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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키 작은 영화들

독립영화 감독은 영화를 '세 번' 찍는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4. 20.

작은연못에 출연한 배우들. 박광정씨(왼쪽 두번째)는 개봉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4월15일과 4월22일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가 일제히 개봉하는 날이다. 왜일까? 대학생들의 중간고사 기간, 즉 극장가의 비수기이기 때문이다. 4월15일에는 <작은 연못> <사이즈의 문제> <미 투>가, 4월22일에는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섹스 볼란티어> <허트로커> 등이 개봉한다. 역설적으로 비수기에 좋은 영화가 많이 개봉한다. 주류 배급사들이 비수기라며 외면하는 이 시기에 비주류 배급사들은 ‘흥행 패자부활전’을 위해 사활을 건다. 


4월15일 공식 개봉하는 <작은 연못>은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1만명 시사회를 열었다. 노근리 학살을 소재로 만든 이 영화에 대한 입소문을 내기 위해 ‘인해전술’을 편 것이다. 출연료를 받지 않고 영화에 출연한 문성근·문소리·이대연 등 배우들과 역시 대가를 받지 않고 참여한 제작진이 함께 전국을 돌며 무대인사를 하고 영화를 홍보했다(142명 배우 전원과 229명 스태프 전원 무료 출연, 무료 제작).  

   
제작사인 노근리프로덕션은 여기에 한 가지 이벤트를 더 벌였다. 영화를 보고 1만원을 기부하면 자막에 이름을 넣어주는 행사를 했는데 여기에 관객 3734명이 동참해주었다(876명은 온라인 이벤트로 입금). 이렇게 모인 3800만원으로 <작은 연못>의 영화 프린트 38개(개당 100만원 상당)를 제작했다. 관객을 영화 제작 마지막 단계에 참여하게 한 것이다. 


<작은 연못>이 이 정도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사시킬 수 있던 배경은 지난해 11월 ‘영화 작은연못 배급위원회’가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로 300만 흥행 기록을 세운 인디플로그 고영재 대표가 주동이 되어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3월22일부터 17일 동안 8개 도시에서 39회 시사회가 진행되어 1만명을 채웠다. 모든 시사회에서 무대인사가 진행되었다.


사전 홍보에 힘을 싣는다는 것은 사실 비용의 문제다. 홍보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용 부담이 커진다. <작은 연못>이 참고한 영화 홍보 모형은 한 달 먼저 개봉한 <경계도시 2>였다. <경계도시 2>는 시민사회 단체의 도움을 이끌어내 이 한계를 극복했다. <경계도시 2>에서도 유명인들이 시사회에 참석하고 관객과의 대화에도 함께하고 심지어 영화평까지 써줬다. 김일권 PD는 “박원순 변호사 등 많은 분이 리뷰를 써주었다. 한국영화 중에서 비영화인에 의한 평론이 가장 많은 영화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홍보비 없이 인해전술로 홍보

<작은 연못>은 <경계도시 2>처럼 트위터 등 뉴미디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화 공식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관객과 소통했고 ‘트위터 시사회’를 열기도 했다. 이에 트위터 이용자들은 자발적 구매운동으로 화답했다. 제작사 ‘시네마 달’ 관계자는 “변호사 회계사 등이 10장, 20장 티켓을 사서 주변에 돌리는 ‘십시일반 마케팅’을 해주었다. 개중에는 용돈을 모아 참여하는 학생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관객의 자발적인 참여로 애초 7개 스크린에서 개봉된 <경계도시 2>는 스크린 수가 15개로 늘었고 광주·대구·부산·대전 등 지방도시에서도 개봉될 수 있었다. 스크린 수가 적은데도 관객 1만 명을 바라보고 있는데 점유율이 높아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형숙 감독은 “영화 개봉 전후로 매일 무대인사를 다녔다. 단순히 인사만 한 것이 아니라 관객과의 토론회였다. 쓸 수 있는 것은 몸밖에 없어서 그랬는데 30번 정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워낭소리> 신화가 있어 희망은 있다. 300만 흥행신화를 기록한 <워낭소리>는 개봉 첫 주 일곱 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극장 수가 점점 늘어 최대 200개 스크린까지 확장되었다. 500개 이상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대작 영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현재의 배급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기적을 낳았다. <워낭소리>의 수익으로 <똥파리> <할매꽂> <반두비> <이웃집 좀비> 등이 개봉할 수 있었다. 


이런 독립영화 배급사 라인업에 포함되어 개봉할 수 있는 것은 독립영화 감독에게 대단한 행운이다. 대다수 독립영화는 이런 기회도 얻지 못하고 사장되기 십상이다. 개봉을 위한 우회 통로는 해외 영화제다. <섹스 볼란티어>를 연출한 조경덕 감독은 “영화 개봉을 위해서 안 만나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었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국내 개봉을 위해서는 해외 영화제 수상 경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여기저기 해외 영화제를 뚫었다. 상파울루 국제영화제 대상을 받고 오니 보는 눈이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경계도시2 홍보에 가수에 김C, 박원순 변호사, 배우 권해효씨(왼쪽부터)등 많은 유명인이 나섰다.



독립영화 감독은 영화를 '세 번' 찍는다  

이렇게 희생과 봉사에 의지해 알음알음 홍보를 하는 이런 독립영화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거점 극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위탁 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이 있어서 이곳을 중심으로 개봉했는데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이곳을 다른 기관에 맡긴 이후로는 이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감독과 배우가 봇짐장수처럼 눈치를 보며 무대인사를 다니고 있다.  


관객도 답답하다. 좋다는 소문을 듣고 막상 극장에 가면 독립영화를 찾을 수 없다. 다양한 영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더욱 보기 힘들다. 상영한다 하더라도 대부분 다른 영화와 교차 상영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KT 상상마당 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 그리고 영진위가 지원하는 아트플러스 네트워크 소속 14개 극장에서 독립영화를 볼 수 있다.  

   
독립영화인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영진위가 지원하던 개봉지원 제도다. <워낭소리>가 흥행 돌풍을 일으킨 비결도 초기에 영진위로부터 받았던 4000만원의 개봉 지원금이었다. 이 돈을 종자돈 삼아 마케팅을 할 수 있었다. 영진위가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제도’를 부활한다고 하지만 제도가 시행되기까지 ‘춘궁기’를 피할 수 없다. 대부분이 영진위가 좌파 단체라고 공격하는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원이기 때문에 지원금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독립영화 감독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독립영화 감독은 영화를 세 번 찍는다”라고. 영화를 만들기 전에 제작비용 마련하느라 영화를 한 번 찍고, 영화 만들면서 진짜 영화를 찍고, 영화 만들고 나서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서 영화를 한 번 더 찍는다고. 감독이면서 투자자로 프로듀서로 홍보담당자로, 최소한 1인10역은 해야 개봉할 수 있다고. 그 땀과 눈물의 성과로 개봉되어도 고작 1~2주 극장에 걸리고 내려온다고. 어렵게 개봉한 이런 영화들에 한번쯤은 눈길을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묶어서 소개한다.  


장애인의 성 문제를 다룬 '섹스 볼란티어'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