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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꿈 꾸는 만화들

드라마 '대물' 원작자 박인권 작가 인터뷰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0. 25.

드라마 <쩐의 전쟁>의 원작자이기도 한 <대물>의 원작자 박인권 작가(사진)는 스토리텔링의 귀재이다. 집요한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작품을 그리는 그는 특히 선 굵은 만화를 많이 그렸다. 4부까지 출간된 만화 <대물>의 경우 지금 방영되는 2부 외에도 3부가 별도의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고, 1부와 4부는 영화화할 예정이다. 박 작가가 <대물>의 관전 포인트 몇 가지를 꼽아주었다. 




- 원작과 비교하면 어떤가? 설정이 많이 바뀌었는데.

만화는 만화의 묘미가 있고, 드라마는 드라마의 묘미가 있다. 각색의 묘를 즐겨라. 제작사에서 도와달라는 요청도 있었지만 참여가 참견이 될까봐 참았다. 많은 설정이 달라지고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만화에서 말하려 했던 ‘민초 대통령’이라는 근간은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작품 구상할 때 조언해달라는 말도 들었지만 관여하지 않았다. '참여'가 아니라 '참견'이 될 것 같아서다. 


- 우리나라에서 여성대통령을 그린 최초의 만화였다. '최초'에 많이 집착한다고 들었다. 

'최초'가 바로 '최고'니까. 우리나라에 여자대통령만 있었다면 나는 남자대통령을 그렸을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를 내가 또 할 이유는 없지 않나. 그건 아류 밖에 되지 않는다. 창작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대통령 이야기라니까, 연재하던 신문사에서 조금 부담스러워 하긴 했다. 그래도 수정 없이 마칠 수 있었다. 


- 중간에 작가 교체 등의 상황이 있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작가 교체 등의 이유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스토리가 힘 있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자꾸 지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회의원도 당선되고 도지사도 되고 대통령이 되어 일도 하려면 갈 길이 멀다. 26부작이지만 앞만 보고 달려도 부족하다. 내 작품은 선악구도가 명확하다.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아서 하나만 얘기한다. 내 컬러와 조금 다른 것 같아 안타깝다.  


- <대물>을 보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연상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무엇이든 최초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여성 대통령도 없고 여성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아무도 안 하고 있어서 내가 그렸다. 10년 전에 구상했던 만화다. 그때 박근혜 전 대표는 존재가 미미했다. 만화를 구상하고 그리면서 박 전 대표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서민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그렸다. 대물을 보면서 현실 정치에서 그런 인물을 찾아보라. 


- 그렇다면 <대물>에서 어떤 인물을 그리려고 했나?

어떤 인물이 큰 인물인지 생각해보았다. 만인에게 혜택을 주는 큰일을 한 사람이 큰 인물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큰일은 통일이다. ‘통일 대통령’이 우리 역사의 ‘대물’이 아니겠는가. 그런 인물을 상상하면서 보라.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내 작품 중에 '대북물'이 많다. 남북 첩보요원의 대결을 그리기도 했고...




- 사회성이 짙은 작품이다. 특히 정치검찰을 묘사하는 부분 같은 곳은...

어느 직업군을 그릴 때 좋은 점과 함께 나쁜 점도 함께 다루려고 했다. 불필요한 논쟁은 피하는 스타일이라 나름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정치 검찰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정의파 검사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 만화를 그릴 때 취재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스토리텔링은 체험이다. 직접 뒹굴어보는 수밖에 없다. <쩐의 전쟁>을 그릴 때는 직접 사채를 빌려줘봤다. 몇 천 만원 까먹고 위협도 많이 받았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을 잘 살려서 현실감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 드라마를 재밌게 보는 방법이 있을까?

<대물>은 선악구도도 명확하고 가는 방향도 선명하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하면 헷갈릴까봐 가지를 쳤다. 목표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주인공을 보라. 사랑 이야기나 웃기는 이야기는 다른 곳에도 많지 않은가. <대물>에서는 정치만 보면 된다. 여성이 정치에서 활약이 미미했던 것은 여성이 정치에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더불어 여성 정치인도 성장할 것이다. 이 드라마가 그런 계기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고현정씨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다. 

원작 만화의 캐릭터보다 실제 인물이 더 못해야 만화가 빛이 나는데, 아쉽게도 고현정씨가 더 잘하고 있다. 만화가로서는 속상한 일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만족한다. 그녀의 연기를 보면 ‘진짜다’라는 느낌이 든다. 사람을 압도한다. 드라마가 끝나면 그녀의 연기에 대해서 기자처럼 직접 취재를 해보고 싶다.


- 그녀의 어떤 연기가 특히 좋았나?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진짜로 한다'는 느낌이 든다. 몰입의 힘인 것 같다. 경이롭다. 인상적인 장면은 몇 번 반복해서 보았다. 디지털 HD 화면이라 섬세하게 나타났다. 우는 장면에서 코에 땀이 서서히 배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빨개졌다. 화를 내는 장면에서는 목에 힘줄이 팍팍 솟았다. 오버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달아올라서도 선을 넘지 않았다. 그 절묘함이 감탄스럽다.




- <쩐의 전쟁> <대물> 등 그렸던 만화가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제작되고 있다. 만화가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이 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가? 

만화는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드라마나 영화로 전환하기 쉽다. 소설 같은 것은 그림을 추출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만화의 경우 대중성이 관건이어서 드라마나 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기 쉽고, 또 제작비를 가늠하기도 쉽다. 그런 이유로 자주 제작되는데, 만화가 스토리텔링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인가? 

신약 얘기다. 그런데 연구할 수록 힘들다. 내가 못하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절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