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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밑줄 긋는 남자

영등포 쪽방에 대한 10년 전 기사와 현재 기사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 22.


후배 기자가 영등포 쪽방촌 르포기사를 썼더군요.
문득 10년 전 제가 썼던 영등포 쪽방촌 르포기사가 생각 났습니다.
두 기사를 비교해 보니 차이가 거의 없네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난의 얼굴은 변한지 않았습니다.




인생 막장에 선 영등포 쪽방 사람들  
 
2000년 12월 21일 고재열 
 
 
겨울은 가난한 동네에 더 빨리 와서 더 늦게 끝난다.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고 있는 이즈음 <시사저널>은 보통 사람보다 곱절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찾아 보았다. 얼마 전 화재가 났던 영등포 쪽방 지역은 하루 몇천 원이면 잠잘 수 있어 가난한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5W짜리 빨간 꼬마 전구 하나. 여자 사진을 붙였다가 떼어낸 자국으로 지저분한 벽. 낡은 요와 이불 그리고 머리 때가 까맣게 끼어 있는 베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화면이 떨리는 고장 난 텔레비전. 재떨이로 쓰이는 밥공기. 기자가 12월6일 밤 서울시 영등포구 쪽방 지역 취재를 위해 직접 묵은 방의 풍경이다.

가로 120cm, 세로 240cm인 이 방을 하룻밤 빌리는 데 내는 돈은 고작 8천원(난방비가 들지 않는 여름에는 6천원). 보통 여관 하루 숙박비의 4분의 1도 채 안 되는 돈이다. 하지만 이 정도 방이면 이곳에서는 거의 호텔로 통한다. 5천∼ 6천 원짜리 방이 보통 수준이고, 3천∼4천 원짜리 방도 있다. 한 달 월세가 4만원밖에 안 되는 방까지 있는데, 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관’에 가까웠다.

기자가 묵은 쪽방은 교도소 독방보다 작은 방인데, 이런 방 6개가 폭 80cm 정도 되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문이 벽과 이가 맞지 않아 틈새가 벌어져 있어서 옆방 사람의 숨소리는 물론 몸 뒤척이는 소리까지 그대로 들렸다. 욕실이나 화장실도 따로 없었다. 수도꼭지 하나가 유일한 세면 시설이었고, 플라스틱 통이 용변을 보는 간이 화장실이었다.

사람 하나 들어서면 옴쭉달싹할 수 없는 이런 쪽방(행정적으로는 ‘단신생활자용 유료숙박시설’이라고 부른다)이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일대에만 8백20여 개나 된다. 이곳 외에 쪽방이 있는 곳은 중구 남대문로, 용산구 동자동, 종로구 돈의동과 창신동 일대로, 서울시의 쪽방 수는 모두 5천7백개 정도이다(전국 약 8천개). 역사가 40년이 넘는 영등포 쪽방 지역은 특히 열악한 곳으로 꼽힌다. 천장과 지붕 사이를 터서 만든 다락방식 쪽방은 영등포에만 있는 형태이다.

주인들이 천장·화장실·창고·지하실 할 것 없이 모두 터서 방을 들인 탓에 영등포 지역의 쪽방 구조는 그 수를 파악할 수도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편지 배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이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인근 교회 신도들이 대신 배달하는 실정이다.

일반인이 쪽방 지역에 들어가면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쪽방은 바로 인생 막장이기 때문이다. 쪽방 지역에서 맨 처음 볼 수 있는 풍경은 중년 여성들이 지나가는 남성들에게 윤락을 권하는 장면이다. ‘펨푸’라고 불리는 이들은 윤락을 알선한 대가로 약간의 소개비를 받는다. 쪽방 지역에서 몸을 파는 윤락녀는 대략 70명 정도인데 대부분이 30∼40대 중년 여성이다. 이들은 큰길 건너, 신세계 백화점 뒤 윤락가의 20대 윤락녀가 6만∼7만 원 정도를 받는 데 반해 2만∼3만 원을 받고 몸을 판다.

쪽방 지역 안으로 더 들어가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거나, 아무데서나 늘어져 자고 있거나, 아니면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된다. 대낮부터 불콰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싸움도 자주 일어나서, 경찰차나 구급차가 수시로 드나든다. 넘어지고 피를 흘려도 사람들은 그런 일에 익숙한 듯 무심히 지나친다. 그런 모습이 마치 쪽방 지역을 이루고 있는 풍경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걸인·앵벌이·장애인·행려병자·노인· 알코올 중독자·윤락녀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쪽방 지역은 한국형 슬럼이라 할 수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쪽방은 인생의 마지막 비상구이다. 그러나 벼랑 끝까지 몰린 그들이지만 이곳에서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잘못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있다. 남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몰래 카드를 발급받아 쓰는 사람, 조직을 만들어 다른 주민을 괴롭히는 사람, 쪽방에 사는 여성을 강간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범죄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쪽방 지역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이들이 술에 찌들어 휘청거릴 시간에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머지 절반의 쪽방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이들은 스스로 벌어 먹기 위해, 장사든 앵벌이든 구걸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쪽방은 인생의 마지노선이다. 노숙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마지막으로 붙드는 끈이다.

안타까운 점은, 한번 쪽방 지역에 들어온 사람이 다시 일어서서 더 나은 곳으로 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은행 거래를 못하므로 버는 족족 다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규모 있게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굶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쪽방 생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희망이 없어서이다. 이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랐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고아 출신도 많고,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혼자 된 사람도 많다. 대부분이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또 삼청교육대에 들어갔다가 친구에게 부인을 빼앗긴 사람, 중동에 나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부인이 바람을 피우고 전재산을 날려버린 사람, 사고로 아내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 등 심각한 가정 파탄을 겪은 경우가 많다.

가정이 없다는 점에서 쪽방 지역은 판자촌이나 비닐하우스촌과 같은 다른 빈민층 거주지와 다르다. 쪽방 지역은 혼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마저 없는 이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사회도 포기하고 가족도 포기하고 심지어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다행히 영등포 쪽방 지역에는 이들을 돕는 사람이 많다. 이탈리아 출신 칼라 수녀(천주교 작은참여수녀원)는 수시로 쪽방 지역을 돌며 주민을 보살피고 있다.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도 13년째 이곳에서 쪽방 거주자와 노숙자를 돌보고 있다.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쪽방 주민이 돈을 못 내고 쫓겨났을 때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한다. 노숙자들이 기초생활보장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의 주민등록에 노숙자 50명을 동거인으로 올려놓았다.

영등포 산업선교회가 운영하는 ‘햇살보금자리’에서는 쪽방 거주자들이 기초생활보장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주민등록을 재등록하는 일과 말소된 호적을 되살리는 일을 돕고 있다. 이외에도 영등포 쪽방 지역에는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토마스의 집’과 무료 진료를 해주는 요셉의원이 있다.

그러나 이런 민간단체들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비해 영등포구청은 지금까지 쪽방 문제에 상대적으로 무심했다. 올해 초에는 정부가 쪽방상담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예산까지 배정했지만 ‘상담소가 생기면 노숙자가 더 몰릴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해 시민단체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국정감사에서 쪽방 문제가 제기 되고 지난 11월1일 영등포 쪽방 지역에서 화재가 난 이후 언론에 쪽방 문제가 부각되고서야, 구청은 이전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와 면담한 자리에서 부구청장은 쪽방 지역 전체에 대한 민관 합동 조사를 실시하고 쪽방상담소를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 문제는 남아 있다. 쪽방 지역이 녹지화 대상 지역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녹지화가 예정대로 실시되면 쪽방 거주자들은 쫓겨나거나 노숙자 시설에 수용되어야 한다.

한국도시연구소 서종균 연구원은 “쪽방은 일종의 민간 사회안전망이라 할 수 있다. 노숙자로 전락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치는 곳이 바로 쪽방이다. 이들을 지원해서 다시 일어서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임명희 목사도 “노숙자들은 일할 이유와 일할 의욕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다시 일을 하도록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일자리도 소개하고, 공공 근로도 구해주고 장사 밑천도 줘 봤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그러니 스스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남아 있는 쪽방 거주자를 지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요즘 쪽방 지역에는 보도 블록을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연말이라고 남는 예산을 털어내려는 것인지, 녹지화 대상 지역에 보도 블록을 새로 깔고 있다. 초라한 쪽방 지역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보도 블록은 정부의 ‘부적절한 대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주> 다음은 시사IN 임지영 기자가 최근 쓴 영등포 쪽방촌 르포기사입니다.

 

쪽방에 갇힌 굴곡진 삶

2010년 1월22일 시사IN 임지영 기자

밤사이 저절로 눈이 떠졌다. 밤인지 아침인지 분간이 안 됐다. 똑같은 칠흑이었다. 누우면 한눈에 그려지는 작은 사각형의 쪽방. 크고 작은 세간에 떠밀려 저절로 새우등을 하고 쪽잠을 청했다. 바닥은 생각보다 따뜻했지만 우풍이 서렸다. 한 달치 꿈을 다 꾼 듯 뻑적지근했다. 서울 기온이 6년 만에 최저치인 영하 16℃로 내려간 1월14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아침이 와 있었다.   

방이 92개 ‘달린’ 5층짜리 건물. 가장 먼저 방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1층 제일 끝방에 사는 노양훈씨였다. 서울시내 어디든 창 달린 방을 높이 쳐주지만 노씨의 방은 예외다. 김장용 비닐로 겹겹이 막은 창으로 칼바람이 들이쳐, 전기 장판을 켠 이부자리에서 5cm만 멀어져도 차다. 그래서 늘 코가 시린 노씨는 화장실부터 들렀다. 같은 층 17개 방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곳이다. 밤사이 변기 물이 얼어 내려가지 않았다. 막대기로 들쑤셔봐도 소용 없다. 양변기를 놓으니까 오히려 물이 고여 쉬이 언다. 재래식 변기가 쪼그려 앉긴 좀 불편해도 더 나았던 것 같기도 하다.

살얼음을 뒤척이는 그의 손. 과거에는 ‘한주먹 했던’ 손이다. 100kg 다부진 체격에 ‘형님’으로 불린 시절이 있었다. 마약으로 몸이 상하고 물 들어간 귀를 방치해 얻은 중이염이 자신을 청각장애 3급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자살기도만 세 번. 지금은 종교의 힘으로 새사람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사람들 깨기 전에 부지런히 동파사고를 수습하려 전화를 돌린다.

간밤에 기자를 재워준 영등포 쪽방촌의 최고령자 나순덕 할머니(90)도 눈을 떴다. 의사가 처방해준 수면제가 떨어져 사흘째 잠을 편히 못 잤다. 좁은 방에 이방인과 부대끼느라 더 고단했을 것이다. 누운 자리 코앞에 있는 텔레비전부터 켰다. 주부를 대상으로 가정경제 재테크 강의가 한창이었다. 할머니는 화면에 뜬 시각을 확인한다. 9시가 넘었다. 영등포에서 10년째 맞는 캄캄한 아침이다. 당뇨병 때문에 돈을 못 버는 아들 집에서 나와 무작정 택시를 타고 한강으로 가자고 했더니 기사가 파출소에 데려다 주었다. 쉼터를 거쳐 쪽방에 왔다. 택시를 탔을 땐 목숨을 끊을 작정이었다.

어제 오전에 끓인 국을 오늘 아침 끼니로 데워 먹는다. 또 체할까봐 세 숟가락을 넘기지 못했다. 국에 든 당면은 어제 굵기의 두 배가 됐다. 할머니가 정부에서 지원받는 기초생활 수급액은 한달에 20여 만원. 호적에 자식이 있어 다른 사람보다 적다. 방세 15만원을 내면 빠듯하지만 먹을 것을 살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1년에 두 번 명절 때 화곡동에 있는 아들네를 찾는다. 이번 설에는 복지관에서 받은 꽃분홍색 이불 세트를 며느리에게 주려고 진작 챙겨놓았다. 

쪽방촌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대부분 고령이거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소설가 신경숙은 10대에 구로공단 쪽방에서 3년을 보냈다. 1970년대 젊은이들이 잠시 머물던 쪽방이 이젠 취약 계층의 종착지가 되었다. 지난해 12월22일 한국도시연구소에서 발표한 ‘비주택 거주민의 유형별 생활 및 지역별 특징’ 보고서를 보면 쪽방 주거자의 평균 거주기간은 25.4년이다. 평균 인원은 방마다 1.06명. 독거 노인이 많다는 말이다.

기사 전문 :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