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패국노’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이라면 ‘패국노’는 ‘나라를 패하게 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국적을 바꿔 다른나라 대표로 출전한 선수를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유로 2008에서 독일 대표팀 선수로 출전해 고국인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2골을 합작해 넣은 클로제와 포돌스키를 대표적인 ‘패국노’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까이는 일본에 귀화해 한국선수를 제치고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추성훈 선수를 꼽을 수 있구요.
이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패국노’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 꼽힌 사람은 호주 양궁 대표팀으로 출전한 김하늘 선수와 일본 양궁 대표팀으로 출전한 엄혜랑 선수였습니다. 감독 중에서는 호주 양궁 대표팀의 오교문 감독과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의 박주봉 감독이 ‘패국노’ 후보로 꼽혔지만 모두 한국대표팀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이 '패국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 관건이 되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일방적으로 매도했겠지만, 올해는 이들의 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담론도 적극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단순히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외국에 나가야 선수생활을 더 오래 할 수 있는 비인기종목의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올림픽을 계기로 이런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신문과 방송에 올림픽 소식이 차고 넘칩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도 경기에서 ‘인상은 인상을 쓰고 들어야 하고, 용상은 용을 쓰며 들어야 한다’는 엉터리 지식부터, ‘금 보도가 진짜 보도냐, 은 보도가 진짜 보도냐, 동 보도가 진짜 보도냐’하는 보도 논쟁까지 다양한 내용의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패국노’ 논쟁처럼 다양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올림픽 논쟁을 이끈 사람은 블로거들이었습니다. 올림픽과 관련해서 블로거들은 다양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저는 ‘블로고 스피어’에서 또 하나의 올림픽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블로거들은 우리나라의 순위 집계 방식에 문제제기를 많이 했습니다. 금메달뿐만 아니라 은메달과 동메달의 가치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금메달 위주로 국가 순위를 정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일방적인 방식이지,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순위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의 방식대로라면 동메달 백 개보다 금메달 한 개가 가치가 높은데, 이는 문제가 좀 있지요.
불로거 ‘웅봉달’님은 이런 방식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웃기는 가정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가 나라를 만들면, 즉 ‘펠프스국’을 건설하면 당장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혼자 나라를 만들어도 말이죠. 블로거 ‘함께 만들어가요/평화’님은 금은동 수상 선수 수상 장면을 동등하게 편집한 한겨레신문 1면을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셨더군요.
블로거들은 흥미 위주로 진행되는 TV 올림픽 중계에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블로거 ‘세상이야기’님은 아나운서들이 시청자보다 더 흥분을 해서 중계는 하지 않고 ‘으아아아악~’ 고함만 지르는 것을 꼬집어 비판했습니다. 블로거 ‘바이오매니아’ 님은 ‘말 많고, 경기장 분위기를 전하지 못하고, 중요한 순간을 가로채는 중계’를 ‘최악의 중계’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아나운서들의 중계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국민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너무 애국주의에만 호소하고 있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에게 혐한증이 생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지난 한일 월드컵 때 중국 아나운서들의 보도 태도 때문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블로거들은 올림픽 이슈에 묻히는 다른 이야기에도 집중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보이콧 움직임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올림픽이 시작하니까, 메달 경쟁이 집중되면서 이런 이야기는 묻혔습니다. 블로거 ‘아해소리’는 티베트 인권문제 개선을 주장하는 ‘Save Tibet Festival’ 콘서트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콘서트는 올림픽 개막식 시간에 맞춰 시작되었습니다.
정부의 방송장악 문제 등도 올림픽에 묻혔습니다. KBS 이사회에서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고 검찰이 정 사장을 체포하는 등 방송장악을 위한 정부의 가파른 행보가 진행되고 MBC에서는 <PD수첩>에 대한 사과방송이 있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블로거 ‘박형준의 창천항로’님이 이 문제에 대한 글을 꾸준히 포스팅하고 있어서 알려지고 있습니다. 블로거 ‘계영배’ 님은 ‘단 하루만이라도 중계를 중단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는데 현실 가능성은 없지만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블로거들은 ‘짝퉁 개막식’에 대해서도 다양하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불꽃놀이 컴퓨터 그래픽이나 어린이 립싱크 공연 때문에 ‘짝퉁 논란’이 있었는데, 컴퓨터 그래픽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립싱크에 대해서는 비판 일색이었습니다(사진으로만 보면 오히려 뒤에서 노래를 불렀던 아이가 더 호감이 가던데 왜 바꿨는지 모르겠더군요).
이번 올림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는 중국인들의 ‘혐한증’이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혐한증’이 어느 정도인지, 왜 생겼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도 블로거들이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한중관계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잘 분석해야 할 것입니다.
블로거들은 올림픽의 숨겨진 재미도 알려주었습니다. 블로거 ‘야구매냐’님은 진정한 올림픽 수영 영웅은 시드니 올림픽에서 수영경력 9개월 만에 자유형 100미터 경기에 출전한 적도기니의 에릭 무삼바니 선수라고 꼬집었습니다. 특별초청 선수로 출전한 그는 개헤엄으로 코스를 겨우 완주했습니다. 완주 후 그는 “100미터는 너무 길었다.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완주했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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