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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

IT 기술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9. 19.

미술계 종사자... 
디자인계 종사자...
IT업계 종사자...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을 원하는 모든 분들이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INDAF)에 가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예술의 어원은 원래 기술에서 왔다. 그래서인지 예술의 발달은 기술의 발달과 관계가 깊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예술을 이끈다. 새로운 예술은 새로운 기술에 빚을 진다. 미디어를 소재나 재료로 하거나, 미디어에 대한 성찰을 담은 미디어 아트의 경우 예술과 기술의 관계는 더욱 밀접하다. 


예술과 기술이 어떻게 만나며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송도국제도시 투모로우시티에서 열리는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INDAF 2010).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요즘 각광받는 TGIF(트위터·구글·아이폰·페이스북)를 활용한 작품을 두루 볼 수 있다. 


INDAF(인다프)는 디지털 신기술 박람회장을 방불케 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신기술 박람회장을 앞서 있었다. 최소한 한국 디지털 기술이 총동원된 상하이 엑스포 한국기업관보다 나았다. 인근 일본기업관과 비교했을 때 한국기업관은 기술력 차이가 아니라 기술 활용 능력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중국 작가 우쥬에후이의 은 USB로 마이크·카메라·스피커를 연결해, 디지털 기기를 통해 신체가 확장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미디어 아트 개척자 로이 애스콧부터 
국내 신세대 미디어아티스트까지  


상하이 엑스포 한국기업관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미래 사회의 콘셉트(녹색 성장)와 이미지만을 보여주었지만, 일본기업관은 기술을 이용한 예술성 있는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 결과 감동을 주고 스토리가 있는 기술을 선보여 감성 코드를 자극했다. 기술과 예술과 스토리텔링이 연결되지 못한 한국기업관의 아쉬움을 INDAF에서 달랠 수 있었다. 


국내 미디어 아트의 성지로 자리 잡은 아트센터나비의 노소영 관장이 INDAF의 총감독을 맡았다. 그녀는 모바일 기술이 '무한 미학'에 기여하는 바를 이야기하면서 선불교의 진수인 당나라 혜충국사의 '무봉탑(無縫塔·꿰맨 흔적이 없는 돌덩어리 1개로 만든 탑)' 개념을 끌어들였다. '모든 이들을 나르는 그림자 없는 나무 아래 배'와 같은 우주의 다양성·혼성성·상호 연관성을 디지털 시대 미디어 아트의 특성으로 규정했다. 


큐레이터 류병학씨는 디지털 아트의 선두주자로 떠오르는 모바일 아트 작품을 기획하면서 원로 미디어 아티스트 로이 애스콧을 불러들였다. 로이 애스콧은 '관객의 참여'와 '집단 지성에 의한 창작' 개념을 작품 활동에 도입한 작가다. 지금이야 일반화한 개념이지만 그가 활동하던 1960년대에는 생소한 담론이었다.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주로 스마트폰 증강 현실 기능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용백 작가의 < 미지의 조각 > , 김준 작가의 < 때밀이:푸른 물고기 > , 이이남 작가의 < 이사야서 53장 > (오른쪽 부터). 


롤랑 바르트가 말한 '분산된 저자' 개념을 그는 작품 제작 과정을 통해 보여주었다. 미국 11개 주에서 작가들로부터 동시에 동화 캐릭터 이미지를 팩스로 받아서 하나의 작품( < 텍스트의 주름 > )을 만들기도 했다. 결과만큼 과정을 중시하는 것에 대해 그는 "세상이 과정인데 예술이 과정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하곤 했다. 반세기 전 팩스로 소통했던 그는 요즘 페이스북으로 소통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후배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 텍스트의 주름 > 에 대한 오마주로 < 텍스트의 즐거움 > 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LPDT2 프로젝트'라 명명한 이 작업은 휴대전화 SMS 문자(010-2026-4654)나 트위터 계정(twitter.com/LPDT2)에 영문으로 글을 보내면 이것이 '세컨드 라이프'라는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스마트폰 활용한 증강현실(AR) 작품 다양해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증강 현실(AR· Augmented Reality)을 활용한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증강 현실이란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것은 현실이다. 그 현실의 대상에 스마트폰을 들이대면 가상의 세계가 보인다. 현실에 가상을 증강한 것으로 요즘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보다 각광받는 기술이다. 


이용백 작가의 < 미지의 조각 > 이라는 작품은 전시장에서는 빈 받침대밖에 볼 수 없다. 말 그대로 '미지의 조각'이다. 그런데 받침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화면에 조각 작품이 나타난다. 단지 조각 작품이 보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관람자는 간단한 조작으로 조각 작품 속 캐릭터가 서로 싸우게도 할 수 있고 키스하게 할 수도 있다. 





영국 작가 크리스 오슈아의 < 위로부터의 손 > (왼쪽)은 스크린에 투사된 관람객을 큰 손이 집어 올린다. 김정운 작가와 일본 작가 시라토이 케이의 은 트위터로 사람들에게 정보를 받아 스마트폰 화면에 뜨게 만들었다. 


'여인의 알몸에 있는 때를 벗겨내면 물속을 노니는 푸른 물고기가 있다'는 구절을 내건 김준 작가의 < 때밀이:푸른 물고기 > 는 스마트폰 안에 나타나는 가상의 아바타에 문신을 새겨넣을 수 있는 작품이다. 김태연 작가의 < 하이퍼 피쉬 > 는 스크린에 투사되는 연못에 스마트폰을 이용해 물고기를 넣을 수도 잡을 수도 있게 만든 작품이다. 


김준 작가가 회화를 전공한 미술가 출신인 데 비해, 김태연 작가는 네이버 지식IN을 개발한 프로그래머 출신이다. 둘의 차이는 미디어 아티스트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된 이미지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작품과 관련된 사운드가 들리는 < 사운드 뷰 > 를 제작한 작가 젝시스는 계명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가수다. 


< 송도의 9경 > 은 모바일 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총동원한 국내 작가들의 공동 작품이다. 이근세(거품기) 안시형(디지털 토템) 변시재(서커스) 유쥬쥬(알량한 천지창조) 이주형(Scene) 김병호(침묵의 안개) 송명진(Daydream) 배종헌(장면#8) 작가의 작품은 증강 현실을 활용한 작품인데, 여기에서 스마트폰으로 보낸 정보는 뉴턴그룹이 제작한 < 새로운 전환 > 이라는 작품으로 전성되어 다양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어낸다. 


'소셜 게임' 응용한 작품도 선보여 


미디어 아트가 활성화된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더욱 진화한 설치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체험을 선사한다. 독일 울프 랑하인리히의 < 대지 > 는 3D 안경을 쓰고 보면 몽환적인 세계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오스트리아 쿠르트 헨트쉴래거의 작품 < zee > 의 동굴로 들어가면 관람객은 짙은 연기에 길을 잃었다가 강렬한 빛을 받고 마치 사이버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전 세계인이 함께 만드는 기름 제거 로봇을 형상화한 민세희 작가와 프랑스 작가 세자르 하라다의 < 열린 항해-프로테이 > (오른쪽). 영국 작가 우스만 하크의 < 내츄럴 퓨즈 > (맨 오른쪽)는 소셜 에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투모로우시티 중앙 광장에는 영국 작가 크리스 오슈아의 < 위로부터의 손 > 스크린이 입간판처럼 설치되어 있다. 관객들은 광장에 서면 대형 스크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곧 커다란 손이 스크린에 나타나서 자신을 집어 올려서 비벼 없애버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인간 신체의 확장에 주목한 미디어 아티스트도 많다. 중국 작가 우쥬에후이는 신체기관을 USB를 활용해 디지털로 전환하고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헬멧에 연결된 USB 케이블을 통해 인공눈·인공 마이크를 연결해 시각과 청각을 재조정한다. 


자유아트테크놀로지(FAT) 팀에서 개발한 < 아이라이터 > 는 루게릭병을 앓는 사람들이 눈동자만으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 발명 프로젝트인데,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환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미국의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 스튜디오에서 만든 < 범죄에 맞는 처벌이 내려지는가 > 프로젝트는 수감자들을 위한 맞춤형 공공감옥에 대한 것이다. '범죄의 수위가 높을수록 더 오래, 더 열악한 환경에서 수감되는데, 과연 그것만이 진리인가'라고 묻는 이들은 범죄자의 취향과 그가 저지른 범죄의 성격에 맞게 감옥이 임의로 설계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국의 민세희 작가와 프랑스 작가 세자르 하라다가 함께 제작한 < 열린 항해-프로테이 > 는 글로벌한 공공 프로젝트다.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에서 충격을 받은 이들은 이 사고에서 오염원을 제거할 수 있는 로보틱 시스템을 개발했다. 오픈 소스 방식을 통해 전 세계 개발자들이 이 시스템을 진화시켜 다양한 해양오염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복안이다. 


구글 검색 결과 수치를 반영한 작품도 


위룰이나 포스퀘어와 같은 '소셜 게임'을 응용한 작품도 많았다. 하태석 작가의 작품 < 미분생활 적분도시: > 는 관람객이 개인 프로필을 입력하면 적절한 집을 설계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집들에 적합한 녹지와 공공시설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하나의 가상도시가 만들어진다. 하태석 작가는 2006년 한국신인건축가상을 수상한 실제 건축가다. 이번 행사에는 하 작가 말고도 건축가 여러 명이 미디어 아트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 스튜디오가 만든 설치 작품 < 범죄에 맞는 체벌이 내려지는가 > . 



영국 우스먼 하크의 < 네추럴 퓨즈 > 는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그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화분'을 분양하고 있다. 전기가 발생하는 이 화분을 컴퓨터에 연결하면 전 세계 망에 연결되는데, 과도하게 전기를 사용하면 다른 곳에 있는 화분이 죽게 된다. 양수인 작가가 미국의 데이비드 벤저민과 함께 제작한 < 라이프 사이클 > 은 구글 검색을 연동시켰다. 구글에서 행해지는 실시간 검색을 통해 친환경적인 단어가 얼마나 검색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반응하도록 설계했다. 


관람객은 이런 미디어 아트 작업을 통해 상반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는 뉴미디어가 펼쳐주는 장밋빛 미래를 미리 경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뉴미디어를 통해 얼마나 쉽게 진실이 조작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이다. 이 상반된 경험은 뉴미디어에 대한 태도를 모호하게 만든다. 지지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작가들은 그 답을 '집단 지성'에서 찾는다. 다중의 참여에 의한 변화가 결국은 우리를 '감시 사회'가 아닌 '네트워크 사회'로 이끈다는 것이다. 


INDAF의 다양한 미디어 아트 작품과 프로젝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예술과 기술이 만났을 때, 즉 예술가가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되었을 때 어떤 신세계가 펼쳐지는지에 대한 청사진이다. 이 청사진에서 한국 작가들의 역량은 그리 돋보이지 않는다.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작가 출신인 하태석·양수인·채병일 등이 활약하고 있지만 미디어 아트에 대한 인큐베이팅이 활성화되지 않아 저변이 넓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일단 전시에 활용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개방형이 아니다. 즉 일반인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으로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에 있는 스마트폰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은 다음 전시에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아이패드 등 태블릿 PC 시대로 진입했는데, 터치스크린이 거의 활용되지 않은 점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