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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이명박 바로세우기

미안하지만, '이명박의 라이벌'은 국내에 있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5. 28.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자기의 라이벌은 국내에 없고 외국에 있다고 했다. 멋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지율이 20%대로 급전직하하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벌이 떠올랐다. 아니, 이 라이벌들이 부상하면서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국내 라이벌과의 '예선전'에 승리해야 국외 라이벌과 '본선전'을 치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을 위협하는 라이벌은 크게 네 그룹이다.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초·중·고생, 대운하 논쟁 등을 거치며 ‘안티 이명박 벨트’를 굵게 형성한 지식인 그룹, 정부를 질타하는 1500여 시민사회 단체,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이 그들이다. 이 4대 그룹은 이대통령이 부시와 후쿠다와 후진타오와 경쟁하기 전에 반드시 넘어서야 할 벽이다.

첫 번째 라이벌, 초중고생 안티

첫 번째 라이벌로 떠오른 그룹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반이명박 댓글을 올리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초·중·고교생이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지만,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이다. ‘압운’을 맞춰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지만, 이명박은 초중딩과 싸운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손자 손녀뻘 되는 이들과 ‘맞장’을 뜬다는 것이다.


이들과 라이벌이 된 것은 이 대통령의 최대 비극이다. 이들과 라이벌이 된 순간 이미 승부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어린 라이벌과는 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이기는 것에 집착했다. 집회에 교사들을 내보내 감시하고 주동 학생에게 경찰을 보내 조사하고 참가 학생을 퇴학시킨다고 협박하는 등 대처 방식은 강경 일변도였다. 이런 대처는 부작용만 초래해 인터넷에서 ‘싫은 대통령’ 프레임만 강화했다. 

두 번째 라이벌 그룹, 지식인 그룹


이 대통령의 두 번째 라이벌 그룹은 ‘초중딩’과 대척점에 있는 지식인 그룹이다. ‘한반도 대운하 논쟁’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쟁을 거치면서 지식인 그룹에 ‘안티 이명박 벨트’가 굵게 형성되었다. 대운하 건설에 대해 서울대 교수 381명이 반대 성명을 낸 것을 시작으로 각 교수단체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는다.


흥미로운 점은 지극히 다른 이 두 그룹이 만나는 접점이다. <디워> 논쟁을 통해 극단에 섰던 ‘초중딩’과 미학자 진중권 교수는 ‘광우병 논쟁’을 통해 극적으로 만났다. ‘초중딩’들은 ‘이명박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인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진 교수에 열광했다. 슈퍼주니어 등 연예인 팬클럽 카페에까지 진 교수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대통령 지지율의 급전직하는 지식인 비판 그룹의 투지를 앗아갔다. 요즘 네티즌은 진 교수가 독설을 거뒀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주로 친노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한 논객은 “온 국민이 대통령을 비난한다. 글을 써도 차별화가 안 된다. 차라리 칭찬을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가 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가 뽑았다’는 칼럼이 화제가 되었다. 취임 100일도 안 되어서 벌써 동정론이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 라이벌 그룹, 시민사회 그룹


세 번째 라이벌 그룹은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 그룹이다. ‘한반도 대운하 논쟁’을 거치면서 환경운동 단체의 전열이 재정비된 데 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쟁’을 거치면서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의 전열까지 재정비되었다. 1500여 개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촛불집회를 주관한다.


정치권에서는 시민사회 세력에 힘이 실리는 것에 주목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이 아직 야당에 대한 지지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지만, 시민사회 영역이 복원된 터전 위에서 야당이 지지층 복원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여권에서는 한나라당이 그랬듯이 재·보궐 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야당도 세 확산을 이룰 것으로 내다본다.


네 번째 라이벌 그룹, 박근혜 전 대표 세력

이 대통령의 마지막 라이벌은 박근혜 전 대표와 그 추종세력이다. 이제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지원이 없으면 위험한 신세다. 한나라당 안팎에 국회의원 당선자 70여 명이 ‘친박근혜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뭉쳐 있다. 박 전 대표가 등을 돌리면 즉시 ‘여소야대’ 정국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


대통령은 지지율이 떨어지자 공천을 통해서 세 약화를 시도하고 총선 이후에도 외면했던 박 전 대표를 결국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 문제를 양보하며 끌어안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가 ‘동반자 관계’라고 표현했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수도권 지도부론’을 들고 나왔지만 외면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어떤 정치 기반도 확보하지 못하고 떠밀리듯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이 전 최고위원과 박 전 대표의 극적인 대비는 이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통령이 이 라이벌들을 제치고 국외 경쟁자들과 겨룰 그 때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그 때가 언제 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사IN> 제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