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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

맞아죽을 각오로 쓴 '농심 포용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7. 22.

전쟁은 왜 하는가? 적을 이기기 위해서 하는가, 적을 죽이기 위해서 하는가? 적을 이기기 위해서 적을 죽이는가, 적을 죽이기 위해서 이기는가?


답은 간명하다. 적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하고, 이기기 위해서 적을 죽이는 것이다. 최고의 전쟁은 적을 죽이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이 간명한 원칙이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기업이 조중동에 광고를 하지 않도록 압박한다’는 취지가 ‘조중동에 광고한 기업을 망하게 한다’는 감정적 복수로 바뀐 것 같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농심 불매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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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장하려는 바는 ‘농심 포용론’이다. 이 시점에서는 농심을 포용해서 조중동과의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을 선포해야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 ‘농심 죽이기’로 일관하면 불매운동은 그 목적도 잃고 동력도 잃게 된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의 일환으로 농심 불매운동이 전개되었다. 사실 농심은 지면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 기업인데, 관계 회사가 광고를 했다가 불매운동 대상이 되었다. 농심이 집중 타격을 당한 이유는 상담원이 불매운동을 하는 네티즌에게 ‘조선일보는 영원히 번창할 것이다’는 메일을 보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농심은 조선일보가 비판 기사를 쓴 삼양과 비교되며 뭇매를 맞았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농심이 조중동에 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7월15일). 농심은 검찰이 고소를 종용했지만(물론 검찰은 부인한다. 검찰총장까지 나서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7월16일) 불매운동 네티즌을 고소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재료에 미국산 쇠고기는 쓰지 않기로 하는 등 네티즌의 요구들을 들어주었다.


7월17일, 더 큰 변수가 생겼다. 조선일보가 데스크 칼럼으로 농심을 공격한 것이다. ‘손욱 농심 회장님께’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불매운동을 하는 네티즌을 고소하지 않기로 한 농심의 결정을 비판하는 글이었다(칼럼 앞부분은 조선일보에 광고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지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 칼럼은 “‘나쁜 소비자’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아야 글로벌 식품회사가 될 수 있다. 블랙슈머(악성 민원제기 소비자)에게 무릎을 꿇어서는 국내에서조차 설 땅을 잃고 말 것이다”라는 ‘충고’인지 ‘경고’인지 모를 문구로 끝이 난다. 네티즌을 고소하지 않겠다는 결정으로 인해 농심은 검찰과 조선일보와 척을 지게 되었다. 


농심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상황이 여기까지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이 농심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네티즌들은 농심에 적대적이다. 며칠 전 농심 홍보팀 관계자에게 “농심이 할만한 건 다 한 것 같다(50문 50답과 관련해서 연락했다)”라고 했더니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직 안 한 게 하나 있잖아요. ‘우리 문닫아요’라는 말이요. 농심이 망해야 끝이 날까요?”


검찰과 조선일보에 찍힌 농심은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공정위에 라면값 담합 문제가 걸려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조사 중인 농심 제품 이물질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에 잘보여야 하는 상황인데, 농심으로서는 모험을 한 셈이다. 그런데 여전히 네티즌의 반응은 싸늘하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은 지금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촛불집회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불매운동의 동력은 약해진 반면, 검찰 수사는 상당히 진척되어 고삐를 죄고 있는 상황이다. 여차하면 실질적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애꿎은 네티즌들에게만 피해가 가고 끝을 맺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둬가기’와 ‘이어가기’다. 농심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거둬가기’와 ‘이어가기’를 위해서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조중동에 광고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제2 제3의 농심이 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네티즌을 고소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도록 해서 불매운동의 명분도 확보해야 한다.


분명히 구분하는데, 이 글은 ‘농심 옹호론’이 아니라 ‘농심 포용론’이다. ‘농심’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에 방점이 있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위해서 ‘농심’을 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심 옹호론'이 아니라는 것은, '농심이 알고보면 괜찮은 회사니까 봐주자' '농심 제품 안전하다니까 사먹자'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많은 기업들이 농심의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저렇게 말하고 정부나 언론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저렇게 엎어지면 네티즌들이 받아줄까? 레이더를 돌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네티즌들에 바짝 엎드린 농심을 내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지, 자명하다. 투항하는 적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살한다면, 남은 적들이 투항하겠는가 아니면 결사항전 하겠는가.


며칠 전 농심 캠페인 컨설턴트로부터 답답한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농심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광고를 하려고 하는데, 그래서 정말 네티즌들이 하라는 대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네티즌들의 반응이 무서워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껏 광고를 하고도 ‘농심이 쇼한다’는 소리만 들을까봐 그냥 안하려고 한다는 것이다(회장이 해외 출장 중이라 최종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농심이 싫어서 계속 미워할 수 있다고 본다. 여전히 농심 제품이 의심스러워서 먹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의 차원에서는 농심에 대해서 전략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네티즌들이 농심을 확실히 껴안아서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한다. 이를 통해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은 ‘이어가기’와 ‘거둬가기’를 해내고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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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부담스러운 이야기지만,
논쟁이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과감히 써봤습니다.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

다행히 이런 생각을 저만 갖는 게 아니더군요.
지난주 토요일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에게서 연락이 와서
라디오21에서 이런 내용으로 방송을 했습니다.
노 전 대표는 안티조선 골수 정도로 치면 상위 10등 안에 드실 분입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농심과 관련해서 논쟁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주) 제 대신 누가 이 글을 다음 아고라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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