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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깊숙히 들여다보기

마초 캐릭터만 사랑받는 더러운 TV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 26.





‘마초’들이 부활하고 있다. <추노>의 쫓는 초콜릿복근과 쫓기는 초콜릿복근, <공부의 신>의 일등주의자 김수로, '내 주방에서 여자는 안돼'라고 말하는 <파스타>의 이선균, 국민체조로 아침을 시작하는 <그대웃어요>의 최불암, 며느리 구박하는 <살맛납니다>의 땡깡마초 임채무까지, 바야흐로 마초의 시대다. 6-25 전쟁 60주년을 맞이해서 MBC <로드 넘버 원> KBS <전우> 등 전쟁드라마도 제작된다고 하니 당분간 마초들의 행렬이 이어질 것 같다.  

마초는 스페인어 machismo에서 온 명사이며 지나친 남자다움을 이야기한다. 스페인어로 macho는 때때로 용기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들은 남성으로의 권리가 위험한 모험을 즐기는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여성들은 집안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여 때때로 가정 폭력의 원인이 된다.

모래시계 - 야인시대 - 무인시대... 시청자들은 늘 선 굵은 주인공들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마초시대를 연 주인공은 고현정이었다. <선덕여왕>의 여성마초 ‘미실’이 문을 열어제꼈다. 이후 김영철 이병헌 정준호 김승우 등 마초들의 각축전이 벌어진 ‘아이리스’가 계보를 이었고 웃장 깐 생마초들이 등장하는 <추노>에서 완성되었다.  


요즘 마초는 옛날 마초와는 다르다. 부담 없는 마초, 댄디한 마초, 섬세한 마초다. 지난해 고전한 <남자이야기> <태양을 삼켜라> <친구, 우리들의 전설>의 마초가 1차원적 마초였다면,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처럼, "왜 내 남자라고 말을 못해, 애기야 가자, 우리 애기 놀란 거 안보여요?"라며 여자의 마음을 롤러코스터처럼 끌어올렸다 끌어내리는 쿨한 마초가 요즘은 인기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마초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결혼안한 남자와 결혼한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과 같다. 잘생겨야 한다. 작년에 ‘짐승돌’이란 말이 유행했다. '짐승돌'의 핵심은 몸뚱아리와 머리통의 믹스 앤 매치였다. 몸은 짐승인데 얼굴은 꽃미남. 보기엔 좋은데 갖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런 마초를 여성들은 원한다. 

여성들은 ‘나쁜남자’ 스타일의 마초도 좋아한다. 그러나 밑도 끝도 없이 나쁜넘은 싫어한다. 나쁜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어줘야 한다. 그 사연을 모성으로 껴안으며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야생마를 길들이는 기분으로 좋아한다. 모든 여성들의 판타지는 '이 남자는 나만 길들일 수 있어'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매번 새롭게 길들여지는 척 하느라 괴롭다.

이렇게 ‘마초’들이 부활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걸그룹 현상과 대척점에 있다. 남자들이 젊고 이쁜여자만 좋아하는데, 여자들은 착하고 순한 남자 좋아하겠나? 남자들이 딸 같은 여자 보면서 침흘리는데 여자들이라고 아들같은 남자 보고 가슴 벌렁거리자 말라는 법있나? 뿌린대로 거둔 것이다. 마초현상, 이 것은 여자들의 맞바람이다.



그래도 요즘 유난히 더 그런다고? 여자들에게 마초는 ‘해결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자보다 남자가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마초는 지배-피지배 관계를 형성하는 대신 어려운 문제는 도맡아 해결해준다. 고로 마초는 수동적인 여성들에게 인기다. 마초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여성들이 수동적이 되었다는 것, 즉 살기가 각박해졌다는 뜻일 게다. 내가 나를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초는 필요 없을테니까.

현실은 각박해졌는데 현실의 남자는 찌질해졌다. 예능프로그램의 남자들은 구차스럽다. 치사하게 데이트를 복기하는 ‘남보원’ - 남성인권보장위원회, 제 앞가림도 못하는 남자들의 수기 - ‘남자의 자격’, 애들처럼 공놀이에 울고 웃는 '천하무적야구단' 예능프로의 남자들은 이런 찌질이들을 반영한다. 찌질이를 보고 웃고 로망은 마초에게 푸는 것이다.  

마초현상은 일종의 문화적 퇴행현상이다. 남녀간의 성역할 차별화를 고착화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지배이데올로기 혹은 현실이데올로기 힘을 얻게 된다. 마초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이것이 <공부의 신>의 김수로 대사가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과 일치하는 이유다. 문화평론가 김규항이 말한 ‘우리 안의 이명박’ 이 구현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