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저는 앞으로 생겨날 '조중동 방송'이 진정한 '국민방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나) 국민을 위한 방송법이 희생되어 법적 토대가 만들어졌다.
둘) 국민이 시청료를 올려줘 물적 토대가 만들어진다.
셋) 국민이 채널권을 희생해 하드웨어적 토대가 만들어진다.
넷) 국민이 중간광고 등을 봐주어 자본적 토대가 만들어진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시청료 인상'을 공헌했습니다.
국민이 '조중동 방송'을 위해 시청료를 올려 줄 길을 열어준 것이지요?
이것으로 되겠냐고요? 걱정마세요.
앞으로 국민이 '조중동 방송'을 위해 기여할 방법은 많습니다.
1)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방송제도’
방송시장 재편이 한참이다. 우리가 흔히 ‘정치는 정치논리로 하고 경제는 경제논리로 하라’라고 하는 말이 방송시장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현재 진행되는 방송시장 재편은 방송논리와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서 방송시장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방송시장 재편은 그 출발이 정치적이었기 때문에 그 끝도 정치적일 것이라는데 대략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불가해한 현실을 마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 논의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방송종사자들은 변화하는 방송시장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가지 맥락에서 방송시장 재편의 모양새를 살펴보았다.
가장 중요한 변화 요소는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등장이다. 현재도 TvN과 같은 준종합편성채널이 있긴 하지만 보도가 가능하고 지상파방송 인근 채널을 차지한, 그리고 유력언론사라는 막강한 뒷배경을 지닌 종편이 등장한다는 것은 훨씬 더 위력적인 일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지상파급의 규모를 지닌 방송사가 몇 개 더 생기는 것이지만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승하고 망하는 방송시장의 회오리 속에 휘말리는 일이 될 것이다.
2) 조중동 방송은 법적 '사생아'
조중동 등 유력언론사의 방송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신문법 방송법 등 관련법 개정이 필수불가결하다. 야당의 육탄 방어와 언론노조의 총파업을 뚫고 한나라당은 이를 밀어붙였지만 법안 통과 과정에 대리투표 재투표 등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과정은 불법이지만 결과는 합법이다’라는 해괴한 논리로 면죄부를 주었다. 다시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등 민주당 의원들이 ‘헌재 판결은 국회 재논의를 요구하는 것이다’라며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를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사실은 종합편성채널 등장을 위해 고속도로를 닦던 정부가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22일 국회에 출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종합편성채널 선정이 2010년 6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6월 이후라는 것은 내년 6월에 열릴 지방선거를 의식한 것이다. 정부가 왜 갑자기 지방선거 이후로 스케줄을 미뤘을까?
여기서 방송시장 재편의 정치성이 한 번 더 나타난다.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스케줄이 늦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두 가지를 함의한다. 하나는 정부가 방송시장 진출을 원하는 언론사들이 최소한 지방선거까지는 우호적인 보도를 해주기를 원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하는 언론사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결정은 굳이 지방선거 이전에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를 선정해서 탈락된 언론사로부터 공격을 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짚어볼 부분이 있다. 종편에 진출하려는 언론사들의 ‘로망’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조중동 3사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다는 것이다.
3) 신규 방송시장은 조중동의 삼국지
종편 선정게임은 간단하다. 정부가 조중동 3사에 종편채널 3개를 주면 말끔하게 끝나는 게임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이유는 간단하다. 종편 3개를 허가하면 셋 다 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도 알고 있고 종편에 진출하려는 조중동도 알고 있고 종편을 방어해야 하는 기존 지상파 방송사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종편 채널 선정 과정이 시장의 법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광고가 늘면 방송 채널은 늘 수 있다. 그러나 방송 채널이 늘어난다고 해서 광고가 늘지 않는다. 기업이 방송 채널이 늘었다고 해서 새 채널에게 광고를 집행해야 하는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경기가 갑자기 살아나지 않는 한 새로 생긴 종편이 살아날 길은 없다. 시청료를 받는 수밖에. 따라서 조중동 3사에게 종편을 주는 특혜보다 그 종편을 먹여살리기 위한 더 큰 특혜가 필수불가결하다.
몇 가지가 고려되고 또한 추진되고 있다. 하나는 KBS 2TV의 광고를 빼오는 것이다. 다 빼올 수는 없어도 상당부분을 뺄 수 있게 제도가 바뀌고 있다. 여기에 이용되는 것이 바로 공영방송법 개정과 미디어렙 개편이다. 공영방송법을 통해 KBS 2TV의 광고의존율에 제한을 두고 공영미디어렙과 민영미디어렙을 분리시켜 광고 물량을 민영미디어렙 쪽으로 몰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그 광고물량이 자연스럽게 종편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이야기다. 현실적으로는 MBC와 SBS에 갈 수도 있다. 광고 효과 측면으로 보았을 때 신생 종편보다 기존 지상파채널이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반되는 또 하나의 제도 개혁은 케이블TV에 대한 광고 규정을 철폐하는 것이다.
4) '조중동 방송'은 시작부터 끝까지 '특혜방송'
지상파채널에서는 불가능한 중간광고나 버추얼 광고를 허용하고 PPL도 쉽게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종편 채널을 지상파채널 중간 채널로, 이를테면 6번 7번 9번 11번의 중간인 5번 8번 10번 등에 배치해 시청자들의 ‘잽핑’ 도중에 걸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에 이 채널을 장악하고 있는 홈쇼핑 채널이 채널을 내줘야 하는데, 이 또한 시자경제를 거스르는 것으로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 본 맥락은 종합편성채널이 생긴다는 것, 종합편성채널을 먹여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 개편이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살펴야 할 맥라기 있다. MBC 민영화다. ‘MBC 민영화’ 역시 옳고 그름을 떠나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될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가 MBC를 민영화의 늪으로 깊게 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법을 개정할 때 공영방송의 틀을 아주 좁게 만들어 MBC가 선택할 수 없게 만들고, 미디어렙을 바꿀 때 공영미디어렙을 MBC가 선택할 수 없게 만들면 MBC는 스스로 ‘독배’를 들 수밖에 없다. 현재 MBC는 소유는 공영(방송문화진흥회와 정수장악회) 운영은 민영(광고)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MBC가 KBS에 비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던 이 근간이 지금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5) 위기의 MBC '실리'냐, 명분이냐?
이 격변기에 MBC가 마음만 먹으면 실속을 차릴 수 있다. 1사1렙 형태의 민영미디어렙을 도입하면 MBC는 지방MBC를 건사하면서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공영이라는 ‘대의’를 저버리는 것으로 국민을 등지는 일이다. MBC는 지금 딜레마에 처해있다. 대의를 따르자니 밥그릇이 울고, 밥그릇을 따르자니 대의가 우는 것이다.
딜레마는 조중동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다. 올해 초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은 “신문만 하면 천천히 망하고 방송을 하면 빨리 망하는 것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신문사에게 방송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편 채널을 받는다고 해도 다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방송은 하드웨어에 투자해야 하는 장치산업이자 소프트웨어에도 장기간 거액의 투자를 해야하는 ‘돈 먹는 하마’같은 사업이다. 줄 잇는 특혜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려면 결국 콘텐츠의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장담 못할 부분이다. 케이블TV 초기 상황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녹록치 않다. 공격하는 입장과 방어하는 입장 모두에 방송시장 재편은 엄청난 도전인 셈이다.
6) 방송 전쟁의 결과는 '방송의 타락' 될 것!
결국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는데, 이는 방송의 ‘타락’을 예고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규 채널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간과할 것이다. 그리고 방송 체제도 바뀌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적응하게 된다. 지금까지 ‘다공영 1민영’ 체제였던 것이 ‘1공영 다민영’ 체제로 바뀌면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준거에 공영이었던 것이 민영으로 바뀌게 된다.
올해 <미녀들의 수다>에서 문제가 되었던 ‘루저’ 발언이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멧돼지 사냥’ 논쟁, 그리고 최근에 징계 판정을 받았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빵꾸똥꾸’ 사태 등이 논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들에게 ‘공영논리’기 체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종사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것이었지만 이것을 우리 방송시장의 불문율로 자리잡고 있었다. 방송시장이 재편되면 극심한 경쟁과 산업논리로 인해서 이런 공영논리는 설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 이 글은 <방송작가>에 기고한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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