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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와 88세대 사이의 '298세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1. 15.



잘 놀고 잘 쉬는 '놀쉬돌' 기사 작성을 위해 트위터(@dogsul)를 활용해 계속 질문을 던졌다. “잘 놀고 잘 쉬는 것이 무엇인가, 잘 놀고 잘 쉬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와 철학이 필요한가?” 답은 쉽사리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유독 뜨겁게 반응하는 특정 세대가 있었다. 35~40세 정도 된, 이른바 298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35~40세라면 직장에서 한창 일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들이 잘 놀고 잘 쉬기 위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고 있었다. 고민이 많다면 이에 대한 실천 의지도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물었다. 잘 놀고 잘 쉬는 사례를 들려달라고. 그러자 ‘놀쉬돌’이라 불러줄 만한 사례가 쇄도했다. 세계일주 여행을 다녀온 사람, 주4일 이하로 근무하는 사람, 한 달 이상 휴가를 내본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열심히 놀 궁리를 하는 세대, 그래서 일하고 남는 시간에 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해 일하는 세대, 집에 투자하기보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세대, 그래서 집을 산 친구보다 집을 포기하고 세계일주 떠나는 친구를 더 부러워하는 세대, 미래를 꿈꾸기보다 그 꿈을 다이어트하고 현재를 즐기는 세대…. 이들의 도대체 누구인가?

왜 298세대가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선봉에 서게 되었을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20대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들은 낀 세대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에 끼었다고 해서 이들을 298세대(386-88=298)라고 부른다. 1990년대 초·중반 학번으로 35~40세(넓게는 30~40세)인 이들은 대학에 들어갈 즈음 ‘신세대’ ‘신인류’ ‘오렌지족’ ‘X세대’라고 불리는 소비 세대였다. 

부모 세대가 이뤄낸 산업화와 선배인 386세대가 이뤄낸 민주화의 성과로 풍요와 번영의 시기를 보낸 298세대는 배낭여행과 어학연수 세대이기도 했다. 해외여행 자유화와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맞춰 유행처럼 대학생들이 외국으로 나갔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몸으로 체험한 첫 세대인 셈이다. 반미 감정 때문에 팝을 금기시했던 386세대와 달리 미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일본 만화와 영화도 포용했다.





문화적 욕구가 충만한 이들은 넘치는 소비 성향으로 대중문화의 중흥기를 일궈냈다. 서태지를 시작으로 HOT까지 ‘아이돌’ 스타가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고, <질투> <마지막 승부> 등 트렌디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이병헌·배용준·장동건·고현정·이영애·김희선 등 이들 세대의 스타들은 이후 20년 동안 권좌를 유지했고 한류의 중심에 있었다. 

물론 이 세대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91년 이른바 분신 정국과 1996년 연대 사태는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겼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에는 298세대도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었지만, 경기가 반짝 회복되었을 때는 소비성향 과잉으로 카드대란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전 세대나 이후 세대와 비교해보았을 때 단맛을 가장 많이 본 세대가 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때 그 오렌지족이 지금 ‘놀쉬돌’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35~40세는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큰 연령대로 나온다. 실용을 추구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낭만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반감을 넘어선 혐오의 대상이다. 그래서 전 세계 시위 역사에 전무후무한 유모차 부대를 구성해 촛불집회에 나가기도 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야당 지지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난 지방선거 결과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면 결론은 간단하다. “이명박은 대한민국 30대에게 졌다”라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가?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실제 결과와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이므로 참고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본다. 

파악 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 30대가 반한나라당 투표 성향이 가장 강한 세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20대와 비교했을 때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둘, 20대 보다는 투표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더군다나 이들은 2차 베이붐 세대다). 투표도 더 많이 하고 지지율도 높은 이 세대를 민주당이 주목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지난 지방선거 7대 격전지 투표 결과를 비교해보자.  

서울(오세훈 20대/30대 vs 한명숙 20대/30대) : 34.0/27.8 vs 56.7/64.2
경기(김문수 20대/30대 vs 유시민 20대/30대) : 34.3/32.2 vs 65.7/67.8 
인천(안상수 20대/30대 vs 송영길 20대/30대) : 30.1/26.1 vs 65.5/70.5 
강원(이계진 20대/30대 vs 이광재 20대/30대) : 32.0/28.2 vs 68.0/71.8
충북(정우택 20대/30대 vs 이시종 20대/30대) : 32.8/33.4 vs 63.9/63.8
충남(박해춘 20대/30대 vs 안희정 20대/30대) : 12.1/10.6 vs 56.1/64.1
경남(이달곤 20대/30대 vs 김두관 20대/30대) : 33.5/29.9 vs 66.5/70.1 

30대는 20대 보다 한나라당 후보를 덜 지지하고 야당 후보를 더 지지한다(충북만 20대가 30대보다 야당지지 성향이 약간 높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한나라당 후보와 야당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대략 40대가 10% 20대가 20% 30대가 30%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수치를 보면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30대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고 할 수 있다. 

30대는 왜 88만원 세대보다, 혹은 386세대보다 야당 지지성향이 강할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왜 30대는 한나라당과 이명박정부를 싫어할까? 이제 어느 정도 사회에 안착했을 이들이 ‘민주화 세대’인 386세대 보다, 그리고 청년 실업/비정규직에 시달리는 88만원 세대보다 야성이 강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이 세대의 문화적 성격을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386세대나 88만원 세대와 비교해 이 세대는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세대다(나는 이 세대를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낀 세대라는 의미에서 386-88=298, 298세대라고 부른다). 존재감 없는 세대, 그런데 어느덧 한국사회의 미드필더가 된 이 세대를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1970년대 산업화 사회의 주역인 아버지세대와 1980년대 민주화의 주역인 형님세대 덕분에 이 세대는 풍요와 자유를 누렸다. 국민소득 1만불을 달성하고, 정권교체를 경험했던 세대다. 어찌 보면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던 세대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샴페인 맛을 보았던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로 하여금 우아한 샴페인 향을 처음 맡게 한 이들은 전교조 교사들이었다. 정의를 위해 밥줄의 사슬을 끊고 분연히 일어나는 그들에 환호했고 어렵게 교실에 복귀한 그들이 보여준 참교육의 맛에 우리는 감동했다. 그 전교조를 대량 징계하는 이명박 정부에 정이 안 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들은 다음 세대에게도 그들이 맛본 참교육의 맛이 전해지길 원한다. 

오렌지족 신인류 신세대 X세대 등으로 분류되었던 이 세대는 소비대중문화의 풍요 속에서 사춘기와 대학시절을 보냈다. 이 세대부터 세계화 열풍에 발맞춰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을 본격적으로 다녀왔다. 이는 그 이전 386세대와 뚜렷이 구분되는 지점이다(80년대 후반학번과는 일부 겹칠 수도 있겠다). 

88만원 세대와 구분되는 점은 낙관적인 세대였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독재시대로 회귀하고, 국민소득과 주가가 계속 정체한 현 정부와는 달랐다. 이 세대는 정치적으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민주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경제적으로도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살았다. 한마디로 ‘우리의 삶은 우리 부모의 삶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졌던 세대다.  



풍요의 경험과 민주주의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 이명박정부의 무단정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그 방식이 너무나 무도했다. 취향세대인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너무나 구렸고 찌질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간지가 안나는 일이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Guess 와 Calvin Klein 청바지를 입고 다니다가 핀토스 청바지, 아니 기지바지 시대로 돌아가는 거나 마찬가지 일이었다.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키워드인 '실용'은 이들의 가치가 아니었다. 이들은 주변 친구 중에 내 집을 마련한 친구의 재력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전세집을 팔고 월세를 감당하면서 세계여행을 떠나는 친구의 담력을 부러워하기도 하는 세대다. 이들에게 '덮어놓고 발전하자'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은 쉽게 먹히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의 취향에 꼭 맞았다. 마치 오바마를 미리 경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터넷 원년세대인 이들과 소통지향적인 노 전 대통령은 코드가 잘 맞았다. 온라인에서 노풍을 확산시킨 주역이 바로 이들이었다. 퇴임 후 ‘노간지’라는 예명을 붙여주며 애프터서비스를 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 세대가 '취향세대'라는 것은 이 세대를 대상으로 한 트위터 간이투표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30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이 세대 트위터 이용자들은 서태지 박진영 김태호(무한도전 PD) MC 김제동 등 주로 문화계 인물 종사자를 꼽았다. 이 조사를 통해서도 취향세대로서의 이 세대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98세대의 정체성은 뉴요커나 파리지앵처럼 취향좌파, 즉 ‘강남좌파’의 등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강남좌파’라는 말은 원래 조중동이 참여정부 시절 386 엘리트를 비판하던 말이었다. 좌파가 부유하게 되면서 꼴불견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이명박정부 들어 다른 식으로 해석된다. 좌파가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부자가 좌파가 되었다는 것이다. 30대 전문직에 두루 나타나는 양상인데, 계급적 이해와 달리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386세대와 298세대의 차이를 한 마디로 말하면 386세대는 나 보다 우리가 중요하고 옳고 그름이 중요했던 세대인데 반해 298세대는 우리보다 내가 중요하고 옳고 그름보다 좋고 싫고가 중요한 세대라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문화 수입에 대해서도 관대했다. 왜? 일본문화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세대의 취향에서 가스통 든 할아버지들과 괘를 같이 하는 한나라당은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취향이었다. 



30대에 대한 토론회가 끝나고 변희재는 내게 "왜 30대를 위한 조직이나 협회가 필요없느냐"라고 항의했다. 나는 그에게 반박했었다. 386세대를 그렇게 비판하면서 386세대의 전형적인 방식인 조직을 만들고 깃발을 드는 것으로 해결하려 드느냐고. 집단지성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금의 30대는 조직과 깃발 없이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리 세대는 리더의 시대가 아니라 '시샵'의 시대였다. 리더가 조직을 만들고 깃발을 들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샵'이 판을 만들면 그 안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시대였다. PC통신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형성된 이 문화가 촛불을 나았다. 이들이 형성한 연대의 끈은 씨줄과 날줄로 얽히고 설켜있다. 이것이 이 세대의 힘이다. 

이 세대의 정치적 취향은 크게 개혁정당(민주당이 여기에 미치는 지는 의문이지만) 지지성향과 진보정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지지성향으로 나뉜다. 상식을 지탱하는데 관심을 더 갖는 층은 전반적으로 개혁정당 지지성향으로, 진보를 지향하는데 관심을 더 갖는 층은 진보정당 지지성향으로 나뉘는데, 이 사이에 모호한 층도 있다. 평상시에는 진보정당에 우호적이다가 선거 때만 되면 사표심리 때문에 개혁정당에 투표하는 ‘진보적 개혁성향’ 유권자 층이 꽤 있다(트위터 성향 투표 결과 1/3 정도 추정). 

298세대에게 개혁정당은 현재의 수익을 담보하는 ‘캐시 카우’라면 진보정당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R & D’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후보는 민주당에 투표하고 정당투표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투표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의 지지를 누가 더 이끌어 내느냐에 따라 개혁정당과 진보정당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아무튼 두 정치세력의 ‘대마’가 될 이 세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미드필더가 된 298세대는, 아름다웠던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대한민국의 상식을 지탱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명박정부를 심판하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주의적 문화세대인 이들이 미드필더 세대로서 정치적 책임을 다한 것이다. 이들의 끼친 정치적인 영향을 표현하자면 ‘정치를 바꿀 수는 없어도 정치 문화를 바꿀 수는 있는 세대’라는 것이다.

386세대는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했지만 298세대는 사회 진출해서 사회운동을 하는 세대다. 촛불 때 각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발호했던 이들은 이번 지방선거 때 트위터를 통해서 일어났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행동하는 상식을 보여준 것이다. 존재감 없던 298세대가 드디어 기지개를 켰다. 이제 이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