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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 발랄 종결자’ 인증 받은 두 신예 작가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5. 7.


   
4월17일 막을 내린 ‘페스티벌 봄’. 국제다원예술축제인 이 전위예술의 향연에서 올해 가장 주목받은 작가는 국내 작가 김지선·김황 씨였다. 난다 긴다 하는 서구 작가들을 제치고 이들이 가장 눈길을 끈 이유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능청스러운 표현 방식 덕이었다. 이들이 어떤 ‘괘씸 발랄’한 작업을 했는지, 이들을 발굴한 김성희 페스티벌 봄 예술감독(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의 해설로 풀어본다.

김지선 작가는 김성희 감독이 몸담고 있는 계원디자인예술대 제자이다. 그런데 김 감독은 김 작가를 제자라 표현하지 않고, 자신이 김 작가의 팬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그녀에 대해 “학교가 아니라 체험으로 세상을 배운 작가다. 탄탄해 보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균열과 틈을 찾아내고, 그것에 위트 있고 세련된 태도로 맞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김지선 작가
 

김지선, 자본주의 시스템에 위트 있게 맞서

김황 작가는 김 교수가 독일 큐레이터에게서 추천받았다. 김 작가는 작품을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수행하는 작가였다. 김 교수의 눈에 띈 것은 특히 과제를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김 교수는 “김황 작가의 작업은 콘셉트가 70~80%를 차지한다. 보통 콘셉트는 화려하되 수행은 별로인 경우가 많은데, 그의 작업은 기존 작품에서 한 계단 진화했다”라고 말했다.

김황 작가가 김 교수의 눈에 띈 또 다른 이유는 ‘출신 성분’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그가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일반 디자인이 상품을 물신화하는 데 기여하는 반면, 김황은 디자인과 상품 간의 관계를 분리시켰다. 디자인에 대한 비평적 관점, 개념을 푸는 작업 방식, 장기간의 리서치와 세심한 제작 과정 등이 인상적이었다”라고 평했다.

이들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김지선 작가의 작업은 이런 식이다. 신세대들이 야유할 때 자주 쓰는 ‘헐’이라는 단어가 쓰인 흰 셔츠를 입고 이슈가 되는 현장을 돌아다녔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숲 유세 현장을 어슬렁거리고,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코엑스 인근도 얼쩡거렸다. 그렇게 해서 관련 뉴스에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노출시켰다. G20 정상회의 때는 작품 취지를 전해 들은 외신 기자들이 일부러 그의 모습을 화면에 넣어주기도 했다.


김지선 작가는 ‘헐’ 자가 쓰인 흰 셔츠를 입고 오세훈 시장의 서울숲 유세 현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예술은 사기다'라는 것을 유쾌하게 패러디

‘예술은 사기다’라는 것을 작업으로 보여주고 있는 김 작가가 이번 페스티벌 봄에서 선보인 작업은 ‘사기 기자 공채’였다. 이미 작가는 ‘범아시아국제회의’라는 유령 언론단체를 만들어 취재를 사칭해 유레일 패스를 공짜로 이용하거나, 인도 여행에서 각종 취재 편의를 제공받는 등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그 이름도 거창한 ‘범아시아국제회의’ 회원은 김 작가 한 명뿐이다.

이번에는 뻔뻔하게 기자 공채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기자 모집 공고는 백화점 명품 매장에 걸린 옷의 안주머니에 몰래 넣는 방식으로 했다는 식이다. 다음 모집 공고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도심에 방사능과 함께 흩뿌려 놓겠단다. 

김지선 작가는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명제에 가장 충실한 작가라 할 수 있다. 김 작가에 대해 김 교수는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많은 작가다. 그러나 김지선의 작업은 한국 예술계의 속도를 초과하는 것으로 그의 작업을 담아낼 수 있는 미술관·극장은 국내에서 찾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걱정도 있었다. 그의 이런 장난스러운 작업이 주류 예술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보수적 시각에서 김지선의 작업은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김지선의 작업이 ‘예술’임을 선언하며, 그 작업을 담을 그릇으로 페스티벌 봄이 역할을 하고자 했다. 다행히 이번 작업을 통해 일부에서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냄으로써 김지선이 앞으로 비전을 펼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지선 작가의 ‘범아시아국제회의’ 프로젝트가 단순 사기라면 김황 작가의 CD 북파 공작 작업, ‘모두를 위한 피자’는 블록버스터급 사기다. 그의 프로젝트 ‘모두를 위한 피자’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2008년 겨울, 김 작가는 북한에 피자집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바람결에 전해 들었다. 그러나 당 간부들이 갈 수 있는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피자’를 기획했다.


김황 작가(위 맨 오른쪽).



김황, 아무것에도 포획되지 않는 소통 방식

방법은 이랬다. 남녀 배우를 써서 ‘피자 만드는 법’ 동영상을 제작했다. 북한 주민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배우들에게 북한 복장을 입고 북한 말을 쓰도록 했다. 재료나 만드는 방식도 북한 주민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와 조리도구를 활용해서 만들 수 있도록 쉽게 설명했다. 동영상은 두 주인공의 키스 장면으로 끝난다. 이것이 1부다.

2부는 이렇게 만든 ‘모두를 위한 피자’ CD를 한국 영화나 드라마 CD가 북한에 유입되는 경로를 따라 침투시킨 과정이다. 이 CD 북파 공작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북한에서 ‘시청 소감’ 메모가 와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깨알같이 적어서 보낸 시청 소감을 동영상 출연자들과 작가가 낭독하는 것이 3부다.

1부·2부·3부로 나누어 다양한 결을 느끼게 했는데, 중요한 것은 주제를 풀어내는 온도다. 김 작가는 감상에 젖지도 않고 이념에 휘둘리지도 않은 채로 시원하게 풀어냈다. 김 교수는 “김황 작가 작업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메시지를 소통하는 방식이다. 불온 선전과 우호적 제스처 어디에도 포획되지 않고 줄을 타고 있다. 이념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윤리와 도덕으로부터도 비켜섰다. 아무것에도 포획되지 않으며 순수하게 ‘소통’만을 실현했다”라고 평했다.

김지선 작가와 김황 작가의 작업은 모호하지 않았다. 명징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또한 재미있었다. 잔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미를 발견해갈 수 있게 했다. 둘은 소통을 소재로 하면서도 관람자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현대 개념 예술에 새로운 출구를 보여주었다.


김황 작가의 ‘모두를 위한 피자’는 ‘피자 만드는 법’을 담은 CD를 ‘북파’하는 블록버스터급 사기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