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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지못미' 프로젝트/유인촌 장관님, 퇴진하시죠!

42년전 프랑스 영화계의 악몽, 우리 영화계의 현실이 되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3. 11.

문화예술계 분위기가 수상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작가회의는 '저항의 글쓰기'를 선언했고 
독립영화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를 정부가 운영하는 극장에서 틀지 않겠다며 
'자학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위원회 김정헌 위원장은 '출근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각계에서 이명박 정부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전하는 고언을 
시사IN이 모았습니다. 
이를 '독설닷컴'에도 올립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의 글입니다. 
민간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를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자를 공모하려고 하자 영화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독립영화감독들이 정부가 불공정하게 선정한 독립영화상영관에서는 자신들의 작품을 상영하지 않겠다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42년전 프랑스 영화계의 악몽, 
우리 영화계의 현실이 되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지난 2월23일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표이기도 한 코스타 가브라스가 서울아트시네마에 한 통의 서한을 보내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8년간 극장에서는 제대로 개봉되지 않은 무성영화, 1930~1960년대의 고전영화·예술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해온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영화사 거장들의 회고전·특별전, 영화교육 활동 등을 독립적으로 진행해왔다. 배창호·이명세·박찬욱·봉준호·김지운·류승완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과 안성기·황정민·이나영 등의 배우가 이 극장을 후원했고,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한 해 30% 정도의 예산을 지원해왔다. 그런데 올해 초 영진위가 갑자기 시네마테크를 공모하겠다고 나서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서한에서 코스타 가브라스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수년간 모범적인 방식으로 영화예술에 가치를 부여하고 진흥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이는 영화예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운영진이 주도한 것으로 특별히 서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지금의 시네필들에게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충분한 지원을 받아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지속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완전한 독립 없이는, 전용관을 갖지 않고서는, 장기적인 공적 지원 없이는 한국의 시네마테크는 영화 예술을 보존하고 복원하고, 진흥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 가운데서도 서울아트시네마, 혹은 시네마테크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시네마테크는 한국에서 예외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서점에서 절판된 책들이나 과거의 고문서들을 접하고자 할 때 도서관을 찾듯이 혹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절, 인상주의 회화의 거장들의 작품과 만나고자 할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듯이 거장들의 영화예술과 접하고자 할 때 작품과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시네마테크이다.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이미 1930년대에 민간이 주도해 설립됐고, 고다르·트뤼포 등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배출했으며, 지금은 영화박물관·영화자료도서관을 거느린 거대한 ‘영화의 집’이 됐다. 앙리 랑글루아라는 걸출한 인물이 자신이 사랑했던 무성영화들이 1930년대 유성영화가 도래하면서 폐기처분되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상황에서 그런 영화들을 수집하고 보관하고 상영하기 위해 시네마테크가 만들어졌다. 파리에는 이런 성격의 시네마테크가 4, 5개 있는데 각각 정부 혹은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와 유사한 국립영화센터(CNC)나 파리 시가 연간 100억이 넘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물론 운영은 독립적이다. 


코스타 가브라스가 서한에 쓴 ‘완전한 독립’이라는 표현에는 그들이 겪었던 역사의 흔적이 담겨 있다. 68혁명의 도화선이자 시네마테크의 독립성을 둘러싼 싸움이었던 소위 ‘랑글루아 사건’ 말이다. 1968년 2월9일, 당시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책임자이던 앙리 랑글루아를 해임하고 운영진을 전면 교체하자 영화인들이 거리에 나서 랑글루아의 해임과 시네마테크의 독립성을 쟁취하기 위한 시위가 벌어졌다. 전 세계 영화인들이 프랑스 정부에 탄원서를 보냈고, 그 결과 대중 시위에 밀린 드골 정부가 마침내 굴복해 랑글루아는 4월에 복직됐고, 시네마테크는 독립성을 지켰다. 하지만 이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져 같은 해 5월에 ‘68혁명’의 점화선이 됐다.


‘랑글루아 사태’는 철저히 독립적인 방식으로 만들고 운영된 민간 시네마테크가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예술에 대한 통제와 간섭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당시 정부 관료들은 예술을 권력의 통제하에 두려 했다. 트뤼포는 이런 드골 정권의 탄압이 ‘사고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 비판했고, 클로드 샤브롤은 ‘처음에는 시네마테크에 관심도 없던 이들이 정부 지원이 늘어나면서 돈과 자리를 보고 어슬렁거리게 되면서’ 이 사태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42년 후,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졌다. 아니 더 무지하고 위법적인 방식으로 ‘시네마테크 사태’가 발생했다. 영진위는 지난 몇 년간 시네마테크의 좋은 협력자였지만, 최근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자를 공모하겠다고 나선 것은 명백한 운영권 침해 행위이자 그동안의 성과를 불인정하겠다는 처사와 다름없다. 영진위는 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자발적으로 후원하고, 관객이 영진위가 지원을 중단하면 후원금을 모아서 내겠다고 하는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네마테크의 위기는 곧 영화예술의 위기를 의미한다. 정책 당국자들은 문화와 예술의 논리로 신뢰를 회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