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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공부의 신>을 위한 두 가지 변명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2. 7.


주> KBS 드라마 <공부의 신>을 두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일본드라마 '따라쟁이' 드라마라는 둥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둥...

이에 대한 글 두 편을 소개합니다.
<공부의 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PD저널> 민임동기 편집국장의 글과
블로거 강라나씨의 글입니다.




<공부의 신>을 위한 첫 번째 변명 


민임동기 - <PD저널> 편집국장


KBS 월화 드라마 <공부의 신>(연출 유현기·극본 윤경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논란이지만 언론에서는 주로 비판이 거세다.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공부의 신>이 학벌지상주의와 주입식 교육을 설파하는 퇴행적 내용을 담고 있고, 학원재벌 홍보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일본 드라마를 베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 타당할까? 타당하지 않다. <공부의 신>에 염려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공부의 신>에 제기되는 모든 비판을 정당화해주는 건 아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드라마’라고 해서 곧바로 ‘퇴행적 드라마’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공부의 신>에 쏟아지는 거센 비난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가장 황당한 것은 일본 드라마를 베꼈다는 비난이다. 리메이크와 베끼기의 차이를 진정 모르는 걸까. <공부의 신>은 일본 만화 <꼴찌, 도쿄 대학 가다>가 원작이며, 2005년 일본에서 <드래곤 자쿠라>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베끼기라는 비난이 성립하려면 <공부의 신> 제작진이 이 같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매번 방송 때 <공부의 신>은 <꼴찌, 도쿄 대학 가다>가 원작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건 부당한 비판이다.

 

학벌지상주의와 주입식 교육을 강조한다는 비난도 있다. 여기에는 변호사 강석호(김수로)와 수학교사 차기봉(변희봉) 등으로 대변되는 입시 위주·주입식 교육 설파 내용이 한몫한다. 특히 경쟁지상주의적인 MB 정부 교육정책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단정은 이르다. 일각의 염려는 이해하지만 <공부의 신>을 이런 가능성만으로 ‘단죄’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 <공부의 신>은 우리 사회의 ‘꼴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드러내면서 성찰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병문고 교사 한수정(배두나)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강석호의 ‘주입식 교육’이 담지 못하는 ‘인간교육’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장치도 심어놓았다. ‘꼴찌’에 대한 편견이 구조화한 사회에서 ‘원칙과 이상’이 아이들을 위한다고 볼 수 있을까. <공부의 신>은 그런 현실적 딜레마에 대해 생각할 여지도 남기고 있다.

특정 학원재벌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부의 신>은 드라마 제작에 대성N스쿨 2억원 등 6개 업체로부터 모두 11억200만원의 협찬을 받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중간에 대성N스쿨의 간접광고가 노출되면서 ‘학원재벌 홍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긴 하지만 과한 비판이란 생각이 든다. 협찬사에 대한 드라마 일부 간접광고는 더 이상 낯선 관행이 아니다. 면죄부를 주자는 건 아니지만 윤리적 단죄만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공부의 신>이 간접광고를 노골적으로 했다면 이런 비판에 지지를 보내겠지만 <공부의 신>은 통상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찌됐든 KBS 노동조합(위원장 강동구)은 <공부의 신> 논란과 관련해 공정방송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공부의 신>이 ‘공정한 방송’을 하는지 노사 테이블 위에까지 올라가게 된 셈이다. 노조 본연의 역할에 속하기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그동안 KBS 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할 때 KBS 노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공부의 신>에 대한 KBS 노조의 ‘공세적 비판’은 이례적이다. 혹 뉴스나 시사교양보다 드라마가 ‘만만하기’에 그런 건 아닐까.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다.





<공부의 신>을 위한 두 번째 변명


글 - 강라나 (블로거)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공부의 신>(이하 <공신>)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23.5%에 육박하는 큰 인기를 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KBS 노조는 노사 공정방송추진위원회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라 하고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조기종영 청원운동이 진행 중이다. 그 뿐인가, 크고 작은 신문사들도 앞다투어 <공신>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기에 여념이 없다. 모두 이 드라마가 성적만능주의를 부추기고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훈남 유승호 때문에 보기 시작한 시청자 중 한 사람이자,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쓴 맛을 본 적 있는 지극히 평범한 고딩들의 선배로서 이깟 드라마 하나에 발끈하는 님들이 나는 왜 이리도 부담스러울까?

 

   <공신>은 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래곤 사쿠라>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원작에서는 '도쿄대'라는 실재하는 대학명칭을 사용했지만 <공신>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실정'에 맞게 그나마 '천하대'라는 가상의 대학을 만들어냈다. 일본에서 방영당시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천하대'라는 가상의 대학을 설정했음에도 각계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그만큼 학벌과 입시제도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상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방증일까.

 
  <공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들 중 대표적인 주장은 <공신>이 현 입시제도에 대한 잘못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가 <공신>을 선택하는 이유는 드라마를 통해 답답한 현실의 해결책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라 고군분투하는 꼴통들의 노력이 가상해서이다. 그간 재벌가 아들과 가난한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드라마의 단골소재로 등장했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결혼의 해법을 제시한 드라마라고 평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도, 선생도, 친구도 포기한 사고뭉치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코피를 쏟으며 성공을 이뤄낸다는 스토리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이다. 특히 그들의 목표가 수많은 어른들이 이토록 열분할 만큼 '성의 영역'이라 불리는 '천하대'에 가는 것이기에 감동은 더욱 극대화된다. 모 기자는 '<공신>이 천하대를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들러리만 섰다는 느낌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묘사했던데, 나는 오히려 <공신>을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모든 학생들의 '천하대'가 '서울대'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욱 심각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 요직에는 '천하대' 졸업생들이 포진해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정계와 재계가 움직인다는 것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기사에서는 <공신>을 비판하면서 '모름지기 교육이라면 현실보다는 이상을, 성공과 경쟁보다는 공존과 나눔을 먼저 가르쳐야 할진대'라고 도덕교과서에 나올 법한 말씀을 해 주셨다. 이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나 일찍이 우리는 인적성을 그리도 강조하시던 한 교육부 장관께서 임기가 채 만료되기도 전에 일명 '주류'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수많은 질타를 받으며 떠나시는 것을 보았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여러 가지 가치가 존재하는 학교에서 성적 외의 가치는 평가 절하하는 느낌'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는데 그러면 사내연애커플이 주인공인 드라마는 기업의 본질인 이윤추구의 가치를 평가 절하해 우려의 대상이 되는가? 작금의 사태는 드라마가 더 현실같고 현실이 더 드라마같다.

 

   물론 일부 '잘하는 애들'만 뽑아서 특혜를 주는 일선 학교의 행태는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적어도 <공신>의 핵심은 '못하는 애들'에게 그동안 우리가 한번도 준 적 없는 기회와 관심, 믿음을 주고 그들이 정말로 이뤄낸다는 가상의 스토리에 있다. 이제 우리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공영방송의 역할논란과 연결지어 볼 수 있다. 공영방송의 핵심은 '사회의 파급력을 고려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공신>이 사회의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는데 이 '사회의 파급력'이란 말이 참 모호하다. 비록 주인공들이 여전히 공부는 못하지만 (물론 제대로 해본 적도 없지만) 재능과 특기를 살려 나름 좋은 대학에 간다는 설정이 공영방송 다운 것인가? 그럴수록 공영방송은 현실과 더욱 멀어져만 갈 뿐이다. 지금까지 공영방송은 '사회의 파급력을 고려해' 철수와 영희가 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나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하는 희망적인 메시지 등을 주로 전해왔다. 때문에 케이블 및 인터넷 방송의 등장과 함께 급변하는 방송구조와 극심한 경쟁구도 속에서 공영방송은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기 위한 생존전략을 모색하기 이른 것이다. 시청자들이 더이상 아름답고 훈훈하게 포장된 이야기만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공신>의 높은 시청률이 증명해 준다.

 

   드라마 <공신>과 공영방송을 둘러싼 각 논란은 서로 닮아있다. 문제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은 때로는 유익하지만 급변하는 미래시대의 가치를 자칫 간과하게 될 수도 있다. 원인모를 정의감에 사로잡힌 과민반응보다 좀 더 릴랙스하고 여유있게 바라보는 원시안적인 감각이 필요한 시대다.  그것은 분명,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