘아우슈비치’, 시대의 상흔이었다.

"2009년 여름, 우리는 여전히 용산참사역에 멈춰 있다. 그렇다면 다음 내릴 역은 어디일까? (중략) 우리 모두 꽝꽝 얼어붙은 주검 옆에서 고통받고, 부끄러워하며, 오래 동안 아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우리가 내릴 역, 또 그 다음 역은 언제나 용산참사역일 것이다.’(윤예영 작가) 

“불에 그을린 그대로/ 150일째 다섯 구의 시신이/ 얼어붙은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갇혀 있다//…/ 제발 이 냉동고를 열자/ 너와 내가, 당신과 우리가/ 모두 한 마음으로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이 시대를/ 열어라. 이 냉동고를.”(송경동 시인)

물론 문인들 말고 다른 예술 장르의 예술가들도 용산참사에 관심을 기울였다. 미술인들도 현장 작업을 많이 했다. 희생자들의 얼굴을 판화로 찍어 붙인 것은 베를린장벽을 꾸민 예술가들의 작업을 연상시켰다. 대중가수들도 용산참사 희생자를 위해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노래 몇 곡 불러주는 것이지만 엄혹한 시대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들의 참여로 용산참사에 대해서 브레히트가 말한 ‘장기적 분노’가 가능해졌다. 

‘용산문학’과 같은 참여예술은 한동안 뜸했었다. 1980년대 ‘민중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만개했지만 국민의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예술인들은 다시 골방으로 들어갔고 자기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천착했다. 어느 시대고간에 예술인들이 시대에 만족했던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시대보다 나를 더 생각해도 될 정도의 여유는 허락했던 것이다.

예술인들을 다시 광장에 끌어낸 계기는 2008년 촛불집회였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발현되는 것을 보면서, ‘행동하는 양심’들이 다시 광장에 뛰쳐나오는 것을 보면서 예술인들도 광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촛불은 에너지였고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본 예술인들은 일단 관찰자가 되었다. 그리고 관찰한 다음 예술적 성취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촛불 이후 등장한 참여예술은 예전의 민중예술과는 달랐다.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했다. 촛불집회 때 광장에 십자가를 매고 피를 흘리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중견작가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손수레를 전경버스처럼 개조해 ‘촛불관광’을 시켜준다며 물대포 대신 물총을 쏘는 젊은 작가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젊은 미술가들이 모여 걸개그림을 그렸는데 그림 속 노 대통령은 밝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49재 헌정공연 때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가수 정태춘씨가 기획한 이날 행사는 전체 행사가 한 편의 장시로 완성되는 구조였다. 시와 노래로 추모하면서 누구를 원망하는 것도 누구를 비난하지도 않고 오직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죽음을 조용히 내면화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렇게 승화된 참여예술은 대중이 관련 사건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잊지 않게 만든다. 대중에게 사건을 알아야 한다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요하면 오히려 사건 자체가 부담스러워서 사건을 외면하고 사건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
 
이를테면 용산참사 현장의 경우도 각종 단체들의 현수막 경쟁장이상이 아니었다. 단체마다 현수막을 내걸고 ‘우리는 이 문제 이렇게 관심 많아’하고 뽐내고 있어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압도되고 오히려 외면하고 총총걸음으로 지나가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예술 작품을 통해 용산을 들이대면 달라진다. 작은 차이가 큰 반응차이를 불러낸다. 양심을 찰싹찰싹 때리지 않고 양심을 부드럽게 마사지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염치’를 발현하게 돕는다.

모름지기 예술인이라면 자기 내면을 깊숙히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겠지만, 그렇게 기른 내공으로 시대를 응시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소설가 조세희선생은 헌정문집에 대해 “이성의 힘으로 캄캄한 죽임의 시대를 증거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생생한 양심의 기록”이라고 헌사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예술로 승화시킨 젊은 문인들의 열정과 양심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