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아! 문제는 언론 장악이야
이렇게 비유할 수 있겠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는 미디어들이 플레이어로 뛰는 이슈 축구장의 미드필더다. 그동안은 상대편 보수진영의 조중동 미드필더가 넘겨주는 공을 받아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정치인들이 골을 주로 넣었는데, 나꼼수가 등장하고부터 판도가 달라졌다. 진보진영 정치인들도 한골 두골 골을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보진영 정치인들이 나꼼수로부터 공을 패스받아 넣은 골이 바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과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박원순 당선이다. 판판이 밀리던 이슈 축구장에 팽팽한 균형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양심적인 방송인들이 퇴장당한 상황(MBC KBS YTN 파업)에서 나꼼수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중원의 사령관 지네딘 지단처럼.
그런데 잘 나가던 나꼼수가 삐끗했다. 김용민을 공격수로 기용하면서부터 어긋났다. 정봉주 전 의원이 빠진 공격수 자리에 무리해서 김용민으로 교체했는데 비난이 쏟아졌다. 중간에 8년 전 성희롱 발언이 공개되어 엘로우카드를 받기도 했다. 계속 공세가 이어졌고 진보진영에서도 퇴출을 주장했지만 경기 종료까지 뛰었다. 결과는 진보개혁 진영의 패배. 모든 비난이 나꼼수에 쏟아졌다.
김용민 막말 때문에, 혹은 나꼼수 때문에 4·11 총선에서 야권이 패했을까? 조중동이 김용민 막말 때문에 야권이 졌다고 말하는데, 정확히는 김용민 막말에 대한 조중동의 보도 때문에 진 것이다. 막말은 문제지만 학위논문 표절과 제수 강간미수와 매국발언보다 문제는 아니다. 막말을 그것보다 더 문제로 보이게 한 조중동이 진짜 문제다.
그리고 더 문제는 바로 정권에 장악된 방송이다. 조중동이 높다한들 하늘아래 뫼다. 나꼼수의 영향력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자를 벗어나지 못하듯 조중동의 영향력 역시 구독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꼼수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가 한계가 있다면 조중동도 분명 한계가 있다. 그 조중동의 한계를 극복시켜 주는 것이 바로 정권에 장악된 방송이다. 무료로 전국에 배달되는 그 방송이 조중동의 이데올로기를 안방에 심어놓는다.
총선 기간 벌어진 나꼼수 등 팟캐스트,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와 조중동의 힘겨루기는 ‘에코시스템’에서 판가름났다. 팟캐스트와 소셜미디어에서 오피니언리더들이 제기한 이슈들은 방송과 포털 등 주류미디어에서 확대 재생산되지 못한 반면 조중동 보도는 그대로 방송과 포털에서 재확산되었다. 총선 기간 동안 방송 뉴스는 ‘화면으로 보는 조중동’ 그 자체였다. 특히 의식 있는 기자와 PD들이 파업으로 빠지면서 여론 왜곡은 극에 달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의 학위논문 표절, 김형태 후보의 제수 강간미수 의혹, 그리고 하태경 후보의 매국발언이다. 이런 사건들은 김용민 막말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되고 보도되어야 할 내용이지만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리고 김용민 막말만 보도해 이슈화를 도모했다.
야권은 팟캐스트와 소셜미디어 덕분에 지상전에서는 분전했지만 방송이라는 공중전에서 패배했다. 그 결과는 선거결과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뉴미디어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대전 천안 청주 등 도심 지역에서는 분투했지만 뉴미디어 영향력이 떨어지는 농어촌 지역에서는 참패했다. 선거결과가 그대로 대한민국의 미디어 지형도였다.
김제동 김미화 등 연예인까지 사찰하는 정권의 무분별한 사찰은 여권의 선거 패배를 넘어선 대통령 탄핵 사유다. 그런데 종편 등 정권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조중동과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인 방송이 민의를 왜곡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언론장악의 처참한 결과물이자 언론장악을 깨야 할 확실한 이유다.
총선 결과에 야권 지지자들은 멘붕(멘탈 붕괴)이라며 다들 의기소침해 있다. 떠먹여 줘도 못 먹는 야권에 실망했다며 다시 정치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선거는 로또가 아니다. 한 번에 다 바꾸려고 투표를 했다면 그것은 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 도박을 한 것이다. 비록 잭팟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이번 총선 결과로 뒤틀린 상식을 되돌릴 든든한 밑천을 마련했다
언론장악을 온몸으로 맞섰던 기자와 PD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YTN 해직기자 출신인 노종면 <뉴스타파> 앵커와 MBC 해직 PD 출신인 이근행 <뉴스타파> PD를 보라. 얼마나 절망스럽겠나? 그런데 파업과 해직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겪어온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한다. 그리고 다시 <뉴스타파>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다시 힘을 내야 할 때다.
주) PD저널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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