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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이 만난 사람

"음악하지 않는 순간에는 그냥 숨만 쉬고 싶다"라고 말했던 조용필, 35주년 콘서트 앞두고 했던 5년전 인터뷰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5. 24.

“숨쉬는 시간말고는 음악만 하고 싶다”

주> 이 인터뷰는 딱 5년전, 조용필이 가수 생활 35주년 기념 콘서트를 앞두고 했던 인터뷰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인터뷰였다. 그는 대중음악에 거의 무지한 나에게 두 시간 넘는 시간을 할애하며 모든 질문에 꼼꼼히 답해 주었다. 그는 질문을 듣고 짧게 답한 다음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드러냈다. '숨쉬는 시간 말고는 그냥 음악만 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좌석 5만석, 스태프 3천명, 무대 길이 1백10m, 그리고 카메라 70대. 올해로 가수 생활 35주년을 맞는 ‘국민 가수’ 조용필이 국내 무대에서 이제껏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초대형 공연을 벌인다. 조용필의 기념 콘서트 가 이달 말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딛고 다시 무대 위에 올라선 그의 35년 음악 인생을 서른다섯 가지 질문과 응답을 통해 알아 보았다.

 

왜 이렇게 큰 무대로 기념 콘서트를 여는가?

난 무대 욕심이 많은 편이다. 35주년 기념 무대이다 보니 규모가 제법 커졌다. 야외 무대는 무대 장치를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겠지만 공간을 음악으로 알차게 채워내고 싶다.

 

이번 35주년 기념 공연이 밴드 활동을 위해 가출했던 시점으로부터 35주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가출할 때 각오는 뭐였나?

각오? 그런 것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음악 하고 나서 공부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음악을 계속하게 되었다.

 

무명 밴드 시절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고생이라니? 금시초문이다. 고생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었으면 고생이었겠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즐거웠다. 굶다가 맞고 쫓겨나도 즐거웠다.

 

오래된 팬이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누구 한 명을 꼽을 수는 없다. 잠깐의 만남이지만 서로 오랜 시간을 봐 왔기 때문에 만나면 편안하다. 늘 한결같은 그들이 고맙다.

 

팬들이 방송국 수위들에게 맞는 것을 보고 강하게 항의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하도 심하게 다뤄서 여러 번 항의했다. ‘애들인데 뭘 알겠나. 좋아서 그런 것인데 이해해 달라. 당신도 자식이 있지 않나.’ 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공로상’을 싫어한다고 들었다. 왜인가?

나는 아직 현역이다.

 

본격적으로 음악 얘기를 해보자. 가장 애착이 가는 음반은 무엇인가? 평론가나 팬들은 주로 1,3,4,7,10,13,14집을 좋은 음반으로 꼽고 있다.

대강 비슷하다. 10집은 빼고 12집을 넣어 달라. 특히 13집과 14집을 좋아한다. 그런데 일반 대중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가수들은 막 히트할 때보다 인기가 떨어진 뒤에 만든 음반에 더 신경을 쓰는 법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어느 곡인가? <자존심> <나의 노래> <꿈> <킬리만자로의 표범> 정도라고 들었다.

<자존심>은 아니다. 나머지는 맞다. 만족하게 표현해내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의 일면을 드러낸 노래들이다. <그 겨울의 찻집>은 가사가 가장 맘에 드는 곡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덕분에 탄자니아 정부 초청으로 킬리만자로에 직접 가보았다고 들었다. 그런 곡을 다시 써볼 생각은 없나?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인상적이었다. 이번 앨범에서 아프리카 ‘잠보’ 리듬으로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잘 다듬어지지 않아 미뤘다. 언젠가는 한 곡 만들 예정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인가?

이 노래 때문에 유명해졌는데 왜 싫어하겠나?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부러 안 부른 적은 있다.

 

평소 무슨 음악을 주로 듣는가?

세계의 민요를 수집해서 듣는 편이다. 좋은 노래가 많다. 많이 소개하고 싶다. 좋은 노래가 있어도 모른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런 노래를 발굴해서 들려주는 것은 음악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어떤 장르의 가수라고 생각하는가? 자작곡은 록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작곡한 곡 중에서는 빠른 곡이 느린 곡보다 나은 편이다. 어렸을 때 빠른 록 음악을 주로 들어서인 것 같다. 느린 곡은 만드는 데 힘이 든다. 그렇다고 나를 록 가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노래는 내 나름으로 재해석해서 만든 곡들이다. 조용필의 음악은 그냥 조용필의 음악일 뿐이다.

 

자신의 음악에 만족하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에 대한 평가가 너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나는 나를 알아서 하는 말인데, 칭찬의 도가 지나쳤다.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느 부분인가?

항상 한계를 느낀다. ‘아, 여기까지가 내 한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정말 괴롭다. 음악은 끝이 없는 일이다. 악기만 가지고 얘기해 본다면, 피아노를 프로처럼 치고 싶다. 현악을 배우지 못한 것도 한이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놓고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어떻게 조화시켰나?

지구레코드에 속했던 시절, 2년에 한 번은 내 음악을 싣고 그 중간에 내는 음반은 레코드사에 맡겼다. 내키지 않았지만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레코드사가 맡았던 음반은 다소 음악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한창 인기가 있을 때 그때그때 유행에 맞춰 불렀던 노래만으로 평가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대중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인지 음악적 평가는 오히려 소홀한 것 같다.

섭섭한 게 사실이다. 인기가 있을 때는 그게 더 커 보이는 법이다. 음악은 나중이다. 비틀스도 한창 인기 있을 때는 곡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존 레논이 죽고 난 뒤에야 본격적인 음악적 분석 작업이 시작됐다.

 

조용필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조용필이 죽은 후에나 나올 것이라는 말인가?

아직 나는 현역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요즘 나에 대한 분석이나 논문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본 것이 많아 기쁘다. 바람이 있다면 내 음악을 분석할 때 시대를 같이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대중 예술은 그 시대의 대중이 가진 의식이나 정서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 시대의 노래는 바로 그 시대의 역사다.

 

19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는가?

1970년대, 무명 밴드 시기에 참 연습을 많이 했다. 그때의 노력이 1980년대를 지탱하는 토대가 되었던 것 같다. 1980년대는 전성기로 가장 바빴던 시기였다. 그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팝과 가요의 비율을 역전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데 만족한다. 1990년대는 내 음악이 방송에서 공연 무대로 옮아가는 시기였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무대를 시도했다. 2000년대는 무대 위로 음악이 완벽하게 옮아간 시기이다. 음악적으로도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다.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졌다. 다시 가벼운 얘기 좀 해보자. 콘서트에서 남의 노래를 별로 부르지 않는다고 들었다. 왜인가?

히트곡이 좀 많은 편이다. 내 노래도 다 못 부른다(웃음). 남의 노래를 불러줄 틈이 없다. 가끔 팝송이나 동요를 부르는 때는 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가수를 꼽는다면 누구를 꼽겠나?

특별히 꼽을 가수는 없다. 그때그때 충격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런 때면 언제 어디든지 간에 그 자리에서 분석 작업에 들어간다. 어느 장르의 음악이든 음악적 충격을 받으면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다른 가수의 스타 기질을 알아보는 것으로 유명한데….

대학가요제에서 신해철을 처음 봤다. 그때 무한궤도의 음악은 매우 신선했다. 잘 되기를 바랐는데 기획사가 붙고 활발하게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을 보고 기뻤다. 밤 무대에서 처음 본 신승훈도 좋은 가창력을 가지고 있어서 기대를 했는데 역시 성공했다.

 

서태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서태지는 카리스마가 남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스타 기질이 다분하다고 본다. 무대에 대한 욕심이나 음악에 대한 욕심을 보면 ‘아, 저러니까 서태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가수다.

 

립싱크 가수에 대한 생각은? 이수만씨는 립싱크도 하나의 장르라고 하던데….

(쓴웃음을 지으며) 거기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애들 들으라는 음악 아닌가.

 

사는 얘기 좀 듣고 싶다. 친한 연예인은 누군가?

연예인은 잘 모른다. 연예인은 TV에서나 보는 사람 아닌가(웃음). 직접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통 사람이 더 편하다. 신해철 정도가 가끔 만나는 후배다.

 

인터넷을 자주 한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사이트를 둘러보는지?

요새는 바빠서 못한다. 가끔씩 들어가는데 주로 언론사 사이트에 들어가서 신문을 보거나 방송국 사이트에 가서 놓친 사극을 본다. ‘안티 조용필’ 사이트도 생겼다던데, 들어가면 속상할까 봐 안 가봤다.

 

술과 담배를 즐긴다고 들었다. 요즘도 그런가?

술은 늘 하는 편이다. 우리 나이에는 술이 인사니까. 담배는 많이 줄인 편이다. 기자와 인터뷰할 때는 많이 피운다(웃음).

 

기자들과 악연이 많다고 들었다. 특히 첫 번째 결혼식은 연예 주간지 기자들의 성화 때문에 억지로 올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은 역사로 묻어두어야 한다. 지금 얘기하면 오히려 내가 초라해질 뿐이다.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냥 묻어 두자.

 

생활이 단조롭다고 들었다. 식당도 가는 곳들만 간다고 하던데.

곳들이 아니다. 한 곳밖에 없다. 오랜 단골집이 있었는데 이사 오면서 바꿨다. 식당과 집과 스튜디오를 돌면서 다람쥐처럼 살고 있다. 세상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게 좋다. 그냥 내가 할 일만 하고 정직하게 살고 싶다.

 

스타라서 화려한 삶을 살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사나?

나는 인생을 복잡하게 살고 싶지 않다. 음악만으로도 내 머리 속은 충분히 복잡하다. 생활은 최대한 단순했으면 한다. 난 핸드폰도 평상시에는 꺼놓고 다니다가 내가 필요할 때만 켜서 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세계를 지켜낼 수가 없다. 음악 하지 않는 순간에는 숨만 쉬며 살고 싶다.

 

그동안 정치권의 유혹도 많지 않았나?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다. 그럼 노래하는 것으로 끝나야지. 정치를 안다면 모를까, 모르는 상황에서 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에 자가용을 벤츠에서 에쿠우스로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

벤츠를 오래 탔는데, 이제 우리 나라 차를 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꿨다. 쉰이 넘어서 남의 나라 차를 타는 게 왠지 우스운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 얘기로 마무리하자. 앞으로 일본 공연은 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들었다. 왜인가?

국내에서만도 연간 30회 정도의 콘서트를 소화하고 있다. 일본 무대에까지 서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안 생긴다. 무대에 선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비즈니스일 뿐이다. 이제 비즈니스로 음악 할 나이는 지났다.

 

뮤지컬에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다. 본인의 음악으로 뮤지컬을 만들 계획은 없는가?

윤호진씨와 함께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다. 금방 되는 일은 아니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만들고 싶다. 스토리가 완성되면 거기에 따라서 후속 작업을 진행할 생각이다.

 

곧 발매될 18집 앨범에는 어떤 노래를 실을 예정인가?

내 음악은 항상 다양했다. 이번 앨범의 노래들도 다양하다. 내가 만든 곡도 있고 다른 사람 곡을 받은 것도 있다. 기념비적인 앨범은 아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했다. 대중성은 조금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음악 활동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2년에 한 번씩은 새 앨범을 낼 계획이다. 원칙은 내 노래를 다시 리메이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음악은 내 삶 자체이다. 음악 하나에 인생을 걸고 살아왔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죽는 날까지 음악을 계속 하고 싶다.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이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