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괴물녀' 소동, 예술이 괴물이 되는 시대

지난주 금요일 다급한 목소의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서울변방연극제 임인자 예술감독님이셨습니다. 

광화문에서 변방연극제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것이 인터넷에 '광화문 괴물녀' 소동으로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론이 '광화문 괴물녀' 현상을 부추겼기 때문인데, 

무척 당황스럽다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연출하신 분의 취지를 시사IN 인터넷뉴스로 전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연출의도를 담은 글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시사IN 홈피에 올리고 포털에도 전송했는데, 

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광화문 괴물녀' 소동은 시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하면서 빚어진 소동인 듯합니다. 

작가의 의도가 잘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 '독설닷컴'에도 올립니다.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임인자입니다.

어제 오후에 급작스럽게 '광화문 괴물녀'라는 이름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오르더니 공연 전부터 그리고 공연을 마치고 나서까지 경찰과 기자님들의 전화를 받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공연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닌데, 사실에 대한 확인도 없이 그가 누구인지 온갖 추측성 기사가 난무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낄 정도 였습니다.

이 시대는 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디엔가 이 도시에 괴물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이질적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의 사실 여부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듯 합니다. 이 공연을 연출한 크리에이티브 바키 이경성 연출은 팀원들과 함께 광화문 일대를 중심으로 도시에서의 생태에 대해 지난 3개월간 연구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심에서 연출은 사람이 활보하는 거리에서 사람이 아닌 상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한 자극이 '괴물'이라는 상상으로 또한 이 작품에서의 도시인에게 던지는 '화두'로 점점 구체화되었습니다.

인터넷에 떠돈 광화문 괴물녀 어제까지의 공연은 잘 끝났습니다만 이메일을 보내는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 남은 이틀의 공연을 잘 끝낼 수 있을지 염려스럽습니다. 이 일련의 일들을 두고 사람들은 흉측함과 예술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상관관계에 대해 언급합니다만 이는 ‘상상에 자유를, 혹은 예술적 표현에 자유를’이라는 구호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그저 옆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야기를 걸고 싶은 것입니다.

나 자신, 그리고 우리들은 벌써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것이 이번 '도시이동연구'에 대한 첫번째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기자님들은 ‘광화문 괴물녀’라는 배우의 이름을 물으며 그 존재에 대한 물음이 아닌 그 배우의 이름을 밝히려는 물음만 지속합니다. 이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  우리 목소리를 이경성 연출의 글로 대신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바키가 연출한 광화문 공연 오늘, 

여기와 ‘광화문 괴물녀’

-광화문 괴물녀의 정체를 밝히며-

이경성(연출가, VaQi 대표)

광화문, 청계천 일대는 참으로 잘 짜인 공간이다. 물(?)이 흐르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설치물들과 우리 역사의 자랑들이 위엄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잘 짜여진’이라는 말은 빈틈없이 꾸며진 겉모습 이라기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통제를 위한 법규들이 그물처럼 공간을 덮고 있는 현상을 표현하는데 더 잘 어울린다. 불행히도 이 공간에서 우리는 ‘선택’하지 못하고 ‘강요’받는다. 강요되는 지점 밖의 행위와 의미들을 이 공간 안에 가지고 들어왔을 때 우리들의 ‘일반시민’이라는 자격은 순식간에 박탈당한다. 그 경계가 참으로 종이 한장 차이다.

   

크리에이티브 바키가 연출한 광화문 공연 지난 3개월 간 극단의 배우와 다양한 작가들이 모여 광화문, 청계천 일대의 공간을 연구하며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공연을 만들어 왔다. 과연 이 도시 안에 ‘인간으로써의 휴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여러 가지의 실험과 조사로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왔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정돈되고 통제되는, 한 가지의 강요에 대한 지점을 몸소 느꼈다. 그것은 도시라는 거대한 벽에 수 십 번이고 몸을 던져 부딪치고 나자빠지는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흥미롭게도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와 배우들의 예술적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었다. 만약 이렇게 잘 짜인 공간 안에 괴물이 살고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어디에 서있을 수 있을까? 그 경계의 안 쪽일까?  밖일까? 아님 경계일까.

흉측한 괴물이 도시를 거닐었다. 괴물을 반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흉측하고 더러운 존재를 반길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이쯤에서 반문해 본다. 과연 지금 인터넷 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광화문 괴물의 실체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등에 업고 다니며 이 일대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평가받는 그 괴물녀인가?

   

크리에이티브 바키가 연출한 광화문 공연 흉측한 괴물은 정작 다른 데, 하지만 도처에 널려 있었다. 광화문 괴물은 끊임없이 모습을 변신 중이었다. 일인 시위를 하는 장애인을 에워싸고 곤봉을 들이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때론 그것이었으며, 그를 모르는 척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것이었다. 차도 사이에 사시사철 공사와 이벤트로 ‘비어’있는 적이 없던 광장과 대낮에도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고 강요하는 전광판이 그것이었다. 하루사이에 콘크리트 바닥이 꽃밭이 되고 또 꽃밭이 콘크리트 바닥으로 변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괴물을 보았다.

우리는 인터넷에 그러한 풍경들을 올렸고 괴물녀의 흉측함에 추측성이 난무하는 글들이 몇 시간 만에 수 십 개가 올라왔다. 언론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궁금증과 의혹을 흥밋거리로 증폭시켰다. 사람들은 사실을 궁금해 하는 척했지만 진실로 사실의 여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오르며, 이 상상 밖의 괴물은 그렇게 사이버 상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다시금 돌아본다. 이 도시 안의 괴물은 무엇일까? 과연 ‘광화문 괴물녀’ 또는 ‘쓰레기녀’라 불리며 흉측한 모습으로 배회했던 그 존재가 진짜 괴물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흉측함이 눈에 보이는 흉측함보다 무서운 법이다. 보이는 흉측함은 눈으로 전달될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흉측함은 마음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광화문 괴물녀는 그 일대를 거닐고 있다. 오늘, 여기의 보이지 않는 흉측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도 점점 괴물도 변해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