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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록은 길 위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윤도현 인터뷰)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5. 28.




윤도현씨를 인터뷰할 예정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자 한 대중음악 평론가가 문자를 보내왔다. 윤도현과 YB(윤도현 밴드)를 응원한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의외였다. 그 평론가는 누구보다도 매섭게 윤도현을 비난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방송사 퇴출 이후 윤도현의 진정성을 확인했다며 예전에 오해했던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대표적인 ‘친노 연예인’으로 찍혔던 그는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하차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방송사는 그를 찾지 않았고 기업 협찬은 끊겼고 음반 판매는 부진했고 공연 요청도 줄었다. 그는 지하 연습실에서 노래하며 슬픔과 분노를 삭였고 가끔씩 오른 무대에서 응축된 에너지를 폭발했다. 특히 서울·광주·대구·대전·창원·부산에서 열린 <노무현 추모 콘서트-파워 투 더 피플>은 그의 음악적 성취가 집대성된 공연이었다.

    
요즘 윤도현은 무대에 오르면 우스개로 스스로를 ‘노래하는 대인배’라고 소개한다. 시대의 아픔을 지식인처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공감하는 감성인인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시대를 몸으로 겪는 그의 음악도 달라졌다.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고 파워풀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YB에 대해 ‘예전엔 인기가 국민 밴드였는데, 이제는 실력이 국민 밴드다’라고 말한다. 사회적 사춘기를 겪고 이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윤도현을 만나보았다.



추모 콘서트 분위기는 어땠나?
깜짝 놀랐다. 정말 많이들 왔다. 1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그래서 많이 안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제 예전처럼 인기 가수도 아니고, 같이 나오는 가수도 우리처럼 조용히 음악만 하는 이들인데…. 그런데 정말 많이 왔다. 

콘서트에서 무엇을 느꼈나?
사람들은 감상에 젖어들고 싶어했다. 무언가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1년 전 추모 콘서트에 참여했을 때 느낀 것은 분노의 감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위로의 감정이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어깨를 걸고 위로하고 또 위로받고 싶어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에는 의견을 달리했던 부분도 있지 않았나?
존경하는 부모님과도 사랑하는 친구와도 의견이 다를 때가 있지 않나? 의견이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끝없이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라크 파병에도 반대했다. 특히 그런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해서는 더 반대했다.

그런 차이가 있었는데도 지금 추모 콘서트에 참가하는 이유는?
그냥 도와주고 싶다. 친구 중에 그런 친구 있지 않나? 그냥 좋아서 뭐 하나라도 주고 싶은 친구, 그런 사람이다.  

콘서트를 하면서 어떤 것을 느꼈나? 
사람들이 다들 먹고살기 바쁜데도 그의 죽음을 통해서 화합하고 서로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그런 면에서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특히 대구에서 반응이 좋았다. 광주에서 느껴야 할 것을 대구에서 느꼈다. 정말 절절했다. 관객이 무지 많이 왔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나?
대학생들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때 대학 축제에 가면 ‘얘들이 대학생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슨 말을 꺼낸 내가 민망할 정도로 사회에 무관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일단 많이 모인다. 우리가 아이돌도 아닌데. 그리고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그리고 격하게 반응한다. 열정적이다. 예전에는 ‘사랑2’나 ‘너를 보내고’와 같은 록발라드 곡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본격 록 곡을 그대로 빨아들인다. 예전에는 40분 정도만 불렀는데 요즘은 한 시간 넘게 불러준다.

요즘은 무대에서 주로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신영복 교수님이 ‘암울한 시대에 암울한 노래를 위험하게 부른다’고 평했던 ‘88만원의 Losing Game’을 먼저 들려준다.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여야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기 위해 ‘깃발’을 부른다. 방송 하차 이후 자유로워진 나와 우리 밴드처럼 모두가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나는 나비’로 마무리한다.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다. 방송에서 하차한 후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을 텐데. 사실 나는 괜찮았다.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을 내가 걱정했다. 록은 항상 길 위에 있을 때 행복하다.

탄압받은 이유가 ‘정치적인 연예인’이라는 것이었다.
나를 정치적인 연예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정치적일 이유가 없다. 정치적이면 뭐할 것인가? 내가 정치할 것도 아닌데. 사회참여 활동을 하는 연예인이 워낙 없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사회에 무심하지 않은 연예인일 뿐이다.

    
사회참여 연예인이란 무슨 의미인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그냥 편하게 내 생각을 얘기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풍속화’를 보면 그 시대의 생활상이 드러나지 않나? 우리 음악도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의 풍속화다. 뮤지션 중에는 시대와 무관하게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가수도 있는데, 우리는 철저하게 ‘지금, 여기,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밴드다.

사회참여 활동에 부담은 없었나?
연예인의 사회참여 활동은 책임감이 따르고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고 살 수 있어야, 자신의 의지와 소신과 철학을 드러낼 수 있어야 생산적인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 창작활동이라는 것은 자신 속에 감춰진 것을 끄집어내는 과정이다. ‘돌아이’도 있을 수 있고 우주에서 온 것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해해줘야 한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이득을 꾀한 것은 없었나?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낼름 받아먹을 수 있겠나? 사람들 말 참 쉽게 한다. 나는 그렇게 노래하며 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비겁하게 붙어서 얻어먹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노래를 못한다. 내가 켕기면 무대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제대로 노래를 할 수 없다.

피해를 입은 것은 없었나?
나중에 부담이 되기는 한다. 미국 진출을 꾀했는데, 우리의 활동 경력은 미선이·효순이 추모집회에 나가고 소파협정(한·미 행정협정) 개정하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래도 당당히 나갔고, ‘너희들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나는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고 노래했다.

방송에 나오지 못할 때 유배당한 느낌이 들지 않았나?
전혀 들지 않았다. 사실 뭔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았다. 그냥 잘됐다, 이참에 음악에 제대로 미쳐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를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그런다. 지금이 진짜 전성기라고. 자기최면이 아니라 진짜 그렇다. 음악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어서 좋다. 멤버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많아졌고 연습량도 늘었다. 밴드로서 단단해진 느낌이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지 않았나?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녹화하던 화요일만 되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가끔 내가 저 프로그램을 했던가 하는 몽롱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차한 직후에는 대학축제 섭외 요청도 뚝 끊겼다. 너무 안 불러서 소속사에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섭외 들어온 것 없는지. 그때 뭔가 준비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을 극복할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간이 음악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
음악인으로서의 삶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생각하는 것도 그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제약 없이 생각할 수 있으니까. 방송할 때는 여유가 없었다. 계속 똑같은 것을 해야 하니까. 지금은 넓은 세상에 나온 느낌이다. 몸은 지하 연습실에 있지만 마음은 온 우주와 소통하는 기분이다. 예술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한 마리 돌고래가 된 기분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특별한 일정 없나?
이번 월드컵을 위해서는 특별히 응원가를 만들지 않았다. 기업에서 프로모션 제의가 왔지만 응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난 월드컵을 통해 충분히 받았다. 이제 우리가 줄 차례라고 생각한다.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노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