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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

잃어버린 상식이를 찾습니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8. 27.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쓴다(썼다가 글이 너무 거칠어 올리지 않고 있다가 자고 일어나서 다시 고쳐 써서 올린다. 그래도 여전히 거칠다). 시사저널 파업 때 잃어버렸다가 힘들게 되찾았던 ‘어이’를 요즘 다시 상실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혹은 PD들이) ‘어이’를 상실했으리라 본다. 국민들도 마찬가지고.


2년 전 시사저널 기자들이 ‘어이’를 잃게 만들었던 것은 편집국 모르게 인쇄소에서 삼성기사를 뺀 금창태 사장의 변명이었다. 금 사장은 “편집권은 편집인인 나에게 있다. 편집권을 가진 편집인이 기사를 빼는데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며 파업을 하자 그는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이므로 경영권의 일부다.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이유로 파업을 하는 것은 경영권 간섭이므로 불법 파업이다”라고 주장했다. 어이 5백년 없었다.


KBS 기자들은(PD들은) 청와대로부터 어이 5천년 없는 소리를 들었다. “KBS는 관영방송이므로 정부의 철학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소리였다. 헛소리인 줄 알고 무시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정부는 올림픽 개막에 맞춰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고 올림픽 폐막과 선수들 귀국에 맞춰 이병순 사장을 임명했다. 정부의 철학을 구현하라고(구현해줄 철학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지만).


KBS가 조선중앙방송인가? 방송이 정부의 철학을 구현하는 모형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방송을 ‘사회주의 선전 선동의 도구’로 활용하는 국영방송 모형과 일치한다. 이런 주장은 ‘좌빨 지존’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청와대가 하고 있고, 이를 위한 수순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빨갱이들처럼’ KBS 기자들에게(PD들에게) 영혼을 버리고 ‘명박천국 불신지옥’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YTN에 낙하산 사장을 보내는 문제도 어이 5만년 없는 짓이다. 바꿔서 생각해 보자. 오바마나 매케인 중 미국 대선의 승자가 자신의 홍보특보를 CNN 사장으로 앉히는 것이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그런데 이런 일이 한국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24시간 뉴스채널’이 ‘24시간 편파방송’이 되려하는데, 모두들 침묵하고 있다.


<PD수첩> 이춘근 PD와 김보슬 PD는 경찰의 강제구인을 피하기 위해서 MBC 구내에서 노조원들과 합숙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가? PD들이 프로그램 제작하느라 방송사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아니라 검찰에 안 잡혀가기 위해서 방송사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말이 되는가?


기자가(혹은 PD가) 있어야 할 곳은 ‘뉴스 현장’이다. 그런데 지금 KBS와 YTN과 MBC에서는 기자들이(혹은 PD들이) 기자정신을(혹은 PD 정신을) 지키기 위해 회사 안에서 낙하산 사장과, 정치 검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시민이 촛불을 들고 기자가 그 시민을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가 촛불을 들고 시민이 그 기자를 취재하는 세상이 정상인가? 촛불을 든 시민을 PD가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든 PD를 시민이 촬영하는 것이 정상인가? 이것이 말이 되는가? 갑갑하고 또 갑갑하다.


더욱 ‘어이’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은 언론학자들이다. 그들의 행태는 어이 5억년 없게 만든다. 정부가 이렇게 무도하게 KBS를 접수하고 YTN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는 것이 어떤 언론학 이론과 부합하는 일인가? 한국의 언론학자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렇다면 <PD수첩> 검찰수사가 얼마나 부당한지 더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묻고 싶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배운대로 행동하는데, 그래서 투쟁하고 파업하며 징계받고 소송당하는데, 당신들은 왜 가르친대로 행하지 않는가, 라고. 극소수의 언론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언론학자가 정부의 무도한 언론장악에 침묵하고 있다. <PD수첩> 이춘근 PD의 대학시절 은사는 <조선일보>에 <PD수첩>을 비난하며 제자 가슴에 대못질을 했다.


KBS 정연주 사장 해임과 이병순 사장 임명 과정에서 보여준 KBS 노조의 행태는 가히 '방관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KBS 노조가 보여준 '같기도' 행태, '이것은 낙하산을 막는 것도 아니고 안막는 것도 아니여'에 대해서는 이후 차근차근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보기로 하겠다.

정부는 내친 김에 MBC와 KBS 2TV 민영화까지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민영화는 왜 하는가?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민영화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은 제 밥벌이를 못할 때다. MBC와 KBS 2TV는 제 밥벌이를 잘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한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공적 서비스를 하는 공공기관은 밥벌이를 못하는 것이 정상일 때가 많다. 그런 곳에서 밥벌이를 한다면 그것은 ‘기적’이 된다. 산골 보건소에서 흑자를 내기 위해서는 시골 노인들을 치료하며 논문서 밭문서를 받아내면 된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곡식을 미리 확보하면 된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흑자가 무슨 의미인가? 


다시 한류 이야기로 돌아가서, 한류로 공영방송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은 다공영 1민영체제다. 일본은 반대로 1공영 다민영 체제다. 아사히와 산케이 등 신문사가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다. NHK는 예산 편성권이 국회에 있어 다수당인 자민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권력 감시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한류의 저력이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은 ‘콘텐츠의 보편성’ 때문이었다. 다공영 체제라 한국은 콘텐츠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보수적이다. 그것이 표현의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해당 국가의 보편적 윤리기준을 위배하지 않는다. 이것이 한류 콘텐츠가 이슬람 국가에까지 팔려나갈 수 있는 비결이었다.


반대로 일류 콘텐츠는 ‘콘텐츠의 특수성’이 강하다. 이는 일본 문화가 ‘대중문화’에서 ‘취향문화’로 발전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1공영 다민영 체제에서 갖는 상업화의 소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콘텐츠의 특수성’이 강한 일류 콘텐츠는 ‘문화 할인율’이 커서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낙차가 크게 작용한다. 이는 1980년대 NHK ‘오싱’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일대에 일류를 일으켰을 때와 대비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잃어버린 상식이를 되찾고 싶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