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간줄 알았다. 방문자는 줄었고, 안티는 늘었다. 답이 없어보였다.
촛불집회 전의 오마이뉴스 상황이다.
노무현이 욕을 먹을 때
386이 욕을 먹을 때
오마이뉴스도 욕을 먹었다.
그러나 촛불집회 후, 상황은 바뀌었다.
경향신문, 다음 아고라와 함께 오마이뉴스는 최고 수혜 그룹으로 꼽힌다.
오마이뉴스 중계차 앞을 지나면서 10대 청소년들이 ‘오마이짱’을 외치고 다닌다.
오마이뉴스는 확실히 살아났다.
80만~1백만 정도였던 1일 페이지뷰가 500만 이상으로 늘었다.
오마이TV의 자발적 시청료는 1억5천만원에 육박했다.
저녁시간에 뚝 떨어지던 방문자 숫자도 낮시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2002년 대선의 노풍
2004년 탄핵 때를 넘어서는
제3의 전성기를 오마이뉴스는 맞이했다.
질적인 부분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오연호 대표는 “10대 20대 매니아가 생긴 것과, 사이트에 신명이 우러난 것이 최대 성과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박 비결에 대해 “조중동 등 주류 언론, 방송사, 포털이 제 기능을 못한 사이 오마이뉴스가 ‘날 것’ 그대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라고 분석했다.
오 대표는 기분을 냈다.
자발적 시청료로 모금된 돈을 털어 중계차를 대여했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현장 중계를 하기 위해서였다.
오 대표는 오마이뉴스의 미래도 낙관했다.
한반도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교육 자율화 등
앞으로도 다양한 논쟁이 남아있고, 오마이뉴스가 이런 문제에 대한 공론의 장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중계차 맞은편에는 조선일보사가 위치하고 있다.
그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오마이뉴스에 대한 태도와 정 반대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촛불집회가 끝난 후, 미디어 지형의 변화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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