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가 출간 전후에 거친 일은
한국사회에서 '삼성에 대한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지하철 광고. 일간 신문에는 광고가 실리지 못했다.
'화제가 되지 않았는데 화제가 된 책' '화제가 되고도 화제가 되지 못한 책'. 김용철 변호사의 신간 <삼성을 생각한다>를 설명하는 말이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출간 후 겪은 일은 우리 사회에서 삼성을 향한 말하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화제가 되지 않았는데 화제가 된 책’이라는 말은 주류 언론에서 별다른 기사를 써주지도 않고 심지어 거의 모든 매체에서 광고를 실어주지 않았는데 베스트셀러 종합순위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화제가 되고도 화제가 되지 못한 책’이라는 말은 이런 기록을 세웠음에도 언론에 그 내용이 전혀 조명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붙인 말이다.
이 책이 출판 전후에 겪은 일은 우리 사회에서 ‘삼성에 대한 말하기’가 김 변호사가 삼성 관련 기자회견을 연 2007년 가을 상황처럼 여전히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김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 계좌 폭로 자료를 들고 신문사 두 곳과 방송사 두 곳을 찾았다. 모두 거절당했다. 거의 포기상태였던 그는 다행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과 만나게 된다. 사제단은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파업을 벌이고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구호로 내걸고 창간한 <시사IN>과 김 변호사를 연결해주었다.
<시사IN>에 김 변호사의 폭로 내용이 기사화되고 사제단이 기자회견을 갖자 침묵하던 언론은 일제히 삼성을 향해 집중 포화를 쏟아댔다. 물론 일부 보수언론은 정조준을 하지 않고 난사하는 수준의 기사를 쓰긴 했지만 한국 사회를 옥죄고 있던 ‘삼성 터부’가 일시적으로 풀리는 듯했다. 정권은 삼성 특검을 결정했고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김 변호사의 폭로 기자회견 직전으로 되돌려져 있다.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지난 연말 사면을 받고 사실상 경영에 복귀한 이 전 회장은 선친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어야겠다”라고 말했다. 사면을 받고도 할 말을 다 하는 이 전 회장에 비해 삼성에 대해서는 다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전후에 비자금 폭로 과정의 고난을 다시 겪었다. 삼성 비자금 문제를 보도해줄 언론사를 찾지 못해 방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그가 처음 염두에 둔 곳은 프레시안북스와 한겨레출판사였다. 프레시안북을 염두에 뒀던 것은 프레시안 기자가 집필 과정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고, 한겨레출판사를 생각한 것은 대표적인 진보언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곳과의 교섭 모두 여의치 않아서 이곳저곳 타진하다 결국 사회평론에서 출판하게 되었다.
사회평론에서 편집을 맡은 김태균씨는 “초고는 다소 거칠었다. 명예훼손적인 내용에 실명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출판사들이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원고를 다듬고 실명을 가명으로 고치는 등 수정을 거쳐서 출판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책 출판 이후 오마이뉴스·프레시안·미디어오늘 등 진보성향 인터넷 매체에는 기사가 나갔지만 오프라인 매체에서는 한겨레신문(<한겨레21>에는 저자 인터뷰가 실렸다)과 경향신문, 한국일보(단신) 정도에서만 다뤄졌다.
보수언론은 이 책을 거의 소개하지 않았고, 국민일보에는 “기사도 광고도 없이 7만5000부가 팔린 책이 있다”면서 정작 책 제목은 소개하지 않는 희한한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3월5일). 진보언론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경향신문에서는 책 소개 기사가 인터넷판에서 삭제되어 논란이 일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언급한 전남대 김상봉 교수 칼럼을 게재하지 않자 기자들이 강하게 반발해 결국 1면에 사과글을 올리기도 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진보언론에 삼성이라는 큰 화두를 던졌다. 김준일 경향신문노조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은 우리 언론이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절감한 계기였다”라고 말했다. 한겨레신문에서는 광고 게재 문제가 불거졌다. 회사 광고국에서 통상적으로 책 광고에 적용해주던 할인율을 이 책에는 적용해주지 않아 광고가 게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내부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겨레신문 홍세화 기획위원은 “한겨레신문 측은 할인가격 대신 정상가격을 요구하여 아직 게재되지 않고 있지만 이는 관행을 벗어나는 것으로 ‘내면화한 굴종’이다”라고 비판 칼럼을 쓰기도 했다(3월3일). 류이근 한겨레신문 노조위원장은 “진보언론의 가치를 되묻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해 이번 사안을 5면에 걸쳐서 집중 조명했다”라고 말했다.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김용철 변호사(오른쪽)
보수 언론은 침묵, 진보 언론은 홍역
오마이뉴스는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함께 저자 강연회를 기획했다가 갑작스럽게 취소해서 삼성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경향신문이 거부한 김상봉 교수 칼럼을 오마이뉴스 역시 게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더욱 깊어졌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 한 관계자는 “알라딘과의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이라 오해를 산 것 같다.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해서 어느 언론사보다 많은 기사를 썼던 오마이뉴스가 이런 오해를 받는 것을 보면 ‘삼성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집단 무의식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해서 진보언론이 이처럼 속앓이를 해야 했던 것은 책이 이건희 전 회장 사면 직후에 출판되었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비자금 폭로 이후 진보언론에 대한 광고 게재를 중단한 삼성 측은 이 전 회장 사면 직후부터 진보언론에도 광고를 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광고는 아직도 꽁꽁 묶여 있다. 3월5일 현재 <삼성을 생각한다>의 지면 광고가 게재된 곳은 은평시민신문이 유일하다. 지면 광고가 막히자 출판사 측은 지하철 광고를 시도했다. 설 연휴 직전 1호선·2호선·3호선·5호선에 각 200량씩 객차에 광고를 게재했지만 2호선과 5호선에 설치한 광고판은 설 연휴 직후 철거되었다. 대행사가 삼성 광고를 수주받지 못할 수도 있다며 자진해서 철거한 것이었다. 포털사이트는 “책 내용이 정치적이라 안 된다”라며 배너광고를 거부했다.
그래도 이 책은 출간 2주일째 알라딘·예스24 등 온라인서점에서 종합순위 1위를 차지했다. 비결은 바로 트위터였다. 진실을알리는시민(@jinalsi) 등 트위터 이용자들이 구매운동을 펼치면서 폭발적으로 호응이 일었다. 7일 동안 500번 이상 퍼나르기가 진행되면서 15만7165명에게 전달되었다.
사회평론 편집자 김태균씨는 “기사도 광고도 없는 상황에서 트위터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라고 말했다. 효과는 빠르고 강력했다. 첫 주말 200 부 정도밖에 나가지 않던 책 판매에 불이 붙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 담당자는 “<삼성을 생각한다>의 판매 추이는 밀리언셀러인 <1Q84>보다 빨랐다. 마케팅 없이 이런 반향이 일어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트위터를 통해 책을 산 독자들이 블로그나 인터넷카페, 온라인서점 등에 리뷰를 올리면서 2차 반응이 나타났다. 인쇄기에 불이 났다. 표지로 쓰던 수입용지가 동이 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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