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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위기인 한국의 대학

화려한 논리 속의 숨은 비논리를 경계하라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1. 13.




2007년 ‘시사저널 파업’ 때의 일이다. 경영진의 삼성기사 무단 삭제에 항의해 편집권 독립을 위한 파업을 하던 우리들을 감시하기 위해 회사는 용역 직원을 고용하고 직원들을 종용해 그들이 우리를 협박하고 으름장을 놓게 만들었다. 욕은 다반사고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직원도 있었고 용역 직원은 때릴 듯이 겁박했다.

주눅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안겨주었다.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연령 고하에 상관없이 아낌없이 욕을 안겨주었다. 누군가 그런 나를 보았다면, 그리고 그가 앞뒤 사정을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는 나를 파렴치한 욕쟁이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에게도 욕을 했었으니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니까.

그때 누군가 나에게 ‘패륜 파업’을 한다고 비난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고마워했을 것 같다. 모두가 무심했던 우리의 파업에 그나마 관심이나마 보여준 것이었으니까. 그 ‘패륜 파업’을 해명할 기회를 활용해 우리의 파업을, 우리의 억울함을, 우리의 명분을 알렸을 것이다. 나는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내 욕의 정당성을 납득시킬 자신이 있었다.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집단해고 된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홍익대 총학생회 행태를 보면서 4년 전 악몽을 떠올렸다. 그들은 파업 노동자의 앞뒤 사정 살피지 않고 욕만 탓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 그들이 어떤 사정이었는지는 살피려고 하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모습만 보고 꼬투리를 잡았다.

모두들 그들의 비정한 처사를 비난했지만 홍익대 총학생회는 당당했다. 그리고 확고한 논리를 내세웠다. 비운동권 총학생회인 자신들을 지지해 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해 달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판단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홍익대 청소노조를 돕는 외부세력은 물러나라’‘최저임금을 받고 있는데 못 받는다고 속이고 있다’‘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 등을 주장했다.


   
▲ 지난 9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청소 용역, 어머니의 눈물' 편ⓒMBC


홍익대 총학생회는 청소노조의 교섭 당사자인 공공노조(민주노총 산하)를 ‘외부세력’이라고 규정하고 나가달라고 주장했다. 학교 안 사람과 학교 밖 사람만 구분하는 그들의 이분법으로는 법적 교섭 당사자인 공공노조가 외부세력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외부세력이 물러나면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교섭권도 없는 그들이…

청소노조 소속 할머니들이 최저 임금도 못 받는다고 월급명세서를 밝혀도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학교와 용역회사 측의 논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학교와 용역회사의 논리는 하루 7시간 근무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근무지를 이탈하면 안 되는, 근무시간으로 볼 수밖에 없는 3시간의 대기시간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은 외면했다.

홍익대 총학생회가 청소노조의 농성에 반대하며 마지막으로 내민 카드는 학생들의 ‘학습권’이었다. 청소노조의 학내 집회장에 난입한 총학생회장은 “이건 아닙니다. 학생들이 지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라며 물리력을 동원해 집회를 막았다. 아마 이 장면이 홍익대 청소노조 파업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홍익대 총학생회가 내세운 이유들은 얼핏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논리의 외피를 입은 그 ‘핑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다. 학생들의 뜻이라며 학교의 이해를 대변하는 그들의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일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진실을 가리는 ‘부분적인 사실’을 부각해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부분의 진리가 전체의 진리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청소 노동자들이 총장실 앞을 점거하자 119 구급대를 부른 홍익대 총장은 휠체어에 실려 나가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런데 농성 노동자들에게 막히자 다시 총장실에 들어간 총장은 잠시 후 교직원들이 퇴로를 확보해주자 휠체어에서 일어나 당당히 달려나가는 ‘기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만약 그가 이런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농성 노동자들은 중환자의 입원을 막은 파렴치범으로 몰렸을 것이다.

홍대 사태는 단순히 자본과 노동의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다. 논리의 탈을 쓴 강자의 비논리와 비논리라 매도되는 약자의 논리가 싸우는 전장이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으며 버텨왔던 이 ‘늙은 노동자’들을 위해 힘없는 자들이 힘을 모으고 돈 없는 자들이 돈을 보태고 있다고 한다. 상식의 패자부활전을 기대해 본다.


주>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