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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독설닷컴 칼럼

토론대회에서 이기는 몇 가지 방법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9. 22.



토론이 대세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토론대회는 물론이거니와 고등학생 대상의 각종 토론대회가 난립한다. 이 대세에 최근 편승했다. 심사위원 자격으로. 문제의 당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가도 아닌 그들의 ‘승부를 위한 토론’을 지켜보면서 문득 왜 토론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토론의 당사자였을 때도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지상파, 케이블, 지역방송, 라디오의 각종 토론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토론했다.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것도 아닌데, 머릿속이 헝클어진 느낌이었다. 토론을 지켜볼 때도 그렇다. 사고의 지평이 넓어진 것이 아니라 편견이 굳어졌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최근 한 고등학생 대상의 토론 프로그램 심사를 하고 와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른들의 토론과 다르게 뭔가 말끔한 느낌이 있었다. 참 기특했다. 물론 억지 주장을 펴기도 하고, 토론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무리한 논증을 하기도 했지만 지켜보기에 흐뭇했다.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 고등학생들은 토론의 룰을 지켰다. 사회자의 지시에 잘 따랐다. 어른들의 토론과 달랐다. 어른들의 토론은 신호등이 꺼진 교차로와 같다. 룰을 따르는 것이 손해를 보는 일처럼 여겨져서 말을 끊고 끼어들고 소리 지른다. 그래서 냉정하게 토론자를 제압하는 사회자가 인정받곤 한다. 그런 난장을 보다 질서정연한 토론을 보니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맛을 낸 맑은 국물처럼 개운했다. 


압권은 토론 말미에 상대방의 주장 중에 무엇을 받아들였는지를 밝히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본래 생각이 토론을 통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말하는 부분이었는데, 듣고서 무릎을 쳤다. 그랬다. 토론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길을 모색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토론에서 이기는 것이란 내 주장을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논리를 받아들여 내 주장을 더 견고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기기 위한 토론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극단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신화화한다. 반면 상대방의 주장은 완전 적대시하며 모든 부정적인 가치를 투사시킨다. 그래서 토론을 하기 전에는 중간 어딘가에 있던 서로의 의견이 토론을 마치면 양 극단으로 치닫는다. 토론 프로그램도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자보다 이렇게 극단을 달리는 토론자를 선호한다. 


극단적인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여러 무리수가 등장하는데, 특히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실은 토론의 토대요 기초공사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의견에 기대는 것은 부실공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토론을 정체시킨다. 서로 동의하지 않는 전제이기 때문에 논의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출발선에서 제자리걸음을 한다.


내 논리를 펴 나가는데만 급급하기 때문에 경청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효과적인 추가 질문도 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논리를 깨야 한다는 강박을 보인다. 토론에서는 상대방의 논리를 인정하면서 그 논리에 비추어 상대방 주장이 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때,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데 잔승 부에 집착한다. 


토론은 토론을 듣는 사람도 배려해야 한다. 토론을 듣는 사람들에 대한 최고의 배려는 바로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다. 문제가 갖는 복잡한 함의나 다양한 접근법을 보여주어 생각의 폭을 확장시켜주어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을 툭툭 끊으면서 듣는 사람들의 생각도 자른다.


대학생 정도만 되어도 어른들의 잘못된 토론 문화가 그대로 재현된다.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며 자료를 곡해하고 어설픈 수사학에 기댄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 유리한 자료인지 불리한 자료인지 모르는 대학생들이 허다하고 이 사람의 말과 저 사람의 이론이 내 주장과 부합하는 것인지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갖다 쓰는 경우가 즐비하다.  


그러나 분명 토론에도 정도가 있다. 보통 대학생들의 토론 배틀은 전문가 심사위 원의 평가와 일반인 평가단의 평가가 합쳐져서 승부가 결정되는데, 신기하게도 전문가 심사위원끼리의 평가가 별로 다르지 않고 전문가 심사위원과 일반인 평가단의 평가도 엇비슷하다. 토론에는 자명한 원칙이 있는 것이다. 왜 토론을 하는지를 알아야 만이 토론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주)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