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스 바자>에서 섹스칼럼을 달라고 해서 기고한 글입니다.
패션지에서 기고 요청이 오면 저는 열일 제치고라도 합니다.
미용실에서 이 글을 읽어줄 수많은 언니들을 위해서...ㅋㅋ
근데 <하퍼스 바자> 2월호를 보니
슈퍼모델 출신 이여영 기자는 '화보'를 찍었네요.
http://blog.daum.net/yiyoyong/8933400?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yiyoyong%2F8933400
수퍼 모델사진 보고 소주 사는 저는 '기고'를 하고...
1등만 화보 찍는 더러운 세상. ㅋㅋ
이것은 상당히 자의적 기준인데, 나는 남자들이 위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성을 욕망하면 ‘조숙’한 것으로 생각하고 아래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성을 욕망하면 ‘퇴행’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살아보니 그랬다. 어쨌든 이런 원칙에 따라 해석하자면 근자의 걸그룹 현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조선 수컷들의 ‘집단 퇴행’이다.
한 대중음악 평론가가 ‘창고 대방출’이라 혹평했을 만큼 일군의 걸그룹이 쏟아져 나왔다. SES와 핑클 신드롬 이후 근 10년 만의 일이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2NE1, 애프터스쿨, 티아라, 포미닛, 시크릿, 브라운아이드걸스, 씨야, 햄, JQT, 에프엑스(f(x)), 레인보우, 토파즈, 레이디컬렉션... 대충 꼽아도 16팀이다. 걸그룹 월드컵을 열어도 될 정도다.
20팀 가까운 걸그룹의 멤버 합은 100명이 넘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만고만한 걸그룹 팀들을 구별해내며 복제인간같은 얼굴 속에서도 멤버를 구분해낸다. 이 놀라운 흡수력으로 단숨에 걸그룹을 대중음악계 아니 연예계 전체의 소녀가장으로 키워낸 족속들은 25세~45세 청장년 남성들이었다.
꺾이기 시작한 내 주변 남성들이 아래로 띠동갑 걸그룹에 아랫도리를 지리는 모습을 보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걸그룹 현상을 파생 나가요 현상으로 이해했었다. 남자들이 한껏 차려 입은 여성들을 줄지어 세워 놓고 고르던 것은 오래된 밤의 습성이었다. 그 짓을 TV 앞에 앉아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심지어 컴퓨터 앞에서 ‘걸그룹 이상형 월드컵’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상형 토너먼트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의 실체는 더 참담했다. 가히 ‘성기가 오그라드는 현상’이라 할만큼 소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루저들에게 ‘얼짱 몸짱 맘짱’의 판타지를 구현해주는 세계는 룸싸롱과 단란주점이었다. 그런데 그런 대리만족이 아니라 ‘여신숭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모습이 걸그룹 현상에 담겨있었다. 그것은 현실도피에 가까운 것이었다.
성기가 오그라들면서 자아도 오그라들었고 그 반작용으로 걸그룹 멤버들은 절대화 되었다. ‘윤아신’ ‘유이신’ ‘구하라신’... 루저남들에게 ‘롤리타 콤플렉스’는 더욱 노골적이 되어 F(x)로 가면서 평균 데뷔년도가 15~16세로 낮춰졌다.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아이인 여자, 그런 여성을 신격화하며 점점 더 소심해진 것이다.
루저라는 말이 남성들의 뇌관을 건드리기는 했지만 이미 남성들은 그 이전에 ‘잉여인간’ ‘초식남’ 등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를 자학하고 있었다. 걸그룹이 여신이 되는 시간은 역설적으로 각종 루저가 판을 치던 시기였다. 그것이 지극히 형이하학적 욕망에서 출발한 걸그룹 취향이 걸그룹 숭배로 승화된 까닭일 것이다.
걸그룹의 평균 나이가 낮아지고 있는 것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그들이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할 때, 그래서 찌질한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할 때까지가,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햇병아리 가운데 가장 섹시하고, 섹시한 여자 연예인 가운데 가장 햇병아리인 걸그룹 신참을 겨냥하는 것이다. 처녀이면서 요부이고, 여성적이면서 남성적이며, 나쁘면서 착하고, 애인이면서 친구인 ‘불가능한 가능’을 찾아서...
물론 걸그룹에 대해서 남성들은 동물적 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왕가슴 논란으로 시작해 허벅지와 복근을 거쳐 심지어 일자 배꼽까지 이효리의 각 부위를 훑었던 실력을 발휘해 소녀시대 마린복 사이로 드러난 쇄골과 애프터스쿨 유이의 허벅지를 거쳐 포미닛 현아의 골반까지 알뜰하게 훑는다. 여전히 그들의 오감은 섬세하다.
이효리가 핑클의 ‘요정’에서 왕가슴 논란을 일으키는 ‘성녀’로 진화할 때, 그녀를 불세출의 섹시스타로 키운 비결은 일곱가지 S라인이었다. System(스타 시스템) Scandal(유방 성형 논란) Summer(여름) Sex(섹스 어필) Strong(강한 여성상) Story(엽기적인 자기 고백) Style(패션 리더)... 이 일곱 가지 ‘섹시학’ 장학생이 되기 위해 유이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허벅지를 쓸어내리고 현아는 골반으로 방아를 돌리고 구하라는 눈코입을 뜯어 고쳤다. 이들 중 누가 ‘유일신’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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