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백만년만에 연극을 한 편 보았습니다.
그래서 백만년만에 연극리뷰를 올립니다.
대상 작품은 '대학살의 신'
<아트(Art)>의 작가 야스미나 레쟈가 쓴 <대학살의 신>은
2009년 토니상 최우수연극상 연출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박지일 김세동 서주희 오지혜 등 짱짱하고 깐깐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대학로예술극장에서 4월6일부터 5월5일까지.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아이가 공원에서 막대기로 다른 아이의 얼굴을 내리쳤다.
다른 아이는 이빨 두 개가 부러졌다.
연극은 이 일을 사과하러 온 때린 아이 부모와 맞은 아이 부모가
협상하고 어긋나고 다투고 화해하고 이해하고 오해하고
과시하고 밝혀지고 모독하고 모독당하는 이야기다.
이 모든 일이 맞은 아이 부모의 집 거실에서 일어난다.
외부로 연결되는 것은 전화를 주고 받을 때 뿐이다.
어찌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캐릭터도 전형적이다.
속물 변호사와 알콜중독자 부인
마마보이 공처가와 허영에 들뜬 사모님.
미니멀리즘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대장치 음향효과 등을 최소화했다.
스토리도 간소하다.
이제 관객을 홀릴 수 있는 것은 배우의 입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해낸다.
관객이 캐낼 것은 배우의 입 뿐이다.
입만 바라보면서 '몰입'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몰입이 이뤄졌을 때 이 연극은 진가를 발휘한다.
모든 사건은 입에서 비롯되고 입으로 커지고 입으로 뒤틀리고 입으로 해소된다.
주인공들이 입방정을 떠는 동안
속물성이 나약함이 허영이 무절제함이 드러난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낀 듯한....
그렇게 툭툭 건드린다.
그러다가 나도 저러지 않나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들 때쯤 연극은 최고조로 향한다.
바둑이 장기보다 수가 많은 것은 룰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단순함 속에는 복잡함이 숨어있다.
<대학살의 신>은 바로 그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형적이었던 주인공이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입체적으로 변하고
말다툼은 폭로전을 거쳐 몸다툼이 된다.
점점 긴장이 고조된다.
그러나 그 길을 여유롭게 간다.
조금 고조시키는가 하면 힘을 빼주고 늘어졌다 하면 긴장시킨다.
몸과 마음을 교묘히 홀린다.
첫 회 공연인데도 배우들의 하모니가 좋았다.
몇 번 공연이 오른 뒤에는 더 절묘해질 것이다.
주인공들은 캐릭터를 자신의 링으로, 자신의 클리세 안으로 끌어들였다.
캐릭터와 이질감이 없다.
이 연극을 보면서 스토리를 마구마구 꼬아대는
우연적인 에피소드를 남발하는 '막장드라마'를 떠올렸다.
억지로 개연성을 만들어내는 개연성없는 막장드라마와 달리
이 연극은 개연성 없는 것에서 개연성을 찾아낸다.
그래서 위대하다.
<대학살의 신>은
'막장드라마'에 지친 눈과 귀를 씻어줄 진정한 '막 장난 연극'이다.
결혼당한 사람들에게 좋다.
특히 아이를 상전으로 모시는 부부에게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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