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닷컴>은 다양한 ‘1인 미디어’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분들과 함께 ‘취재’를 하기도 했고
널리 알려져야 할 글이 있으면 ‘기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촛불주 사기 운동’과 같은 캠페인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독설닷컴>은 '시사 블로그'로서 다양한 실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그 실험을 도와줄 ‘인턴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여러 분이 응모해 주셨는데,
그 중 서류심사를 거쳐 세 분을 선발했습니다.
너무 출중하신 분들이라 ‘인턴’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이분들 중에서 <독설닷컴>과 함께 할 한 분을
독자분들과 함께 선발하려고 합니다.
‘집단지성’의 과정을 거쳐 가장 적합하신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세 분의 자기소개서를 올립니다.
보시고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투표를 하셔도 좋고,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서 채점을 하셔도 좋습니다.
(평소에 이 분들을 아시는 분이시라면,
어떤 분인지 설명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호 1번> 싹싹하고 cool 한 음악인
저는 싹싹하고 사교성이 좋은 성격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관현악 동아리에서 바이올린 파트를 맡았고 부회장으로 활동 하였습니다. 전공자와 비전공자 구분 없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었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간혹 선배(비전공자)보다 후배(전공자)가 더 실력이 좋은 경우엔 후배 입장에서 선배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무시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피아노)전공자임에도 비전공분야의 악기(바이올린)를 맡았기 때문에 중간 입장에서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싹싹한 성격으로 동기들이 모두 어려워하는 선배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여 졸업한 선배들과의 연락도 제가 담당하였습니다. 덕분에 조직에서의 팀워크 조절과 서로간의 지켜야 할 예절 등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매년 직접 기획한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1학년이었지만 선배들은 저에게 스폰서를 받는 중요한 일을 맡겨 주었고 그 결과 약 10개의 상점에서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 중 학교 앞 음식점 아저씨께서 “너희학교 아이들은 우리 집 잘 안와! 근데 내가 무슨 돈을 주냐?” 라고 하시면서 끝까지 후원을 거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음식점을 자주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나오고 싶었지만 연주회를 하기 위한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한 집이라도 후원을 더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5일 동안 가서 저녁을 먹고 아저씨께 제가 그 음식점을 찾지 않는 이유를 세세히 알려드리고 (가장 큰 이유는 청결이었습니다.) 분명히 청결문제가 개선된다면 친구들을 많이 데려오겠다는 합의 하에 후원 10만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어린 학생이 기분 상하지 않게 고칠 점을 잘 알려줘서 고마웠다고 하셨고 끈기가 있어 보인다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연주회가 끝난 후에도 식당 주인아저씨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일명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직접 연주회를 기획하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관과 연주 팸플릿을 책임지기도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팸플릿의 디자인을 기획하고 들어갈 문구를 생각하며 밤을 새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직접 발로 뛰며 조금 더 싸고 질 좋은 인쇄소를 찾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이제는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생각지 못했던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연주회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장소 섭외문제였습니다. 당시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은 전문 연주자들도 아니고 게다가 미성년자인 저희에게 대관을 허락해줄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배 한 명과 함께 일주일에 세 번을 찾아가서 그 동안의 동아리 연주경력을 증명할 팸플릿과 포스터를 보여드리고 학교 음악선생님의 협조문(?)을 받아서 보여드렸습니다. 또한 수상경력을 증명하기 위해 음악실에 고이 모셔두었던 트로피와 상장도 보여드렸습니다. 우리 동아리는 앞으로 꾸준한 연주활동을 할 것이고 또 우리 동아리가 연주를 함으로써 우리학교 학생들은 예술회관을 더욱 친숙하게 여겨 앞으로 관람을 하러 자주 올지도 모른다고 차분하게 설득하자 심사숙고 끝에 대관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때는 정말 뿌듯했습니다. ‘회사원들이 계약을 성사하면 이런 기분 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붙임성이 좋고 끈기가 있는 것이 저의 장점이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습니다. 너무 솔직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싫은 것과 좋은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중학교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표현이 분명하고 애매한 것을 싫어한 탓에 친구들에게 시원시원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과 대학 입학 후 각종 서비스업에서의 아르바이트, 피아노 개인레슨 등의 경험을 통해서 저의 단점을 분명히 깨닫고 고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직 내에서는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웃으며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친구들이 옷을 살 때에도 객관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고 말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안 예쁜 것도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취업용(?) 자기소개서의 일부분입니다.
작년 12월경부터 슬그머니 기자의 꿈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하나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졸업생주제에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불안한 마음에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아가씨입니다.
최근 음대 졸업생이라는 딱지를 앞세워서 음악계열 잡지사와 신문사에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최종면접에서 계속 탈락하였습니다. 특히 ‘왜 기자가 되려고 하느냐’ ‘기자가 필요한 능력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에 대한 질문에 시원스레 답변을 하지 못한 것에 무척 아쉬움이 남고 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독설>을 거침없이 논리적으로 뱉으시는 고재열 기자님을 도우며 작은 일이라도 한다면 저 스스로 ‘기자일’에 대한 근본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기대만으로 그치지 않게 제가 잘 해야겠지요)
요즘 pd 수첩에 대해서도 조선일보와 시사인을 보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생각하며 머리가 복잡했는데 <독설닷컴>에 올라온 글들을 보며 확실해졌습니다. 기성 언론이 하지 않는 부분들을 시원스레 긁어주는 <독설닷컴>의 작은 일이라도 도와 진실을 밝히는 것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기호 2번> 매스미디어의 매력! 블로그의 매력! 시소는 어디로 기울까
고재열 기자와 함께한 난상토론(가상 기사)
해가 저물 무렵임에도 가마솥더위는 누그러질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더위의 피난처를 고르던 중 고재열 기자는 “미국산 쇠고기나 먹어 볼까?”라고 농을 건넨다. 난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농담인 것을 곧장 알아차리지 못한 덕이다. 결국 우리의 발길이 멈춘 곳은 연기가 자욱거리는 고깃집이다. 안주는‘매체 환경의 변화’이고 술잔엔‘1인 미디어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
최재혁: 작년까지만 해도 매체 환경의 변화에 대한 큰 고민이 없었다. 예전부터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기자직에 도전에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확고히 하고 보니 모든 언론사들이 매체 환경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고재열: 그렇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통로의 확대에서 시작한 매체 환경의 변화는 블로거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의 영향력 확산을 통해 기존 언론사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고재열의 독설닷컴>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언론매체로서의 <시사IN>은 제약이 있다. 주간지라는 시간적 제약과 한정 된 지면이라는 공간적 제약이 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전달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 블로깅을 시작했다. 1인 미디어에 대한 가능성을 시험해 볼 심산도 있었다. 그렇다고 주간지로서의 <시사IN>의 매력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않길 바란다.
최재혁: 6월 들어서 <고재열의 독설닷컴>은 제가 자주 찾게 되는 매체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름 있는 <시사IN> 기자의 블로그란 점이 흥미를 끌었다. 이후 1인 미디어에서 생산 되는 다양한 포스트들은 나를 단골로 만들었다. PD수첩 관련 보도는 어는 언론사보다 빠르고, 많은 관련 정보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YTN과 KBS에 관한 포스트들도 가장 따끈따끈 했고, 또한 재미있었다. 고재열 기자는 지난 5월부터 시작한 1인 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고재열:‘계급장 떼고 누리꾼과 맞장’을 뜬다는 느낌이었다. 기존 체계에 속하지 않은 채 쓰여지는 글들을 보면서 갑옷이 벗겨진 채 전장에 내몰린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수 많은 누리꾼들이 내 글을 읽기 위해 <독설닷컴>을 방문하는 놀라운 경험도 했다. 나만이 편집자라는 점이 기사의 생산성을 높이고 누리꾼들이 주는 ‘댓글 거름’은 글을 더욱 비옥하게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정말이지 온몸으로 부딪친 지난 3개월은 9년간의 기자생활에서 중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순간이었다.
최재혁: 저도 운영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이상과 신념>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블로깅을 시작한 이유는 블로그가 가진 다양한 기능 중 하나인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활용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저 역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진땀 흘리는 민주당 송영길 의원 “왜 이제 나온겨”’라는 기사가 <다음>에서 블로거 특종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 한 개의 포스트로 이전까지 수백 명의 방문자만을 기록하던 블로그에 단숨에 15만명 이상의 누리꾼들이 방문했다. 1인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개인적 경험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 일이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바로 포스트 유통망에 대한 고민이다. 타인에게 알리고 소통하기 위한 목적의 포스트는 독자를 얻기 위한 유통망이 필요하다. 그리고 독자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독자들이 흘러 드는 주요 유통망이 <다음>의 블로거 뉴스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란 것이다. 내 블로그 <이상과 신념>의 20만명의 방문자 중 70% 이상이 미디어 다음을 통해 방문 했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의 다음의 발언은 1인 미디어에 대한 고민을 가중시킨다.
“개인 블로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충분한 독자를 확보하기는 힘들다. 한국의 알파 블로거들은 대부분 포탈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 등을 통해 페이지뷰를 얻는다. 포털 종속형 파워블로그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포탈은 아까도 말했지만 상업적 목적으로 출발한 곳이다. 포탈은 블로거들이 자신들의 상업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별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순간 어떤 과감한 변경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촛불과 미디어리더십>
고재열: 물론 포스트 유통망에 대한 고민은 저 역시 가지고 있다. 그런 고민의 교집합이 최재혁을 <독설닷컴>의 인턴기자로 선발한 이유 중 하나이다. 저도 상업회사가 언제까지나 순수한 어린아이로 남아 있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자체의 영리적 목적으로 지금과 다른 변화가 닥쳐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1인 미디어의 가능성이 밝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욕망이다.
자본과 권력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과거사에 불과할 줄 알았던 권력에 의한 억압이 현재 가열차게 일어나고 있으니 이 역시 중요한 명제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 1인 미디어가 권력과 소비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인터넷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1인 미디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투명한 창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불로그는 운영자의 주관적인 잣대에 의해 관리되지만 독자들은 채널을 다양화 함으로써 나름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표현과 자유에 대한 욕망은 변화가 닥쳐 왔을 때 단지 굴복하게만 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억압적 조치에 맞서 촛불의 저항이 타오르듯이 말이다. 같은 글에서 오연호 대표가 지적했듯이 기존의 플랫폼을“정권과 자본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면서 그것을 활용하는 일”을 해나가야 한다.
또한 앞으로 위키피디아처럼 오픈소스적이고 비영리적인 영향력 있는 광장을 만들어 나가는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유통망이란 거미줄에서 블로거들이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최재혁: 정부의 인터넷 통제 조치가 대형 포탈과 누리꾼들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니 유통망의 확대와 보존은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언론의 자유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정부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이 1인 미디어의 가능성을 위해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점이다.
고재열: 동의한다. 앞으로도 정부의 언론 탄압과 관련된 보도들을 신속히, 튼실하게 해나가겠다. 또한 다양한 1인 미디어에 대한 실험을 해나갈 것이다. 체계적 관리를 위해 최재혁 인턴기자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최재혁: 1인 미디어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저에게도 즐거운 일이다. 블로그의 매력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이지만 이번 여름방학에 <시사IN> 인턴 기자 모집의 최종 면접에서 탈락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 것 같다. <독설닷컴>에서 1인 미디어의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동참할 수 있으니 말이다. 훗날 귀중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주) <기호2번> 관련 글을 본인 요청에 따라 교체했습니다.
<기호 3번> '집념의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
"사물의 본질은 중간 과정 이후에 드러난다"라고 했던 들뢰즈를 좋아합니다. 뒤처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달 배낭여행을 하고, 휴학을 했던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유예된 삶이, 또래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어서가 아니라 여유롭게 살게 해주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루종일 끼적인 종이뭉치를 한 번에 모아 정리하는 건 하루를 마치는 기도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본 영화 또 보고, 본 책 또 읽고, 아무리 멀어도 갔었던 여행지는 또 가보는, 귀찮은 일이 좋습니다.
8월 26일에 스물일곱이 됩니다. 학교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중동으로 배낭여행을 오래 다녀온 덕분에 다녀와서 외교통상부 걸프지역과에서 약 8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1년 정도 중고등부 국어강사를 했었습니다. 교육대학원 준비를 하다가, 기자로 사는 삶으로 선회했습니다. 4월까지 외교부에서 근무하다가 준비한터라 미진한 부분이 많습니다. 열심히, 이것저것 해보고, 생각해보면서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글이 아닌, '쌩얼' 고재열기자를 뵌 건, '시사in 창간식이'었습니다. '옷깃만 스친' 수많은 인연들 가운데 저도 있었습니다. 사인을 받으려고 다이어리를 들고 주위를 맴돌다가 결국 용기를 내진 못했습니다. 독설닷컴과 시사in에 실린 날선(강도는 독설닷컴이 '훨' 셉니다만)글이 좋습니다. 좋아하다보면 닮는다고들 하지요. '시사저널'사태와 같은 상황이 온다면, 기자로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조금 두렵긴합니다. 그건 예술의 영원성을 위해 온몸을 던져버린 로댕, 릴케, 김수영, 김춘수 등의 집념만큼 무섭기때문입니다. 그 집념의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을 뵙고, 닮고 싶다는 생각을 죽 했습니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보렵니다.
독설닷컴에서 필요로하는 일이 아마도 기사작성하는데 필요한 각종 data follow-up이나 translation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외교부 인턴시절에는 이것에 보태어 각종 의전행사와 비자안내발급(diplomat)업무, 회의록초안작성을 했습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턴이었지만 성실함을 인정받아 꽤 단단한 인맥을 구축했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의전업무나 각종 정보 수집에 영어를 사용할 일이 많아서 원어민수준은 아니지만 자신감을 가질 수준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간 과정 이후에 드러날 제 본질이 이곳에서 더욱 벼려지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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